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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2.02.07 17:25:32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반영호

시인

내가 사는 곳 음성의 가섭산에는 은사시나무 밭과 소나무 밭이 연이어 펼쳐져 있다. 아침 산책길로 이곳을 자주 찾는다. 가섭이란 석가모니의 십대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마하가섭(摩訶迦葉)의 이름을 딴 山이다. 욕심이 적고 족한 줄을 알아 항상 엄격한 계율로 두타(頭陀)를 행하였으며, 교단의 우두머리로서 존경을 받던 인물이다. 그러니까 마하가섭존자로 초기불교와 선불교에서 높이 숭앙되는 분이다. 그런 이의 이름이 붙어서인지 가섭산은 언제 가 보아도 엄숙하여 思考하며 산책하기에 좋은 코스이다.

은사시나무는 여느 나무와 달리 껍질이 하얗다. 잎의 뒷면이 유난히 흰색을 띄어서 은사시란 이름이 지어진 모양이다. 바람이 불면 나비가 춤을 추듯 은빛 날개를 파닥이는 모습이 여간 예쁘지가 않다. 온 산야가 푸르런 여름철의 은사시나무 밭은 헤아릴 수 없는 은빛 찬란한 나비들의 무희로 장관을 이룬다.

은사시나무 밭을 지나 조금 더 오르면 소나무 밭이 나온다. 철을 가리지 않고 춘하추동 푸른 소나무, 변함없는 선비의 표상인 조선소나무 숲이다. 소나무는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다. 어떤 민족이든 특정나무를 좋아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소나무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소나무가 삶에 큰 도움을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는 오래전부터 소나무 없이는 살아갈 수 없었다. 소나무로 집을 짓고, 소나무로 땔감을 마련하고, 소나무로 음식을 만들고, 소나무로 관을 만드는 등 평생을 소나무와 함께 했다. 한국인은 소나무를 아주 사랑한 나머지 이 나무의 이름을 '솔'이라고 불렀다. 솔은 '으뜸'을 의미한다. 그만큼 한국인은 소나무를 나무 중의 나무로 생각했다. 내가 특히 소나무 밭 걷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고질적인 관절 때문이다. 솔잎이 떨어져 쌓인 폭신폭신한 길은 산책하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기도 하다.

우리 옛시조에서 소나무와의 관계되는 어휘를 보면, 순수한 우리말로 가장 많이 나타나는 게 '솔'이다. 그리고 복합명사로는 '솔가지', '솔불', '송기떡' 등이 있다. 이러한 순수한 우리말이 아닌 한자말로 가장 많이 쓰인 어휘로는 낙락장송(落落長松)이 있고 복합명사로는 송죽(松竹)이 다음으로 많이 쓰였다. 그런데 이 '솔'이나 '낙락장송'이란 어휘들이 글의 주제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은 것은 주목할 일이다. 낙락장송이란 말이 나오니 고교시절 외던 사육신의 한 사람, 성삼문의 시가 떠오른다.

이 몸이 죽어 가서 무엇이 될고 하니 봉래산 제일봉에 낙락장송 되었다가 백설이 만건곤할 제 독야청청 하리라.

소나무 숲 한가운데 섰다. 아름드리 하늘을 향해 쭉 뻗어있는 소나무들이 바라만 봐도 시원하다. 북풍한설 속에서도 푸르름을 잃지 않고 꼿꼿이 서있는 그 의연함이야말로 기개가 서린 선비의 마음을 느끼게 한다. 성삼문과 함께 정몽주, 조헌의 이름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각기 다른 시대를 살다간 이 세 사람을 하나로 묶는 상징이 바로 '선비정신'이다. 선죽교위에서, 노량진 언덕에서, 그리고 금산벌에서 각자의 극적인 삶을 마감한 이들이다.

은사시나무 숲과 소나무 숲을 걸으며 사색에 잠기노라면 출근시간을 놓치기 일쑤다. 소나무 숲과는 달리 은사시나무숲이 풍기는 부드럽고 화사한 느낌이 안정과 푸근함을 갖게 한다. 각박한 세상에 너그럽고 온화한 평온의 세계로 이끄는 것이다. 소나무와 은사시나무의 아이러니한 엇갈린 감정을 느끼며 하루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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