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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2.05.06 17:38:37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강길중

전 충북도 행정국장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반복되는 일상을 벗어 버리고 어디론가 훌쩍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분명 마음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하다. 더군다나 국내가 아닌 외국여행임에는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여행 출발일이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가끔씩 잠을 설치게 되고 덩달아 마음까지 조급해 지는 느낌이 든다. 마치 뜬 눈으로 밤을 새우고도 날아갈듯 좋아했던 초등학교 시절 소풍 갔었을 때와 골프에 입문해서 첫 번째 라운딩을 하기로 하고 하얗게 날밤을 새운 채로 1번 홀 티 박스에 올라섰을 때의 들뜬 기분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행이라는 마술사가 건 최면에 걸린 듯 스스로 평정심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이번 여행은 집사람이 성당 모임에서 해외여행을 하기로 하고 적금을 넣기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거기다가 금년에 회갑이 되는 필자를 위해 아이들이 '아빠의 몫까지 마련했으니 엄마와 함께 다녀오시라'고 해서 이루어 진 것이다. 독일, 체코, 폴란드, 슬로바키아, 헝가리, 오스트리아 등 이른바 동유럽 6개국 11일간의 여행 이었다. 처음에는 여자들이 주축이 된 모임이라 조금 망설이기도 했었지만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제외한 나머지 4개국은 아직 가보지 않은 나라였고 남자들도 몇 명 참가 한다는 말에 같이 합류하기로 한 것이다.

우리나라와 동유럽간의 시차는 7시간이었다. 그러니까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7시간만큼 과거로 돌아가 젊게 살 수 있었던 시간 이었다. 인천공항에서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까지 비행기로 왕복한 것 이외는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버스에 같은 운전기사와 함께한 여행 이었다. 공항에서 내려 숙소로 향하는 차창너머로 비춰지는 이국땅의 첫 풍경이 왠지 낮 설지가 않았다. 아마도 오래전 크게 히트를 쳤던, 그래서 7080 세대라면 누구라도 따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국민가요가 되어버린 '저 푸른 초원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 백년 살고 싶어' 하던 유행가 가사와 크게 다르지 않아서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국토의 70-80%가 평지라는 가이드의 설명을 굳이 듣지 않더라도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소 피곤할 수도 있는 시간이었지만 넓디넓은 들판에는 맥주의 본 고장답게 파랗게 자란 보리들이 살랑살랑 불어오는 봄바람에 하늘거리며 춤을 추고 있었고, 보리밭이 끊어진 중간 중간에는 노란 유채꽃들이 무더기로 피어나 잠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런가하면 100년 이상 된 건물이 70%가 넘는다는 도시며, 13세기 중세 건물과 마을들이 그대로 보존되고 있는 현장을 들러 보면서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1968년 '프라하의 봄'으로 유명해진 체코의 '바츨라프'광장, 2차 세계대전 때 유태인들을 무참하게 학살했던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와 유네스코 최초로 자연 및 문화유산으로 지정 된 세계 최대의 '소금광산', 그리고 다뉴브의 진주라고 불리는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의 고색창연(古色蒼然)한 야경, 모차르트. 요한 스트라우스. 베토벤이 음악활동을 했고 '사운드 오브 뮤직'으로 잘 알려진 음악의 나라 오스트리아, 그리고 디즈니랜드의 모델이 되었다는 독일의 '노이 슈반 스타인성(신 백조의 성)'과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드라이브 코스 '로맨틱가도'와 속도 무제한이라고 잘못 알려진 '아우토반'도 달려 보았다. 소문대로 횡단보도에서는 차량 보다 철저하게 사람이 우선이고, 절대로 서두르지 않으면서 추월선은 꼭 필요 할 때만 이용하는 준법정신과 클랙슨 소리를 쉽게 들을 수 없었던 것이 인상 깊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산주의를 경험했던 탓인지 사람들의 얼굴에서는 하나같이 웃음을 찾아보기 어려웠고, 심지어 호텔에서까지 물을 사 먹고 고속도로 휴게소에서도 돈을 지불하고 나서야 볼일을 볼 수 있었던 것은 어쩐지 옥에 티 같은 느낌이 들어 아쉬움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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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