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반영호

시인

군 생활을 카투사로 지냈다. KATUSA란 Korean Augmentation Troops to United States Army로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 미 육군에 파견되어 근무하는 한국군을 말한다. 35년 전 내가 카투사로 들어갈 땐, 지금처럼 지원이 아니고 차출이었다. 그저 허우대가 좋고 신체 이상이 없으면 차출되어 소양고사를 보고 영어를 쬐끔만 흉내 내도 합격이었다. 지금은 카투사 경쟁률이 높을 땐 9.8 : 1. 낮을 땐 6.3 : 1. 평균 7.7 : 1이라니 참 들어가기 힘든 곳이 되었다.

내가 근무하던 부서는 작전과 였다. 오피스 내에는 6명이 근무를 했다. 그러니까 5명이 미군이고 한국인은 나 하나였다. 어느 부서에서 근무를 하던 미군과 함께 생활을 하려면 영어가 유창해야 애로사항이 없다는 건 당연하다. 특히 작전과는 한국군과 연합훈련이 잦은 관계로 영어회화가 절실히 요구되는 곳이다. 자칫 작전계획이 잘못 전달이 될 시는 엄청난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다. 전달이 잘못되는 날에는 포탄이 민가에 떨어질 수도 있고, 자칫 아군과 아군이 대립되는 상황도 벌어지게 되며, 최악의 경우 전쟁이 유발될 수도 있다.

이런 관계로 통역할 때는 긴장이 되고 항상 영어사전을 옆에 끼고 다녀야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삼촌과 숙모가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시는 분이어서 입대 전 수화(手話)를 늘 해왔던 터라, 여차하면 손짓 발짓으로 위기를 넘긴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아무리 언어가 다르더라도 수화는 어느 나라건 통한다. 만약 대포사격이라고 하면 한 팔을 번쩍 들어 올렸다 내리며 '쿵'하면 되고, 팔을 앞으로 당겼다놓으며 '쾅'하면 탱크사격이고, 거총자세에서 '타타타타'하면 소총사격, 손가락을 빙빙 돌리며 '휘휘휙'하면 헬리콥터, 손을 코브라처럼 내보이며 '휘-익' 휘파람소리를 내면 전투기다.

벙커 상황실에도 카투사가 서너명 있었다. 상황실에는 영어에 능통한 사병이 근무했으나 중요 통역에는 언제나 나를 불러 해결했던 것은 수화에 능했던 때문이었다. 음악이나 미술이 세계 공통어라고 하는데 수화야 말로 가장 확실한 전달 방식이다. 처음엔 영어를 잘 못하므로 다른 부서로 옮겨줄 것을 건의한 적도 있었다. 영어에 자신이 없으니 통역하는 자리에만 나가면 앞이 캄캄했던 것이다.

궁즉통(窮則通). 궁하면 통한다고 했다. 궁(窮)변(變)통(通)구(久). 주역에 나오는 말이다. 도저히 막히고 답이 없어 궁하면 변하게 되고, 변하면 답을 찾아 통하며, 통하면 오래간다는 뜻이다. 궁지에 몰리면 새로운 답을 찾게 된다. 그래서 오히려 위기가 기회가 된다는 말이다. 영어에 자신이 없다고 다른 부서로 옮겨, 입 다물고 군대생활 3년을 지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아무리 어려운 작전브리핑에도 손과 발이 있는 한 걱정할 것 없다는 자신감으로 대중 앞에 자신 있고 떳떳하게 나섰다. 영어가 국어인 미군들보다도 훨씬 완벽하게 작전 설명을 해냈다. 사람이 말을 배울 때는 욕부터 배운다. 욕은 어느 나라건 기본적으로 거의 비슷하다. 일일이 이런 욕은 영어로 이렇다고 말하지 않아도 잘 알 것이다. 나는 대화중에 혹은 브리핑 중에, 또 대화연결이 잘 안될 경우 욕을 많이 썼던 것 같다. 그들은 그런 나를 욕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딱딱하고 정숙한 분위기를 완화시키는 좋은 예라고 웃어넘기곤 했다. 제대 후에 버릇처럼 영어로 욕을 많이 했었는데 그땐 알아듣는 이가 별반 없었으나, 영어가 우리 생활에 깊숙이 자리한 요즘은 영어로 욕을 했다간 큰코다친다.

그때 젊은 날, 무식하도록 용감했던 뱃심, 뚝심, 카투사생활의 추억이 새록새록 하다.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조길형 충주시장 "부담 없는 시민골프장 추진"

[충북일보] 조길형 충주시장이 공익적 차원에서 시민골프장 조성 계획을 세우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비싸진 골프장 요금과 관련해 시민들이 골프를 부담 없이 즐길 수 있게 하겠다는 취지인데, 갑론을박이 뜨겁다. 자치단체장으로서 상당히 부담스러울 수 있는 시민골프장 건설 계획을 어떤 계기에서 하게됐는지, 앞으로의 추진과정은 어떻게 진행되는지 여부에 대해 들어보았다. ◇시민골프장을 구상하게 된 계기는. "충주의 창동 시유지와 수안보 옛 스키장 자리에 민간에서 골프장 사업을 해보겠다고 제안이 여럿 들어왔다. '시유지는 소유권 이전', '스키장은 행정적 문제 해소'를 조건으로 걸었는데, 여러 방향으로 고심한 결과 민간에게 넘기기보다 시에서 직접 골프장을 만들어서 시민에게 혜택을 줘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충주에 골프장 많음에도 정작 시민들은 이용할 수가 없는 상황이 안타까웠다." ◇시민골프장 추진 계획은. "아직 많이 진행되지는 않았지만, 오랜 기간의 노력을 들여 전체 과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 볼 수 있는 시민의 공감을 확보했다. 골프장의 필요성과 대상지에 대해 시민들이 고개를 끄덕여 주셨다. 이제는 사업의 실현가능성 여부를 연구하는 용역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