들꽃 한 점에서 천국을 보듯(윌리엄 블레이크<순수를 꿈꾸며>), 시인은 대추 한 알 속에 온 우주를 담아내어 우리 앞에 내보인다. 우주 내의 모든 존재들이 필요한 만큼의 관심과 사랑으로 관계를 맺고 우주를 붉고 둥근 대추로 구체화 시켰다.
인간의 과학적인 눈으로 보면, 대추는 혹독한 시련을 이겨내고서야 축복의 열매를 맺은 객관적 상관물이다. 폭풍, 천둥, 번개, 벼락. 어디 이뿐이랴. 가믐, 홍수, 먼지, 추위, 각종 병충해와 싸워서 이기고서야, 곱디고운 색깔의 둥근 모양 안에 달콤한 과육을 담아놓고 있지 아니한가.
사람도 이와 같이 뭇사람과 인연을 맺는다. 사람 사이에 있을 때 인간人間이 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의 모든 고통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생겨난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생기는 숱한 고통을 이겨낼 때, 비로소 둥글둥글해지고 유연해지며 향기를 풍기는 성숙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이 시로 하여 대추도 다시 태어났다. 이제는 결코 작고 하찮은 열매가 아니다. 우주를 담아내고 있는 둥근 원圓이고, 혹독한 시련을 이겨낸 성숙한 인간이다.
/ 권희돈 시인
대추 한 알 / 장석주(1965 - )

대추가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천둥 몇 개
벼락 몇 개
저 안에 번개 몇 개가 들어서서
붉게 익히는 것일 게다
저게 저 혼자서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이
들어서서 둥글게 만드는 것일 게다
대추야
너는 세상과 통하였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