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있어도 모호하지 아니하고, 가까이 있어도 거칠지 아니하다. 여럿이 있어도 소란하지 아니하고, 혼자 있어도 고독해 하지 않는다. 바위 뒤에 수줍게 피어나는가 하면, 잔솔밭에서도 잔솔 그늘에 겸손하게 피어난다.
소월의 진달래꽃에 등장하는 여인이 바로 이런 여인이다.
몇 해 전 강원도에 큰 불이 난 적이 있었다. 그 이듬 해 봄 잿더미 위에서 싹을 틔우는 눈 하나가 있었으니 그게 바로 진달래였다. 동토에서나 불구덩이에서나 죽지 않고 살아남는 끈질긴 생명력이 똑 우리 한국인을 닮았다. 한국인 중에서도 춘향이와 심청이를 합성한 여인을 닮았다.
진달래꽃의 여인을 보아라. 얼마나 당당하고 현명한 여인인가. 내가 싫어서 떠나는 님에게 사랑병을 고쳐주는 영변 약산의 진달래꽃을 복용시키겠다고 한다. 그 약을 한 알 두알 먹으며 님의 사랑병은 차차 나아갈 터. 사랑병이 다 나으면 반드시 돌아올 터. 돌아올 줄 알기에 죽어도 눈물 흘리지 않을 터.
춘향이처럼 강하고 당당하며 심청이처럼 착하고 인내심이 많은 여인이 바로 진달래꽃의 여인이다.
진달래꽃을 닮아서일까. 남자들한테는 미안하지만 우리나라는 여자가 강하다. 매 대회마다 한국낭자 아니면 한국계 낭자가 우승하는 LPGA를 기억하는가. 한국낭자가 우승을 못하면 세계적인 뉴스거리가 되는 그 대회 우승자에게 진달래 꽃다발을 선사하면 어떨까.
/ 권희돈 시인
진달래꽃 / 김소월(1902 - 1934)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눈물 아니 흘리오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