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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2.04.08 16:44:20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강길중

전 충북도 행정국장

따뜻한 햇살이 포근하게 내려쬐는 일요일 오후, 무시로 올랐던 뒷동산을 다시 찾았다. 지난주 까지만 해도 전혀 낌새를 보이지 않던 산수유 꽃이 노랗게 피었나 했더니 여기저기서 진달래도 연분홍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었다. 그 뿐이 아니었다. 꽃보다 잎이 먼저 핀다는 찔레며 싸리나무에도 갓 태어난 아이가 입고 있던 배내저고리의 옷소매 틈을 비집고 불끈 쥔 고사리 손을 내밀 듯 여린 초록색 잎들이 올라오면서 그럴듯하게 어우러지고 있었다. 지난 가을 낙엽이 떨어지고 난 뒤로 삭막하고 쓸쓸하게만 보이던 산과 들에 꽃이 피어나고 연초록 잎들이 돋아나면서 하루가 다르게 그 모습이 변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꽃샘추위 때문에 잠시 주춤 하던 봄이 이미 우리 곁에 깊숙하게 들어와 있었나보다. 요즘 들어 산을 오를 때면 라디오를 듣기위해 스마트폰에 이어폰을 연결 귀에 꽂은 채로 걷는 버릇이 생겨났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가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내가 살아온 삶을 유리알처럼 꽤 뚫고 있는 것 같아 가끔씩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공감을 하기 때문이다. 오늘은 '부모님 전 상서'라는 주제로 청취자들의 사연을 본인의 육성녹음으로, 아니면 MC들이 대신 읽어주는 형식으로 진행을 하고 있었다. 더 이상 뵐 수 없는 부모님을 그리워하며 살아생전 잘해 드리지 못해 죄스럽다는 내용과, 이제는 살만해져서 부모님께 잘 해드리고 싶은데 부모님께서 더 이상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는 안타까운 사연들이 눈물과 함께 끊어질 듯 끊어질 듯 가늘게 이어진다.

유독 바깥 생활을 많이 하셨던 아버님은 집에 들어오시는 날이면 막내아들인 저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싶어 하셨다. 그렇지만 나는 당신이 가까이 하려하면 할수록 더 멀어지려고 했고, 피 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자주 뵙지 못하는 관계로 정이 들지 않아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 익숙하지 못했고, 농사일 등 집안 대소사를 도맡아 하시는 어머니와 형님이 안쓰러워 그런 생각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아버님은 이런 자식의 마음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아들과 이야기를 나누고자 하시는 뜻을 굽히지 않으셨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군 복무를 마치고 나서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이 가능 하겠냐고 걱정을 하던 7급 공무원에 합격을 했을 때는 날아갈듯 좋아 하시면서 동네방네 자랑하고 다니시던 그런 아버님의 모습이 눈에 선하기만 하다. 그런데, 그토록 자랑스럽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시던 아들이 공무원이 된지 1년도 되지 않은 어느 날, 아버님이 입원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병원으로 달려갔을 때 당신께서는 이미 정상의 몸이 아니었음에도 단박에 저를 알아보시고 어떻게 왔느냐는 마지막 말씀을 하신 후 병세가 악화돼 입원하신지 이틀 만에 길지 않은 65세를 일기로 유명을 달리 하셨던 것이다.

그렇게 아버님께서 세상을 떠나시고 또다시 33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내게도 자식이 태어났고 아이러니 하게도 그 자식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7급 공무원이 돼 중앙부처에 근무하고 있다. 정작 자신은 아버지와의 대화를 어떻게든 피하려 했으면서도 뻔뻔스럽게 자식에게는 많은 대화에 응해 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자식은 못난 아버지를 닮지 않았고, 공직선배인 내게 이럴 경우에는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는 자문을 스스럼없이 구하기도 한다. 눈물 나게 고마우면서도 아버님께는 정말 죄송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버님! 이제는 그때 당신의 심정을 진정으로 알 것 같습니다. 아버님! 저도 이제 공직을 졸업 했습니다. 그래서 남는 것이라곤 시간 밖에 없답니다. 꿈속에서라도 아버님을 뵙고 까만 밤을 하얗게 지새우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아버님!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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