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김낙춘

충북대 건축학과 명예교수

따뜻한 남쪽으로 가고 싶다. 결코 추운 겨울이어서만은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일간신문을 펼치면 이런저런 기사를 대충 본 후 지나치기 쉬운 지면 하단에 게재된 부고(訃告)란을 무심코 들여다보는 경우가 더러 있다. 혹시나 생전에 가깝게 알고 지냈던 사람이 있는가를 확인한다기보다는 누군가를 찾거나 궁금해 해서도 아닌 것이다. 뭐랄까? 그냥 보는 거다.

2011년 세밑. 유명(幽冥)을 달리한 두 유형(類型)의 죽음을 되 집어 본다.

그 하나가 동토(凍土)의 북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절대 권력자였던 독재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이다. 예상치 못한 갑작스런 그의 죽음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이목(?)을 끌만큼 놀랄만한 역사적사건이었다. 사후에도 두터운 베일에 숨겨진 그의 죽음을 놓고 황당한 괴설(怪說)과 확인할 수 없는 뒷이야기가 난무했다. 분명한 것은 올바른 삶을 살아온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거나 슬퍼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다수 북한주민을 기아와 빈곤으로 전락시킨 무자비한 폭정(暴政)과 탐욕(貪慾)을 일삼아온 그는 죽어서도 용서받기 어렵다.

단언하건데 '김정일'의 사망은 예측된 인과응보(因果應報)다. 더더욱 이해할 수는 없는 일은 거짓과 위장으로 덧칠된 가식적인 울음을 토해내는 그쪽사람들의 해괴한 행태다. 안쓰럽고 측은하기까지 하다. 오죽했으면 저럴 수밖에 없었을까· 두렵고 무섭다. 지구촌에 마지막 분단국가의 부끄러움이자 비극이다.

또 하나의 죽음은 따뜻한 남쪽 대한민국 '민주주의자 김근태'의 서거(逝去)다. 그는 이 시대 불의와 권력에 맞서 싸워온 개혁(改革)을 상징하는 정치인이다. 민주화과정에서 촉발된 정치적 탄압과 수차례의 투옥 그리고 혹독한 고문(拷問)에 의한 후유증으로 인해 끝내는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떠났다. '김근태'의 가혹한 삶에는 정녕코 신(神)은 없었는가보다. 이유야 어떻든 정직과 진실을 앞세운 그의 안타깝고 슬픈 죽음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생존 시 그와 정치적 행보를 같이한 동료들의 추도사가 이어질 때마다 자리를 함께한 추도객들은 한결같은 고인에 대한 미안함과 안타까운 연민의 정을 토로(吐露)했다. 분명한 것은 '김근태' 그의 서거는 고귀한 죽음이었기 때문이다. 그와의 사별(死別)은 의롭고 착하게 살아왔던 아름다운사람과의 영원한 헤어짐이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승에서 힘들었든 삶 저세상에서는 편안하시기 바랍니다." 끝내 참았던 눈물을 쏟아내며 울음을 터뜨린 가족들. 손수건에 얼굴을 묻은 평생 동지이자 사랑하는 아내 곁을 떠나는 영정(影幀)속에 '고(故)김근태' 그는 여전히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가 떠나는 날 영하(零下)의 궂은 날씨 속 상여(喪輿)소리에 젖어 마지막 가는 길에는 흙먼지가 일고 하늘에선 진눈깨비가 흩날렸다.

그곳에 머물다

어느 누구든 죽기를 원하지 않는다. 죽음은 우리 모두의 숙명이다. 아무도 피해갈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슬퍼하는 것은 죽음이야말로 무엇인가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기를 힘들어했기 때문이다. 죽음이란 '흙(土)과 물(水)과 불(火)과 바람(風)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뿐이다.'

하늘나라로 거처를 옮긴 '스티브 잡스(Steve Jops)' 그는 '죽음은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숙명이자 삶이 만든 유일한 최고의 발명품이자 인생을 바꾸는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죽음은 변화를 만들어내며 새로운 것이 헌 것을 대체 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사실도 알려준다. 탄생의 기쁨처럼은 아니어도 슬프거나 두렵지 않은 아름다운 죽음을 생각한다.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아너 소사이어티 충북 72번째 회원' 변상천 ㈜오션엔지니어링 부사장

[충북일보] "평범한 직장인도 기부 할 수 있어요." 변상천(63) ㈜오션엔지니어링 부사장은 회사 경영인이나 부자, 의사 등 부유한 사람들만 기부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 11월 23일 2천만 원 성금 기탁과 함께 5년 이내 1억 원 이상 기부를 약속하면서 고액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의 충북 72호 회원이 됐다. 옛 청원군 북이면 출신인 변 부사장은 2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부모님을 도와 소작농 생활을 하며 학업을 병행했다. 그의 집에는 공부할 수 있는 책상조차 없어 쌀 포대를 책상 삼아 공부해야 했을 정도로 어려운 유년 시절을 보냈다. 삼시 세끼 해결하지 못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그의 아버지는 살아생전 마을의 지역노인회 회장으로 활동하며 어려운 이웃을 위해 봉사했다. 변 부사장은 "어려운 가정환경이었지만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 봉사하시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며 자라왔다"며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오늘날의 내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 졸업 후 옥천군청 공무원을 시작으로 충북도청 건축문화과장을 역임하기까지 변 부사장은 경제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나아지지 않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