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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2.01.01 17:22:36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김낙춘

충북대 건축학과 명예교수

여느 해(年) 때도 그래왔듯이 가는 해(年)를 어느 누구도 잡을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되나· 아쉽든 그렇지 않든 보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요즈음은 어떻게 지내세요?"

"매일 그렇지 뭐, 바쁜 척 하고 잘 지내"

"바쁘게 지내신다니 고맙고 감사해요" 이따금 나누는 아내와의 대화다. 어딘가를 나다니기 좋아하고 뭔가를 하지 않고는 못 베기는 나를 아내는 잘 알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이러한 나를 마다하지 않고 감싸주며 자랑스러워하고 늘 고마워한다. 오히려 내가 미안하기도 하고 감사해야 할 일인데도 말이다. 나 때문에 마음 쓸 일이 있어도 어지간하지 않으면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다. 자유롭게 지내고 있는 나를 편안하게 해주기 위함이다. 한결 같은 고운마음을 지닌 아내의 사랑이다. 오랫동안 친구처럼 지내온 반려자(伴侶者)다. 타고난 나의 복(福)이다.

언제나 뚜렷하게 정한 곳 없고 오라는데 없을 때는 가고 싶은 곳에 간다.

"다녀오겠습니다."

"그래요"

"잘 다녀왔습니다." 집을 나설 때나 귀가 후 집에 들어서면 거실 제단(祭壇)위에 놓여있는 성모상(聖母像)께 올리는 나만의 인사말이다. 온종일 비워졌던 집도 지켜주시고 나를 편안하게 돌봐주신 것에 대한 감사기도이다. 제단 앞에 촛불도 밝혀드리고 맑은 물이 채워진 유리그릇에 꽃잎을 띄워 성모님 앞에 놓아드린다.

연일 이어지는 한파(寒波)가 맹위를 떨치고 있다. 동절기에 순환되어야 할 3한(寒)4온(溫)이 잊혀진지 오래다. 잿빛하늘에 결려있는 겨울해가 하얗고 차다. 얼굴에 와 닿는 바람이 목에 감기는 바람도 칼바람처럼 매섭다. 두툼한 목도리로 얼굴을 감싸고 집을 나선다. 잔뜩 껴입은 겨울옷이 버겁고 무겁다.

산(山)에 가면 둘이다

오늘은 산(山)이다. 오랜만에 가져보는 겨울산행이다. 홀가분한 기분으로 번잡한 도시를 벗어나 파란하늘에 다가갈 수 있는 겨울 산에 오른다. 아무생각 없이 걷는 것만으로도 좋은 그런 날이다. 하얀 겨울과 함께하는 동행이다. 오르막길도 오르고 내리막길도 내딛는다.

곧게 뻗은 산길보다는 꾸불꾸불하게 휘어진 산길로 들어선다. 가깝게 갈 수 있는 산길을 늘려가며 먼 산에 오른다. 산길이 깊어지고 멀어진다. 넉넉한 산행(山行)을 즐긴다.

빛바랜 나뭇잎이 쌓여있는 산길을 걷는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진한 흙냄새가 밟힌다. 은근한 산내가 산속에 번진다. 그늘진 계곡에 쌓였던 잔설(殘雪)이 녹아 물길을 만든다. 나뭇가지 사이로 비추인 쪽빛을 받아 흐르는 산수(山水)가 맑다. 촉촉한 산(山)공기가 몸속에 스며든다. 마음도 젖는다.

먹이를 찾아 둥지를 떠난 작은 산새들이 분주하게 나다닌다. 이 나무 저 나무 사이로 빠져나가는 산바람이 소리를 자아낸다. 산새들의 지저귐이 산소리에 실리면 산속의 연주가 시작된다. 오다가다 마주치는 산사람들과의 말없는 눈 맞춤도 반갑다. 산 정상에 올라 사람들만의 도시를 내려다본다. 모두가 바쁘고 힘들어 한다. 아름다운 이웃과 함께하고 있는 보통사람들의 삶이다. 가거니 서거니 그리고 머뭇거리며 걷는 것만으로도 긴 날이었다. 온종일 걷는 그런 날이었다. 산마루에 머물고 있는 신묘(辛卯) 년(年)과의 헤어짐이다. 이보다 더 좋은날은 없다. 그런 날이었다. 아무것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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