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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길중

전 충북도 행정국장

세상 멋모르고 뛰어놀던 코 흘리게 시절, 그 짧은 다리조차도 마음 놓고 뻗을 수 없을 만큼 작았던, 그야말로 손바닥만 한 방 2개에 물만 주면 쑥쑥 자라는 콩나물시루 속의 콩나물처럼 6남매가 옹기종기 모여 살았다. 어떤 것이 좋고 나쁘다고 제대로 판단 할 수 없었던 어린 나이라서 그랬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더라도, 가족들 그 누구도 가난을 대물림 해준 부모님을 원망하거나 방이 적어서 생활하기에 불편하다고는 눈 곱 만큼도 해 본적이 없었다. 봄이 되면 지천으로 피어나는 꽃들을 찾아 앞산과 뒷산을 오르내리며 달콤한 꽃향기 배어나는 꽃잎을 따 먹기도 하고, 여름이 되면 앞개울에 나가 맨 손으로 고기를 잡으면서 물장구치며 미역도 감았다. 그리고 가을이 되면 방안에까지 몰래 숨어 들어와 있다 시도 때도 없이 찌르륵 찌르륵 울어 대는 귀뚜라미 소리를 자장가 삼아 곤한 잠에 떨어지곤 했다.

그런데도 유독 겨울 추억이 더 생생하게 뇌리에 남아 있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지 모르겠다. 기온이 영하로 뚝 떨어지는 날이 계속되는 날 아침이면 문고리는 아예 꽁꽁 얼어붙어 지남철에 쇳가루가 달라붙듯 방문을 열 때마다 손이 쩍쩍 달라붙곤 했고,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이던 수은주가 곤두박질치던 날씨도 친구들 앞에 더 이상 장애물 이 될 수 없었다. 붉은 태양이 떠오르면 밖으로 뛰어나가 세상 모두가 내 것 인양 뛰어놀기에 정신이 없었다. 말 할 것도 없이 손과 발은 겨울 내내 동상에 걸려있게 마련이었고, 그때의 흔적이 지금까지도 발등에 파랗게 멍이든 훈장으로 남아 있다. 그렇게 밖에서 하루해를 보내고 집으로 들어오는 저녁 시간이면 어머니께서는 발을 어루만져 주시면서 동상에 걸린 발은 콩 자루에 넣고 자면 깨끗하게 낳는다고 하시고는 콩 한 자루를 가져와 발을 넣게 하고 콩 자루주둥이를 꽁꽁 묶어 주시곤 했다. 그렇지만 그 콩 자루가 밤새도록 얌전하게 있을 리 만무했다. 다음 날 아침이면 콩 타작을 해놓은 방바닥에서 콩을 주어 담곤 했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겨울의 기억은 이 뿐이 아니다. 어른들께서는 연례행사처럼 가을이 가기 전에 햇살이 따사로운 날을 잡아 겨울에 바람이 방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방 문짝의 4면을 빙 둘러 문풍지를 여러 겹 바르시곤 했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한 겨울 밤 황소바람은 자신을 막아 내려는 방어기재가 지난해와 크게 달라지지 않아 다행이라는 듯, 문풍지를 사정없이 밀쳐내고 안으로 들어와서는 이불 밖으로 나와 있는 얼굴이며 발등을 얼음장으로 만들어 놓곤 했다.

그렇지만 우리 옆에는 추위를 이겨낼 수 있게 하는 질그릇 화로에 알불을 긁어모은 화롯불이 방 한가운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화롯불의 위력은 대단해서 방안은 금방 훈훈한 온기로 가득 찼다. 그때쯤이면 나이 차이가 크지 않은 누나와 여 동생과 함께 화롯불을 중심으로 빙 둘러 않아 밖에서 뛰노라 언 손과 발을 녹이면서 하하 호호 웃음꽃을 피워내곤 했었다. 하늘만 빠끔하게 올려다 보이는 첩첩산중 깡 촌에 한 겨울이 되면 해는 더 빨리 서산 너머로 숨어버렸기 때문에 저녁을 먹고 나서는 일지감치 잠자리에 들 수밖에 없었다.

50여년이 흘러가버린 지금, 딸아이가 결혼을 해 새 살림을 차려 나가고, 아들 녀석은 직장을 따라 서울에서 생활을 하고 있다. 어린 시절 부모남과 6남매가 함께 살았던 집에 비하면 궁궐 같은 아파트에서 아내와 단 둘이서 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초가집에 살았던 그 시절이 훨씬 더 여유와 낭만이 있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왠지 모르겠다. 창문 너머로 하얀 눈이 날린다. 밖으로 달려 나가 친구들과 눈사람을 만들고 눈싸움도 해 보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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