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이 봄에 피워내는 꽃들의 모양새가 사뭇 경이롭다. 꽃들은 시적 허용의 극치를 보여주며 이심전심으로 핀다. 이미 봄은 부처님의 말로 이루어진 교법 경전이 아니라 교외별전으로 이루어진 선법 경전이다.
인과법은 저 깊숙한 데서 사람과 자연을 조종하며 파릇파릇한 충돌을 자아낸다.
조실 스님의 사리가 연초록 연등으로 매달리고, 진달래꽃은 동토의 껍질을 찢고 사미니의 초경빛으로 피어나고, 보살님의 노오란 생강꽃잎차 향기를 맡고 옥양목처럼 하얀 목련이 들창문에 핀단다. 솟구쳤다 내리꽂는 노골지리의 요란한 폼새에 사람이 사는 마을에 복사꽃 오얏꽃 살구꽃이 일제히 꽃축전을 벌이는데, 이 만화방창한 소란 속에 다람쥐는 어느 새 조실 스님인 양 봄 경전을 읽는단다.
이만하면 올 봄엔 꽃구경 가지 않아도 되겠다. 실제로 피어 있는 꽃을 보면 맨숭맨숭 할 것 같다. 이만하면 한동안 명산대찰을 찾지 않아도 되겠다. 다람쥐가 스님 되어 경전 읽는 소리보다 아름다운 소리는 들을 수 없을 것 같다.
/ 권희돈 시인
봄 경전 / 장문석(1956 - )

잿속에서 날아오른 스님의 사리가 너나없이 나뭇가지마다 연초록 연등으로 봉긋봉긋 매달리기 시작했는데요
하필이면 그날 새벽 선방에 든 어린 사미니, 희디 힌 단속곳에 진달래 꽃물이 화들짝 저도 그만 엉결에 늙은 공양주 보살님 품속으로 콩닥콩닥 뛰어들었더니만
빙그레 웃으시며 노오란 생강꽃잎차 한잔 건네는데요
그 향내 벌써 산중에 둘러 퍼졌는지
겨우내 가부좌만 틀고 있던 목련이 재빨리 삼층 석탑 휘돌아 나와 뽀송뽀송한 옥양목 몇 송이 들창문에 얹어 놓았구요
요사체 그늘 밑 맑은 빨래터 옹달샘도 무에 그리 즐거운지 퐁퐁퐁퐁 노래 한 가락 귀에 걸었구요
그 소리 쫑긋한 젊은 누룩뱀이 지게문 지그시 밀고 나와 혓바닥 날름날름 해바라기를 하고 있네요
몹쓸 건 저 놈의 노골지리, 괜한 시샘으로 노골노골 지리지리 하늘로 솟구쳤다 내려앉았다 한참이나 오도방정 떠는 바람에
아랫마을 세속의 복사꽃 오얏꽃 살구꽃도 눈치 하나로 속눈썹 가다듬어 일제히 화사한 꽃축전을 올려 보내는데요
오며 가며 산중 소식 죄다 엿들은 다람쥐 거사님, 죽고 사는 게 다 한통속이라고
도토리 목탁 도닥도닥 제법 조실 스님 시늉으로 봄 경전을 읽고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