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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영호

시인

자주 가는 저수지 뒷산에 가족묘지가 있다. 비문에 새겨진 세례명으로 보아 천주교 신자 가족묘인 듯싶다. 그곳에는 사과나무 밤나무 복숭아나무 살구나무 모과나무 벚나무 배나무 대추나무 등 유실수로 조성되어 있다. 그런데 관리는 철저히 하면서도 과일을 거둬가지 않는다.

지난 가을. 병이 든 잎, 물이 든 잎, 말라버린 잎, 벌레 먹은 잎, 큰 잎, 작은 잎, 꾀죄죄한 잎, 찢어진 잎, 구부러진 잎, 빨간 잎, 노란 잎, 갈색 잎, 얼룩덜룩한 잎, 파란 잎, 검붉은 잎 등 각양각색으로 물들던 잎들은 하나같이 초취한 모습이었다가 떨어졌다.

가을은 낙엽과 단풍의 계절이다. 낙엽과 단풍이 어우러져 아름다움으로 빛이 난다. 어느 한 낙엽이나 어느 한 단풍잎도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수많은 잎이 떨어져서 무질서하게 섞여있는 낙엽. 온갖 풍상을 다 겪은 뒤의 벌레 먹고 병든 잎들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을 바라보면서 사람도 꼭 젊고 멋진 사람만이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걸 다시금 생각게 했다.

공원처럼 조성된 가족묘지에 봄이 찾아왔다. 잎을 떨구고 앙상한 가지만 남은 채 죽은 듯 겨울을 보낼 때는 한생이 끝났다고 생각했던 나무들이었는데 기적처럼 새순이 돋고 꽃을 피워낸다. 그윽한 향기까지 풍기며 벌 나비를 유혹하는 모습이란 그야말로 회춘의 진수를 보는 듯하다. 그뿐이랴. 땅에 떨어졌던 씨앗들도 봄이 되면 새싹을 틔운다.

삼촌은 위암 말기의 극한적인 선고를 받으셨다. 비록 말은 못하고 듣지도 못하는 장애셨지만 타고난 건강한 몸은 강철 같았다. 몸만 건강한 것이 아니라 머리가 비상하여 무엇이든 척척 만드는 재주가 여간 아니어서 극쟁이건 지게건 멍석, 바구니 같은 농기구며 생활용품을 척척 만들었고, 목수일과 미장일도 눈썰미가 좋아 한번 눈으로 보면 다 해내셨다. 거기다가 힘이 장사여서 힘든 일을 마다않고 센 일꾼으로 뽑혀 다녔다.

그러던 삼촌이 청천벽력처럼 위암말기라는 몹쓸 병에 걸리신 것이다. 병원에서는 길어야 3개월 정도 사실 것이라 했다. 그날부터 좋아하시던 육류를 잡수지 않으시고 채소만을 고집했고, 어느 날부터인가 일주일씩 단식을 하기도 했다. 용하다는 곳, 암 치료에 좋다는 식품, 식이 요법 등 온갖 노력을 기울였으나 삼촌은 모든 것을 거부하셨다. 가족들은 이런 삼촌이 안쓰러웠으나 특별히 해 드릴 방도는 없었다.

그렇게 병원도 가시지 않고 혼자 음식을 거의 잡숫지 않으면서 지낸지 어느덧 3개월이 흘렀다. 가족들의 염려와는 달리 건강한 모습에 모두들 놀랐다. 병원에 다시 찾았을 때 의외로운 호조에 의사까지 놀랐다. 그리고 점점 좋아져 암 발생 후 20여년을 건강하게 사셨다.

오래전에 쓴 "낙엽"이란 시가 있다.

여리고 부드러운 것들이/연화(煙花)로 앙증스럽게 피어날 때 있었다/치닫는 거친 세파와 당당히 맞서며/가파른 절벽도 질풍으로 내달아/거침없는 기세로 고지를 탈환하고/만세도 불렀다//어느새 부드러운 것들이/딱딱하게 굳어질 즈음/태양이 서산마루를 향해 고꾸라질 때/노을은 붉게 일었다//또 다른 길 모색할 즈음/환승의 차편 기다릴 즈음/아무리 붙박이로 조준된 총구에서 발사된 탄환이라도/꼭 한 과녁에 똑같이 박히지 않고/한번 흘러간 강물이 다시 거스르지 않듯이/꽃 진 자리에 꽃은 다시피지 않았다//여리고 부드러운 것들이/황엽으로 지는 날/사람들은 찢기고 탈색된 것들을/아름다운 단풍이라 불렀다

이 봄. 지난 가을 황엽으로 진 자리에 새 잎이 돋아나고 있다. 죽은 줄만 알았던 가지에 새순이 피어난다. 인생도 저 나무와 같을 순 없을까? 봄이 되면 다시 피어나 회춘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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