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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길중

전 충북도 농정국장

공직을 떠나온 이후로 아직까지는 특별히 하는 일이 없다. 그렇다고 무위도식(無爲徒食)하며 방구석에 틀어박혀 뒹굴 거리고 있을 수만도 없는 일이다. 그래서 어느 정도 규칙적인 생활도 할 수 있고 건강도 함께 챙길 수 있겠다 싶어 시작한 것이 헬스와 등산, 그리고 스크린 골프다. 아침 출근시간이 되면 30년 넘게 해오던 습관대로 헬스클럽으로 출근을 해 한두 시간 근력운동과 유산소 운동을 하고, 오후에는 가깝게 지내는 지인들을 만나 집 근처에 있는 산을 오르거나 또 가끔씩은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는 겨울 운동으로 제격인 스크린 골프장에서 운동도 하고 담소를 나누면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일주일에 한두 번 꼴로 산을 오르게 된다. 산을 오를라 치면 어느새 이순(耳順)이 다 되어버린 나이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어 가급적 나지막한 산이거나, 집에서 그리 멀지 않고 위험하지 않은 산을 택할 수밖에 없다. 산행을 위한 목적지가 정해지고 시골길을 달리다 보면 겨울 풍경이 언제나 그랬듯이 들판은 휑하니 비어있기 마련이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누렇게 익은 곡식과 탱글탱글한 윤기 흐르는 과일들로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를 것 같은 풍성하기만 하던 늦가을의 들판과는 완전 대조되는 썰렁하기 그지없는 허전한 모습이다.

그런데도 유독 일손이 모자라 가을걷이가 끝나지 않은듯해 보이는 감나무들만이 겨울바람에 몸을 바짝 움츠린 채로 옹기종기 모여 있는 시골마을을 지키고 있다. 어느 집 감나무라고 할 것도 없이 열 손가락과 눈짐작만으로도 그 숫자를 헤아릴 수 있을 정도의 홍시 몇 개씩이 어김없이 매달려 있는 것이다. 발그스레하고 말랑말랑한 홍시의 얇은 껍질에 조그만 흠집을 내고 후루룩 들여 마시면 과즙이 한꺼번에 입 안으로 쭉 빨려 들것 같아 보인다. 그런가하면 나목(裸木)인 채로 서있는 감나무 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려 칼바람에 몸을 맡긴 채 그네를 타고 있는 홍시의 모습이 마치 줄타기를 배우는 어릿광대가 떨어질 듯 떨어질 듯 조심스럽게 외줄을 타는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렸을 때 기억으로는 어른들은 이런 홍시를 '까치밥'이라고 부르시곤 했다. 겨울이 되고 하얀 눈이 온 세상을 덮어 버리면 날 짐승들이 먹이 구하기가 어려워지고, 혹시라도 먹이를 구하지 못한 새들이 잘못하다가는 겨울을 온전하게 살아남지 못할 수도 있다는 배려(配慮)에서 까치를 비롯한 새들의 먹잇감으로 감 몇 개씩을 남겨 두는 것이라고 했다.

물론 나눔이란 남는 것으로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 까지도 포함해서 하는 말일 것이다. 그렇지만 진정한 의미의 나눔이란 우리네 조상들이 대대로 실천해 오셨던 낭만(浪漫)과 여유(餘裕)와 인정이 넘쳐나는 '까치밥' 정신처럼, 없는 가운데서도 남을 배려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즉, 나눔이란 배불리 먹고 쓰고 난 다음 주변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부족하고 없는 가운데서도 덜 먹고 덜 쓰고 절약해서 어려운 이웃과 함께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세상이 점점 더 각박해 지고 살기가 힘들어 진다고 한마디씩 한다. 나 보다 잘사는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어렵다고 하는 말 일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 우리들이 살고 있는 세상은 적어도 우리네 조상들이 초근목피(草根木皮)로 끼니를 때우면서도 '까치밥' 정신을 실천하셨던 시절에 비한다면 기와집에서 비단옷 입고 맛있는 음식 먹으면서 따뜻한 아랫목에 누워 배 두드리며 살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조상들이 해 오셨던 낭만과 배려와 여유를 잃어버리고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한 겨울 찬바람이 옷깃을 파고든다. '까치밥' 정신의 배려와 나눔이 넘쳐나는 임진년(壬辰年)한 해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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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나경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 인터뷰

[충북일보] ◇취임 두 달이 지났다. 그동안의 소회 말씀해 달라 2016년 국회 저출산고령사화특귀 위원장을 하면서 출산율 제고와 고령화 정책에 집중했다. 지난 6년간 대한민국 인구구조는 역피라미드로 갈 수밖에 없는 흐름이다. 2025년 초고령 사회 진입에 따른 인구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 위해서는 큰 틀에서의 인구미래전략이 필요하다. 취임 후 위원회가 해온 일을 살펴보고 관계부처, 관련 전문가, 지자체, 종교계, 경제단체 등 각계각층과 의견을 나눴는데 아직 연계와 협력이 부족하다. 위원회가 정책을 사전에 제안하고 부처 간 조정 역할을 강화해 인구정책 추진에 매진할 계획이다. ◇인구정책 컨트롤타워로서 위원회의 인구미래전략 비전과 방향은 현재 극심한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구구조가 크게 변화하고 있다. 위원회는 피할 수 없는 초고령사회를 대비하는 '미래 100년 준비'를 시작한다. 인구구조에 영향을 받는 산업, 교육, 국방, 지역 등 전 분야의 준비를 통해 사회구성원 모두 행복하게 살 수 있는 탄탄한 미래를 설계하고자 한다. 인구구조 변화를 완화하기 위해 출산율 제고는 반드시 필요하다. 새해에는 '2023년 응애! 응애! 응애!' 구호를 펼친다. 젊은 세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