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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혜선

충북발전연구원 연구위원

지난 가을, 출장차 필리핀의 한 국제학교를 방문하여 이사장님과 말씀을 나누던 중 나온 단어가 바로 "문화소비자"이다. 한국에서 30여 년간 교직생활을 하고, 필리핀에서 국제학교를 설립한 한국인 이사장님의 교육 철학이 담긴 단어이기도 했다. 이사장님이 운영하는 국제학교에서는 말 그대로 국제적인 감각을 갖춰, 세계에서 활동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목적인데, 그게 꼭 영어를 잘하고, 하버드 등 우수한 대학에 입학하는 것이 최종목적이 아닌, 세계의 다양한 문화를 접하고, 여러 인종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세계 어디서나 자신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는 그런 인재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 중 예능수업에 대해서도 문화생산자가 아닌 문화소비자가 되기 위한 교육을 실시한다고 했다. 무슨 말인고 하니, 피아노를 배운다고 모두다 피아니스트가 되는 게 아니고, 바이올린을 배운다 해서 모두가 바이올리니스트가 되는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그림을 그린다고 모두가 화가가 되는 게 아니다. 즉, 전문 아티스트가 되어 문화를 생산하는 사람은 해당분야에 재능과 열정이 있는 사람이 하면 되고, 우리 일반인들은 그 문화를 소비할 정도의 교양을 쌓으면 된다는 것이다. 즉, 음악을 듣고 감상하고, 그림을 보고 그림을 감상할 수 있을 정도의 문화소비자 교육을 한다고 했다. 이사장님의 교육철학에 백배 공감!!

우리 현실을 보자. 우리는 너무 정석대로 제대로 잘 배우려고만 한다. 그런데 이게 흥미위주보다는 마치 전문가가 되려고 하는 느낌이다. 시작도 하기 전에 지칠 거 같다. 스포츠도 마찬가지이다. 수영을 배울 때도 수영자세를 프로선수같이 배우고, 골프를 배울 때도 마치 프로골퍼처럼 바른 골프자세를 유지하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한다. 그냥 물에 빠져죽지 않고 즐길 수 있을 정도로 수영하고, 적당히 즐길 수 있을 정도의 골프 스윙을 하면 잘못되는 것인가? 실제로 예전에 취미로 그림을 배우고자 화실엘 다녔는데, 한달내내 펜슬로 선긋기만 해야 했다. 기초를 다져야 하니까!! 결국, 너무 지겨워서 그만두고 말았다.

학교수업에서는 이론도 배운다. 고전주의, 낭만주의, 인상주의 등등. 무슨 주의가 그리 많은지. 그렇다고 그걸 제대로 이해하는지. 그냥 외운다. 왜? 시험에 나오니까. 그리고 어디 가서 말하면 유식한 듯 보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음악을 제대로 듣고, 미술을 제대로 감상하고 스포츠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교양을 갖추는 것 아닐까?

실제로 클래식 연주회를 가보면 언제 박수치는지에 대해 모르는 경우가 흔하다. 문화교육이 부족해서? 절대 아니다. 어릴 때부터 피아노니, 바이올린이니 악기 하나씩은 배우고, 미술학원에 가서 그림도 열심히 교육을 받아온 우리들이다. 다만, 이것이 너무 문화생산자가 되기 위한 교육이었다는 점이다. 나 역시, 문화를 감상하거나 즐기는 올바른 문화소비자가 되기 위한 교육은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연주회에서 연주가는 한명이지만, 청중은 100명, 200명이라는 사실. 그래서 문화소비자가 되기 위한 교육이 더 중요한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공부하는 문화생활이 아닌 즐기는 문화생활로 전환해야겠다. 우리 대중은 교양으로서 문화를 소비할 정도의 지식이면 충분한 것이다.

2001년 출판된 다치바나 다카시의 책 "됴코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를 읽어보면, 대부분 도쿄대학 출신으로 구성된 일본 외교관들은 국제회의가 끝난 후 담화를 나누는 자리에서 대화를 이끌어가지 못한다고 한다. 자기 전문분야에서는 최고의 지식을 가졌을지 모르나, 인문사회, 문화, 상식 등 교양이 부족하여 대화에 참여를 못하고 벙어리가 된다는 것이다.

토익 900점대 영어실력, 낭만주의 음악가나 인상파 화가에 대해 전문가 수준의 지식을 갖고 있지만, 음악회에서 언제 박수치는지에 대한 상식을 모르는 문화지식인은 빨리 벗어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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