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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혜선

충북발전연구원 연구위원

7월 첫주. 남들보다 일찍 휴가를 다녀왔다. 올해는 어쩌다 보니 러시아를 가게 되었다. 러시아 놀러 간다고 하니, 주변에서 내게 경고의 말이 많다. 조심해라. 거기 사람들은 도끼를 들고 다닌다. 맥주를 대낮부터 먹는다. 마피아들도 많다. 등등. 그동안 여러 여행경험을 축적한 나였지만 왠지 러시아는 살짝 긴장하게 만들었다.

드디어 입국. 쉽지 않았다. 입국심사만 2시간 넘게 걸린 듯하다. 뭐 그리 오래 걸리는지. 어떤 동양인은 20분 넘게 심사관의 유리창 앞에 서 있었다. 죄가 없어도 그렇게 오래 세워두면 왠지 내가 무슨 죄를 지었나· 하는 생각이 들 거 같았다. 휴우~~. 아무튼 기나긴 입국심사를 끝내고 짐 찾으러 가면서 두근두근. 혹시 누가 가져갔으면 어쩌지. 러시아는 짐을 다 뜯어본다고 하던데 멀쩡할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걱정된 것이다. 다행히 나의 캐리어는 나를 기다리며 회전목마 타듯 트레일을 멀쩡하게 돌고 있었다.

호텔로 향하는 길. 소매치기라도 당하면 어쩌나. 잔뜩 긴장한 나. 어떤 분이 러시아는 지하철 에스컬레이터가 너무 빨라 조심해야 하고, 에스컬레이터 위에서 올라오는 사람을 밀어 떨어뜨리는 일도 있다는 소리도 했다. 그 생각이 나서, 에스컬레이터 타고 거의 올라갔을 때 정말 긴장했다. 밀어도 뒤로 안 자빠지기 위해. 지금 생각하니 순진하게도 내가 속은 거였다.

그런데 문제는 무섭거나 험악하거나 그런 것이 아니었다. 문제는 의사소통이었다. 나는 러시아어를 모르는데, 그들은 러시아어만 할 줄 알았다. 내가 길을 물으려고 다가가면 도망간다. 아니 도망이 아니라 손을 내저으면서 가까이 오지 말라고 한다. 무슨 전단지 돌리는 사람처럼 말이다. 공연티켓매표소의 할아버지 역시 손을 내저으며 고개를 외면한다. 난 너한테 표 안 판다 식이다.

아. 속상하다. 러시아까지 와서 이렇게 무시당하고 버려질 줄이야. 자꾸 외면당하니 여행 전 하늘을 찌르던 나의 자신감이 점점 자유 낙하한다. 사람들이 날 벌레 보듯이 무시하고 피한다. 그래도 러시아까지 와서 포기할 수는 없고, 내가 갈 곳은 찾아가야 하니, 다시 한 번 용기를 내서 쪽지를 꺼내며 묻는다. 아~. 이번 아저씨는 그래도 나의 쪽지를 보고, 손짓 발짓으로 어디 어디라고 이야기해준다. 감사. 또 감사하다.

공연티켓 역시, 포기하지 않고 다른 매표소를 갔더니 40대 여자였다. 영어단어만 나열한다. 그래도 소통이 가능하다. 오페라 티켓. 투데이. 그랬더니 가격대를 적어 보여준다. 내가 원하는 가격대를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티켓 구매 성공. 그녀는 영어를 못했지만 날 도와주었다.

처음엔 사람들이 날 피하고 자꾸 거절하니 의기소침했지만,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자 그런 거절에 익숙해진다. 서너 번 물어볼 것을 각오하거나 혼자 찾아다니며 여행 일정을 무사히 끝내고 한국에 돌아왔다. 현지에서는 고생했으나 그래도 즐거운 추억을 안고 말이다.

이제 생각해 보니, 우리도 영어에 자신이 없거나 쑥스러워 외국인이 다가오면 피하기도 하고, 눈을 안 마주치려고 하는 경향이 제법 있다. 그런데 막상 내가 그 외국인 입장이 되어보니, 날 피하는 것처럼 느껴지고, 몇 번 당하니 절망하게 된다. 따뜻한 눈길 또는 "도와줄까·" 하고 다가오는 현지인이 무척 고마웠던 기억이다.

영어를 못해도 손짓 발짓으로 알려준 아저씨, 한두 마디 영어로 내게 티켓을 판 여자분. 지도 들고 두리번거릴 때 "도와줄까·"하고 다가온 20대 여성, 무거운 내 캐리어를 들어준 20대 남성. 내가 찾는 미술관까지 같이 가준 남성 등. 몇 번의 친절함이 참 고마웠던 기억이다.

이제부턴 나도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 외국인을 마주치면 내가 먼저 가서 "도와줄까·"하고 말해볼까 한다. 영어가 중요한 건 아니니까 말이다. 설마 날 피하진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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