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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혜선

충북발전연구원 연구위원

일본에서 박사과정을 밟던 유학시절 내게 잊혀지지 않는 2번의 대화가 있다.

첫 번째 대화. 어느 날, 우리나라의 포털사이트에서 선호하는 결혼상대자의 직업에 대한 통계가 나왔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신랑감으로는 의사, 변호사, 검사 등이었을 것이고, 신부감으로는 약사, 선생님 같은 직업이 아니었을까 한다.

일본인 대학원생A와 대화를 하던 중, 일본에서는 신랑감과 신부감으로 인기있는 직업이 뭐냐고 물었다. A의 대답은 의외로, "신랑감으로는 그냥 회사원일거 같고, 신부감으로는 간호사일 듯하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바로, "그래? 특이하다. 한국은 의사나 변호사처럼 잘나가는 직업을 좋아하는데, 일본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라고 반문했다. 그랬더니, A가 말하길, "물론, 의사나 변호사 같은 남편을 만나면 좋겠지만, 그런 사람들은 일단 숫자가 적으니 만나기 어렵고, 그런 훌륭한 직업을 가진 사람과 결혼하려면, 상대방인 여자도 그 정도의 직업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라고 말한다. 난 A의 대답에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몰랐고, 왠지 부끄러웠다.

두 번째 대화. 내가 유학 간 대학에서는 박사과정 중 일본인 학생은 단 1명, 그리고 나머지는 모두 외국인 유학생이었다. 그 대학은 일본 7대 제국대학 중 하나였기 때문에 그리 수준이 떨어지는 대학도 아니었는데, 왜 일본인 박사과정이 없을까? 내가 2001년에 일본 유학을 갔을 당시 우리나라 대학에서는 박사과정을 밟는 학생이 상당히 많았다. 하루는 그게 궁금해 어느 날 바로 그 A에게 왜 일본학생들은 박사과정을 별로 안하냐고 물었다. A가 말하길, "박사과정은 교수가 되려는 사람들이 하는 것인데, 교수자리는 한정되어 있어 되기도 어렵다. 그리고 교수는 그만큼 훌륭한 사람이 하면 되지, 아무나 교수가 되는 건 아니다." 라고 한다. 오!! 마이갓. 난 또 당했고, 부끄러웠다. 난 박사 받으려고 한국에서 유학까지 간 바로 그 아무나 아닌가?

당시 나의 나이는 30정도였다. 내가 30년 동안 살았던 사회는 꼭 1등을 해야만 대접을 받는 사회였다. 남보다 공부도 잘해야 하고, 남보다 더 좋은 직장을 다녀야 하고, 남보다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하는 그런 사회였다. 100점만이 유일하게 칭찬받는 그런 사회 말이다. 내가 유학을 간 것도, 순수하게 학문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남들보다 더 잘나가기 위한 것 아니었던가?

그런데 A는 아니었다. A는 1등은 1명밖에 없고, 1등이 있다면, 꼴등도 있고, 중간등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꼭 1등만이 행복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자기의 능력에 맞는 일을 찾고, 거기서 행복하게 살면 되는 것이다. A는 나보다 대여섯 살이나 어린 친구였다.

A와 나눈 두 번의 대화 이후 나는 많이 바뀌었다. 먼저, 예전처럼 나를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게 되었다. 무조건 잘나가고 보자는 생각보다는 어떻게 하면 행복하고 즐거울까를 생각하게 되었다. 다른 사람과의 경쟁이나 비교가 아닌, 내 자신과 경쟁하고, 내가 세운 나의 목표와 비교한다. 그리고 욕심도 줄였다. 그랬더니 하루하루가 행복하고 즐겁다.

우리 이제부터는 2등, 3등, 그리고 꼴등에게도 박수를 보내고 격려하자. 몇 등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누군가가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고 성실했다면 그것으로 훌륭한 것이고, 그런 과정에서 행복하고 즐거웠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행복은 정말 성적순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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