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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길중

전 충북도 행정국장

도심은 늘 그렇듯이 무섭게 질주하는 차량들, 그리고 북적이는 인파들 때문에 왠지 답답하고 짜증이 날 때가 종종 있다. 그런데 며칠 전 태풍 '카눈'이 지나고 난 다음부터는 업친데 덮친 격으로 30도를 훌쩍 넘는 찜통더위가 기승을 부리면서 뜨거운 공기가 숨통을 조여 오고 있다. 가만히 있어도 끈적끈적한 액체가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리는 그야말로 불쾌하기 그지없는 날들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열치열(以熱治熱) 이라고 했다. 이럴 때 방구석에 틀어 박혀 에어컨을 틀어 놓고 바보상자와 씨름하며 시간을 보내기 보다는, 차라리 밖으로 나가 후덥지근하고 답답한 마음을 식혀 보는 것도 더위를 이겨내는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적이 뜸한 농촌마을 한 가운데 고목이 되어버린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 투박하게 서 있는 정자에 벌렁 누어 매미소리 자장가 삼아 오수(午睡)도 즐겨 보고, 양 팔을 벌려 솔솔 불어주는 상쾌하고 시원한 바람을 아랫배가 볼록 튀어 나오도록 들이마시고는 단숨에 토해보고도 싶다. 그리고 오손 도손 속삭이며 익어가고 여물어가는 과일과 곡식들의 향연(饗宴)을 그저 바라보고도 싶어진다. 지금쯤 농촌마을 들녘에는 주저리주저리 포도송이가 매달리고, 사과가 속살을 키워가고 있을 것이다. 발그레 익은 자두가 수확을 기다리고 있고 바닥으로 곤두박질 칠 것 같은 탐스런 토마토가 익어가는 동화 속 별천지가 되어 있을 것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한 여름 무더위를 피하고 싶은 마음 굴뚝같다.

'새벽이슬을 소가 먹으면 우유가 되고, 뱀이 먹으면 독이 된다.'는 말이 있다. 지금까지는 이 말의 뜻을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었다. 그저 하고 많은 명언(名言) 가운데 하나려니 하고 넘겨 버렸는데 다시금 들어보니 예사로운 말이 아니다. 똑 같은 이슬을 받아먹었는데도 소가 먹었을 땐 우유가 되고, 뱀이 먹었을 땐 독으로 변한다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더 놀라운 것은 이 말이 우리 인간사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비슷한 환경에서 비슷한 교육을 받으면서 자라난 한 동네 두 아이라 하더라도 성장한 후의 삶이 확연하게 다른 모습을 두 눈으로, 때로는 언론을 통해서 가끔씩 접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일은 굳이 멀리서 찾을 것도 없다. 한 배속으로 낳은 형제자매간에도 극과 극의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모습을 얼마든지 찾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이들에게 주어졌던 환경이 처음부터 달랐기 때문에 어쩔 수없이 생겨난 일일까? 절대로꼭 그렇지 만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단지 두 사람 앞에 주어진 환경을 어떻게 받아 드렸고, 또 어떻게 자기 것으로 만들면서 인생을 살아 왔느냐 하는 생활방식의 차이가 이처럼 엄청난 결과를 낳고 말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주어진 환경을 모두 다 내 입맛대로 바꾸는 일은 불가능 한 일일 것이다. 물론 어느 정도는 극복 할 수 있는 것도 있겠지만, 인간의 힘으로는 아무리해도 바꿀 수 없는 것들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바꾸고 싶은데 바꿀 수 없는 일이라면, 이를 포기하고 체념하고 누구를 탓 할 일이 아니라 주어진 환경을 그대로 받아 들여 내 것으로 소화시키면서 살아가는 삶이 현명한 삶 일 것이다. 마치 불치의 병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환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을 마음을 먹는 것이 아니고, 앓고 있는 병을 죽을 때까지 함께 가야할 동반자로 인정하고 어린아이 키우듯 어르고 달래면서 살아가는 것처럼 말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이를 나쁜 쪽으로만 받아 드린다면 그 삶은 뱀이 이슬을 독으로 만들어 내는 것과 다를 바 없고, 내 것으로 만들고 소화시켜 나간다면 소가 새벽이슬로 우유를 만들듯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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