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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낙춘

충북대학교 건축학과 명예교수

하트(heart)모양의 그림 안에 엄마의 도움을 받아 'I love you'라고 써진 외손녀 엘리스 봄(Elise Bohm)의 편지다. 서툰 솜씨에 엘리스의 고운마음이 드러난다. 엘리스의 사랑과 그리움이 나성(羅星, Los Angeles)의 봄소식에 묻어왔다. 편지봉투에 붙여져 있는 알록달록한 여러 장의 우표에서 외손녀의 손(手)이 만져진다.

지지난해 다녀간 후 거의 2년이 다 되어간다. 엄마 아빠 곁에 서있는 보미의 사진을 보니 훌쩍 컸다. 소녀가 되었다. 아무리 보아도 아빠를 쏙 뺀 것 같은데 어찌 그리 예쁜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미국에든 한국에든 어디에 있든 보고 또 보아도 보고 싶은 우리 손녀다. 가끔 엘리스와 나누는 화상통화(畵像通話)는 온가족이 함께하는 즐거움이다. 티브이(TV)화면에 할머니가 보이면 화면에 가깝게 다가온다. 얼굴도 만져보고 가슴에도 안기고 싶은 거다. 허나 만져지지도 않고 안겨지지도 않으면 이내 뒤돌아서서 티브이 뒤로 간다.

할머니가 티브이 뒤에 숨어 있는 걸로 알고 있는 거죠. 엘리스만의 아름다운 만남이다. 들여다보던 할머니가 눈을 감는다. 화면에서 멀어져가는 외손녀의 귀여운 뒷모습을 눈(眼)에 담는다.

봄 학기가 시작되었다. 첫날 첫 시간이다. 아직은 이른듯하나 한낮의 따스한 봄볕이 스며든 강의실에 들어서자 북적되던 수강생들의 시선을 온몸에 받는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지난겨울은 너무 추웠죠?"

"네" "네"

산발적으로 여기저기에서 응답은 있으나 시큰둥한 반응이다. 표정도 밝지 않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의 소통(疏通)에 익숙지 않아서다. 잠시 머뭇하다가 말문을 열었다.

"우리 모두가 일생동안 처음만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요? 단순히 그냥 지나치는 만남이 아니고 마주보고 말을 주고받는 만남의 경우 말입니다."

조사된 통계를 제시하지는 못했지만 많지는 않을 것 같다. 는 생각이다. 학생들의 표정이 다소 달라진다. 뭔가가 예상치 않은 이야기가 진행 될 것임을 알 듯 한 눈빛이다.

꽤 오래전에 해외여행을 할 때이다. 대 부분의 항공기좌석은 붙어있다. 특별한 예외가 없는 한 지정된 좌석에 앉는다. 옆자리에는 왼쪽이나 오른쪽에는 여자든 남자든 누구든 앉게 마련이다. 이런 경우 자연스럽게 짝이 된다. 그 당시 어느 외국인과 짝(seat mate)이 되어 비행(飛行)한 일이 있었다. 두어 시간쯤 걸리는 짧은 비행거리였고 주고받는 대화도 많지 않았다. 외국어로 말하기도 쉽지 않았다. 처음만난 그와 특별히 나눌 수 있는 화제(話題)도 별로 없었다. 간혹 긴말보다는 짧은 대화로도 웃음이 잦았고 눈 맞춤이 많았다. 목적지에 도착한 후 잠깐 동안이었지만 만나서 반가웠고 옆자리에 함께 해주어 즐거운 여행이 되었다고 한 후, 명함을 주고받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한 일이 전부다.

그 후 많은 날이 지났다. 오늘같이 좋은 어느 날이다. 머나먼 곳에서 그가 보내준 엽서를 받는다. 콜로라도 덴버(Denver)에서 로스엔젤리스까지 오는 동안 비행기 안에서 잠깐 동안 만났던 그녀의 고향 유럽(Europe)의 아름다운사진이 담긴 그림엽서다. 옆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나눈 시간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마음에 남아있는 지난날의 추억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멈추지 않았다. 한동안 주고받은 그림엽서가 꽤 많이 모아졌다.

기다리다

oil painting on canvas. 2009

이번학기 강의과목은 '도시와 건축' 교양과목이다. 한 학기강의시수는 한주에 2시간씩 15주간이다. 총 강의시수는 30시간이다. 하루하고 반나절도 안 되는 길지 않은 시간이다. 1주에 2시간뿐인 강의시간을 15주간 거의 4개월간 시간을 길게 늘려가며 만난다. 젊은 날의 아름다운 꿈을 키워갈 수 있는 충분한 기회다. 서둘지 않고 기다리면 된다. 기다림은 준비된 사람들만의 몫이다.

수학자(數學者) 뫼비우스(August Ferdinand Mobius)는 그의 띠(strip)를 따라 무한(無限)의 하늘 길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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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너 소사이어티 충북 72번째 회원' 변상천 ㈜오션엔지니어링 부사장

[충북일보] "평범한 직장인도 기부 할 수 있어요." 변상천(63) ㈜오션엔지니어링 부사장은 회사 경영인이나 부자, 의사 등 부유한 사람들만 기부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 11월 23일 2천만 원 성금 기탁과 함께 5년 이내 1억 원 이상 기부를 약속하면서 고액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의 충북 72호 회원이 됐다. 옛 청원군 북이면 출신인 변 부사장은 2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부모님을 도와 소작농 생활을 하며 학업을 병행했다. 그의 집에는 공부할 수 있는 책상조차 없어 쌀 포대를 책상 삼아 공부해야 했을 정도로 어려운 유년 시절을 보냈다. 삼시 세끼 해결하지 못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그의 아버지는 살아생전 마을의 지역노인회 회장으로 활동하며 어려운 이웃을 위해 봉사했다. 변 부사장은 "어려운 가정환경이었지만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 봉사하시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며 자라왔다"며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오늘날의 내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 졸업 후 옥천군청 공무원을 시작으로 충북도청 건축문화과장을 역임하기까지 변 부사장은 경제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나아지지 않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