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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교

진천소방서 소방위

국내 최대의 3층 목탑이 연꽃의 꽃술마냥 고즈넉하게 서 있는 보탑사로 이어진 숲길을 걷다보면 처마 밑에서 울려 퍼지는 풍경소리와 짙푸른 유월이 내뿜는 아침 공기의 절묘한 어울림을 만나게 된다. 지형이 연꽃을 닮았다하여 보련마을로 불리는 이곳에 위치한 보탑사를 꼭 불자가 아니더라도 찾는 이들이 많다. 사찰의 규모도 규모지만 경내 곳곳에 피어있는 야생화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이다. 이곳이 비구니 스님들의 도량이라 그런지 야생화를 가꾸는 손길 하나에도 여인들의 섬세함이 경내 가득 묻어난다.

더욱이 야생화가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서와 잘 어울리는 것은 국민성과도 무관하지가 않다. 먼저 끈질긴 생명력이다. 척박한 땅에서 뿌리를 내려 씨를 흩뿌리는 강인함은 우리 민족의 저력을 대변하듯이 숱한 외침에도 불구하고 오천년의 역사를 지켜낸 얼과 맥락을 같이 한다. 또한 야생화 중 상당수가 약초와 식용으로 이용되는 쓰임새는 자연을 중심으로 했던 생활 습관이 조상들의 심신을 건강하게 지켜줬다는 것,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원인모를 질병으로 시름하는 현대인에게 그 옛날 자연친화적 삶이 얼마나 소중했는가를 깨닫고 요즘에 들어서야 부르짖는 단어가 웰빙 즉, 참살이다. 그 중에서 음식과 관련하여 유기농이나 전통식을 고집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렇게까지 야생화의 내면을 들추지 않더라도 야생화 그 자체만으로 우리가 아름다움과 향기를 느낄 수 있는 것은 늘 우리 주변에서 피고 지고, 또 피어나는 친밀감이 주는 매력이 아닐까 한다.

야생화로 눈을 호강시켰다면 이제는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보탑사 바로 옆에는 보물 404호로 지정된 연곡리 백비가 자리하고 있다. 대부분의 석비에는 비문이 새겨져 있는데 특이하게도 연곡리 백비에는 글자가 없다. 문득 '백지로 보낸 편지'라는 유행가가 생각난다. 사랑하는 이에게 하고픈 말이 너무 많아 차라리 백지로 보낸다는 노랫말처럼 어쩌면 이 석비는 우리들에게 침묵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선문답을 건네는지도 모르겠다. 필자도 전에 아내가 보이는 사랑을 원했을 때 아내의 손을 이끌어 내 가슴에 얹고는 말없이 웃어 보이자, 아내는 어리둥절해 했었다. 그래서 내가 들려준 얘기는 부처가 연꽃을 들어 보이자 제자 중 가섭만이 그 뜻을 알고 미소 지었다는 이심전심의 고사성어로, 숱한 그 어떤 말들보다 내 가슴속에 가득한 사랑을 전해 주려는 의도였었다. 어쩌면 연곡리 백비 또한 오늘날 우리들에게 투명한가슴팍을 내밀어 무한정 소통하려는 것은 아닐까.

지난 달 사월초파일을 전후로 연등을 매달아 둔 법당에는 저마다의 소원들이 함초롬히 매달려 얘기를 건네고 있었다. 산 자와 죽은 자 모두 연등이라는 매개체로 하여 어우러진 공간에는 바람마저 염원을 담고 있는 듯 평온했다. 그러나 종교가 평화를 가져다 준 것만은 아닌데 세계사를 보더라도 십자군 전쟁을 비롯한 각종 전쟁사의 이면에는 종교적 갈등이 실마리를 제공한 사례가 많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처럼 종교적 갈등이 적은 나라도 드물 것이다. 그 예로 성탄절이 되면 승려들이 교회나 성당을 찾아 찬송가를 부르고, 초파일에는 목사나 신부들이 사찰을 방문해 축하 메시지와 화한을 전하는 광경은 우리를 훈훈하게 만든다. 어쩌면 이것은 자신들의 종교가 최고라는 아집에서 벗어나 상대방의 믿음을 먼저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불가에는 下心이라는 말이 있다. 자기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인다는 뜻으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참 많은 의미를 던져 준다. 매사에 빨리 빨리라는 속도전쟁의 세태가 낳은 병폐 중 하나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동보다 말을앞세우는 것이다. 옛 성현들이 누누이 강조했던 언행일치의 경지가 얼마나 힘든 것인지 새삼 느끼게 하는 현실에서 한번쯤 곱씹으며 걸으면 좋을 보탑사 가는 길이다.

뎅그렁 울리는 풍경소리의 긴 여운이 산사를 걷는 내내 가슴에 맴돌며 살아 온 날들보다 살아갈 날들에 대한 희망으로 푸른 유월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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