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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낙춘

충북대학교 건축학과 명예교수

비개인 오후 집을 나선다. 흘러가는 구름사이로 드러난 하늘이 맑고 높다. 걷기 좋은날이다. 어디에 갈 것인가? 잠시 머뭇하다가 이내 갈 곳을 정한다. 오늘은 뚝방(방죽의 충청도방언)이다. 도시근교에 위치한 저수지다.

번거로운 도시를 빠져나가기 위해 차를 몰고 가다 섰다를 반복하며 사람들과 자동차가 넘쳐나는 복잡한 도시를 벗어나 앞이 툭 트인 지방도地方道에 들어선다. 도로변에는 온통 꽃이다. 하늘과 맞닿은 시골들녘의 한결같은 정경이 풍요롭다. 산허리에 감겨있는 비구름이 파란하늘로 유유히 비상한다. 비구름이 거친 후 드러난 산기山氣가 장엄하다. 천연 향기를 토해내는 숲이 깊다. 물소리는 맑다. 자연의 얼굴이다. 아름다운 그림이다.

차창을 통해 얼굴에 와 닿는 바람이 부드럽고 싱그럽다. 긴 머리칼이 바람에 휘날린다. 싫지 않다. 초추의 상큼한 만남이다. 가을에 안긴다. 이슬이 담긴 맑은 공기가 입술을 적신다. 바람에 실리어오는 풀냄새에 취한다. 한여름 불볕더위를 먹고 자란 사과가 익어가는 풍성한 가을이 오는 거다. 알알이 달려있는 벼이삭은 풍년을 알린다. 해마다 마을곳곳에서는 가을잔치가 시작된다.

지나치는 곳마다 길눈이 멈춘다. 멀리 바라다 보이는 산봉우리에 자리한 정자亭子를 보니 지난날의 추억이 되살아난다. 이내 마음은 그곳에 머문다. 고개를 돌려 먼 산을 본다. 산 넘어 산이 첩첩산중疊疊山中이다. 비경이다. 자연의 은총이다.

한참을 가다가 굽이굽이 굽어진 길을 지나 언덕을 넘어서 멈추니 뚝방이다. 낯설지 않다. 반기는 이 없어도 섭섭하지 않다. 이곳에 오면 뚝방이 둘이다. 하나는 눈으로 보이는 것이고 또 하나는 물에 비친 뚝방이다. 뚝방이 반기고 그곳에 내가 있는 것이다. 오늘은 혼자다. 언제나 그랬다. 나만의 뚝방이다.

간밤에 내린 비가 넘쳐난다. 만수滿水다. 잔잔한 물바람이 일고 있는 저수지에 다가가 물수제비를 빚어 반가움을 알린다. 손에서 떠난 조약돌이 수면위에서 너울너울 춤추며 두세 번 튕겨진 후 물속에 잠긴다. 마음이 젖는다. 한낮 따가운 볕에 데워진 조약돌의 온기가 손바닥에 남는다. 따스하다.

저무는 오후의 그림자가 길어지는 뚝방을 걷는다. 나만의 산책이다. 마이 웨이(My way)다. 신발을 벗는다. 맨발에 와 닿는 풀잎 맛이 살포시 느껴진다. 미풍微風에 흩날리는 강아지풀의 모양이 마치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며 반기는 것 같다. 정말 반갑다. 답례로 강아지풀을 둘로 쪼개어 강아지풀수염을 코밑에 붙이고 마주보며 웃는다. 그리움이 밀려온다. 재미있는 이름으로 불리어지는 풀도 떼어본다. 나만의 즐거움이다. 낮게 깔린 노을이 물든 저수지에 비친 뚝방을 걷는다. 물위를 걷는다. 뚝방에서의 아름다운 산책을 즐긴다. 행복하다.

여기저기 옹기종기 모여 조잘거리며 웃고 있는 야생화에 이끌려 촉촉이 젖은 풀밭에 자리를 깔고 눕는다. 하늘을 본다. 쪽빛하늘이다. 눈이 감긴다. 아름다운 추억이 바람에 실려 눈앞에 다가온다. 떠다니는 구름에 마음을 싣는다. 곳곳에는 꽃 잔치가 펼쳐지고 꽃잎마다 미소가 넘친다.

추억은 언제나 어디서나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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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너 소사이어티 충북 72번째 회원' 변상천 ㈜오션엔지니어링 부사장

[충북일보] "평범한 직장인도 기부 할 수 있어요." 변상천(63) ㈜오션엔지니어링 부사장은 회사 경영인이나 부자, 의사 등 부유한 사람들만 기부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 11월 23일 2천만 원 성금 기탁과 함께 5년 이내 1억 원 이상 기부를 약속하면서 고액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의 충북 72호 회원이 됐다. 옛 청원군 북이면 출신인 변 부사장은 2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부모님을 도와 소작농 생활을 하며 학업을 병행했다. 그의 집에는 공부할 수 있는 책상조차 없어 쌀 포대를 책상 삼아 공부해야 했을 정도로 어려운 유년 시절을 보냈다. 삼시 세끼 해결하지 못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그의 아버지는 살아생전 마을의 지역노인회 회장으로 활동하며 어려운 이웃을 위해 봉사했다. 변 부사장은 "어려운 가정환경이었지만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 봉사하시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며 자라왔다"며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오늘날의 내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 졸업 후 옥천군청 공무원을 시작으로 충북도청 건축문화과장을 역임하기까지 변 부사장은 경제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나아지지 않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