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은 부정적 이미지인 무더위의 대척점에 놓인다. 찬란하면서도 슬픈 이미지를 가진 봄이다. 보람이 솟구치기도 하고 무너지기도 하는 봄이다. 기대와 상실을 내포하는 역설의 봄이다. 이 역설의 봄을 잃고 화자는 슬픔 속에서 다시 봄을 기다리는 상황에 처해 있음을 애상적 어조로 읊고 있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태어난 사람은 반드시 죽듯이, 모든 생물은 생성의 순간부터 소멸을 향해 나아간다. 소멸의 끝이 완전한 상실이다. 사랑을 잃었을 때 가장 큰 상실감을 느끼는 것처럼, 잃는 것이 고귀한 것일수록 아름다운 것일수록 소중한 것일수록 상실의 안타까움이 더욱 크게 느껴진다.
화자가 상실한 봄은 매우 고귀한 가치를 지닌 그 무엇의 상실인 듯하다. 삼백 예순 날 마냥 섭섭해 울 정도의 귀한 것을 상실하였다. 그러므로 화자가 울면서 다시 기다리는 봄은 단순이 계절이 순환하여 돌아오는 봄의 상실이 아니다. 결코 상실해서는 아니 되는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 그 무엇이다. 혹여 그것이 빼앗긴 봄은 아닐까.
'모란이 피기까지는'과 같은 시 한 수쯤 낭송하면서 이 찬란한 봄을 떠나보내는 것도 괜찮겠다.
/ 권희돈 시인
모란이 피기까지는 / 김영랑(1903 - 1950)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