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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길중

전 충북도 행정국장

퇴직하고 나서 일주일에 세 번, 중국어를 배우는 만학(晩學)의 동료들과 함께 아직까지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그래서 언젠가는 꼭 가보고 말겠다고 벼르던 백두산(白頭山, 중국에서는 長白山이라 부름) 천지(天池)를 갔다 올 기회가 왔다. 다행스럽게도 요즘이 천지를 볼 수 있는 계절(6-9월)이라 청주국제공항에서도 중국 길림성 연길국제공항까지 전세기를 운항하고 있어 어렵지 않게 백두산 인근까지 2시간 반이면 들어 갈 수가 있었다.

8월의 마지막 주 토요일, 우리일행을 태운 비행기는 청주공항에서 늦은 밤 11시가 다 돼서야 이륙을 했다. 기내식을 먹는 둥 마는 둥하고 잠시 눈을 붙여 볼까 했더니 비행기는 어느새 우리일행을 연길 공항에 쏟아 놓는다. 간단한 입국수속을 마치고 밖으로 빠져나와, 기다리고 있던 버스에 올라 호텔로 이동해 여장을 풀고 나니 새벽 1시가 훌쩍 지난 시간이었다. 첫날밤은 기대와 설렘 속에서 잠을 설치며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다음날은 백두산으로 가기 위해 안도현 이도백하(二道白河)라는 곳으로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일정이었다. 달리는 차창 밖으로 기회가 될 때마다 수도 없이 불러 보았던 가곡 '선구자'에 나오는 '해란 강'이 말없이 흐르고, 저 멀리로 '일송정'도 어렴풋이나마 볼 수 있었다. 그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북한과 국경을 이루고 있는 두만강 변에 도착을 했다. 노 젖는 뱃사공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지만 동력으로 움직이는 유람선을 타고 북한과 중국 경계를 넘나들며 지근거리에서 북쪽의 산하를 눈에 넣으려니 왠지 미어지는 것 같은 답답함이 가슴을 짓누른다. 오후에는 일제 강점기 시절 우리네 선조들이 조국을 떠나 이곳으로 피신해 독립운동을 하셨던 역사적인 곳으로,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몇 편 안되게 기억하고 있는 시 가운데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 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 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라는 윤동주님의 서시(序詩)가 절로 떠오르는 곳, 용정 시내도 둘러보았다.

우스갯소리겠지만 백두산은 '백번 와야 두 번 천지를 볼 수 있는 곳'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그만큼 천지를 본다는 것이 쉽지 않아서 하는 말일 것이다. 여행 내내 한 방을 썼던 교수님도 백두산을 두 번 왔었는데 천지를 보지 못해 이번 여행에 다시 참여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그런가하면 이번 여행일정에도 하루는 북쪽에서, 그리고 또 하루는 서쪽에서 천지를 오르도록 이틀을 잡아 놓은 것을 보면 가이드가 한 말이 꼭 틀린 말만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다음날, 서둘러 아침식사를 하고 40여분을 내달려 백두산을 들어가는 관문에 도착해 셔틀버스로 갈아타고 다시 30여분 급한 산길을 오른다. 그리고는 또 한 번 봉고차로 바꿔 타고 똬리를 튼 72구비 길을 롤러코스트를 탄 듯 숨 가쁘게 오르고 나서야 천지 바로 밑 광장에 도착 할 수 있었다. 올려다 보이는 언덕 너머가 바로 천지란다. 발길을 재촉해 영산(靈山) 백두산 정상을 오르니 눈 아래로 천지(天池)가 한 눈에 들어온다.

사진으로만 보아왔던 비취빛 파란 물을 가득 담은 커다란 천지가 바람과 안개, 그리고 구름 까지도 다 물리쳐 놓고는 양팔을 벌려 어서 오라고 시린 손짓을 한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천지를 내려다보며 한참을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진정 하늘이 허락한 축복받은 여행이었다. 한 촌로(村老)가 천지를 보고나서 '이제는 죽어도 한이 없다'라고 했다는 말에 머리가 숙연해진다. 첫 번째 백두산에 와서 천지를 두 번 씩이나 볼 수 있었던 큰 행운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또 한편으로는 우리의 땅이 아닌 남의나라 땅과 흙을 밟고 백두산을 올랐다는 아쉬움을 뒤로 한 채 피곤한 몸을 비행기에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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