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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길중

전 충북도 농정국장

40-50년은 됐음직한 꽤나 오래전 기억을 더듬어 본다. 볏짚을 엮어 만든 이엉을 지붕에 올리고는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가로 세로를 새끼줄로 촘촘히 동여맨 초가집 30여 호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마을에 '바가지 샘'이라는 우물이 있었다. 앞쪽에는 물동이와 똬리를 올려놓을 수 있도록 널따란 돌을 깔아 조그만 공간도 만들었다. 당연히 동네 어머니들은 식수는 말 할 것도 없고 부엌에서 필요한 물이란 물은 모두 이곳에서 길어다 사용했을 뿐 아니라, 길을 가던 누구라도 목이 마를 때는 다른 사람 눈치 볼 필요도 없이 물 한 바가지를 떠서 갈증 나는 목을 축이는 곳이기도 했다. 그러던 것이 언제부터인가 마을 정 중앙에 깊고 둥근 커다란 구덩이를 파고, 빗물이나 이물질이 들어가지 않도록 지붕까지 만들어 세운 '두레박 우물'이라는 것이 생겨났다. 바가지 샘과 비교 해보면 분명 한 단계 발전된 우물이었고 보다 더 위생적이었다. 그런데 이 두레박 우물마저도 그리 오래 가지 못하고 새롭게 등장한 '펌프우물'에게 자리를 내주고 말았던 것이다. 마당 한 귀퉁이에 지하수가 나오는 깊이까지 땅을 파고는 크고 작은 돌로 공간을 채워서 땅위에 세워둔 펌프에까지 파이프로 연결시켜 놓은 우물이었다. 물이 필요 할 때면 마치 소 여물을 썰 때 사용하는 작두질처럼 펌프의 손잡이를 위 아래로 올렸다 내렸다 하면 신기하게도 땅속에 고여 있던 물이 파이프를 따라 콸콸 쏟아져 나오는 것이었다.

바가지 샘이 두레박우물에, 그리고 두레박우물이 펌프우물에 밀려 자취를 감추게 된 것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 이 펌프가 시간이 지나면서 고장이 잦아지고, 덩달아서 조금씩 남아 있어야 할 물까지 모두 빠져버리는 바람에 작동이 안 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렇지만 펌프가 작동하지 않을 때라도 펌프 안에다 물 한바가지를 붓고 펌프질을 하면 물을 다시 퍼 올릴 수 있었기 때문에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었다. 그러기에 펌프 옆에는 커다란 용기에 물이 가득 차 있었고, 위에는 바가지가 띄워져 있었다. 한 바가지의 물이 지하수가 있는 곳까지 마중을 내려가 고여 있던 물을 데리고 오는 물이라고 해서 마중물이라고 불렀다. 마중물에 관한 이런 이야기를 읽어본 적이 있다. '한 나그네가 사막에서 펌프와 마중물 한 바가지를 만났는데 거기에 이렇게 쓰여 있었다고 한다. 이 마중물을 마시면 이 우물물은 영원히 마실 수 없다. 그러나 이 마중물을 펌프에 넣고 물을 퍼 올리면 마시고, 목욕하고, 빨래하고, 떠가지고 갈 수도 있다. 그리고 뒷사람을 위해 마중물 한 바가지를 떠놓으라고 했다. 나그네는 고민 했다. 이 물을 마시면 당장은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물을 펌프에 넣었는데도 물이 나오지 않으면 목이 말라 죽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민하던 나그네는 목말라 죽을 것을 각오하고 마중물을 펌프에 넣고 펌프질을 했다. 물이 펑펑 쏟아지기 시작했다. 마음껏 물을 사용하고 다시 마중물 한 바가지를 떠놓고 가던 길로 떠났다(강문호 목사).'는 이야기다.

마중이라는 말은 터미널, 기차역, 그리고 공항 등 어떤 장소로 사람을 맞이하러 나갈 때 흔히 사용하는 말이다. 마중물도 이런 마중에서 유래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두 마중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형이하학적(形而下學的) 마중과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 마중의 차이라고나 할까? 사람을 맞이하려는 마중은 설사 마중을 나가지 못한다 해도 그 사람을 언젠가는 만날 수 있겠지만, 마중물이 없는 펌프는 더 이상 존재할 이유를 잃어버린 것이나 다름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러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한 바가지의 마중물과 같은 삶, 진정 살아볼 가치가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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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