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김동진

청주 삼겹살거리 함지락 대표

지난 주말, 가을비가 촉촉이 내리는 가운데 졸업생과 재학생이 함께하는 대학 동문 체육대회가 열렸다. 한 달 전부터 준비해 온 체육대회를 비가 좀 내린다고 취소할 수 없어 그대로 강행했다. 강수 확률 5%라는 기상예보가 있던 터라 천막을 여유 있게 장만한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낙락장송 소나무들과 마천루 같은 메타세쿼이어가 울타리를 이룬 잔디 운동장에서 가을비는 가을의 정취를 차분하게 더했다.

비가 오기 전부터 20여 명의 재학생들은 아침 일찍부터 나와 천막을 치고 의자를 나르는 등 부산하게 움직였다. 학회장을 중심으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각자 맡은 일을 해냈다. 싫은 기색 하나 없이 왁자지껄하고도 즐겁게 일하는 모습이 여간 사랑스럽고 대견하지 않았다. 저렇게 기특한 후배들에게 못난 선배들이 어떤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지 살짝 고민되었다.

예고된 시간이 되어도 동문들의 모습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참석률을 높이려는 생각에서 실제 행사 시간보다 1시간을 앞당겨 고지했기 때문에 처음엔 그리 조급하지 않았지만 예정된 시간이 거의 다 되어가면서 조금씩 마음이 졸아들었다. 불순한 날씨와 주말 교통 탓을 하면서 부러 느긋해지려고 딴청을 부렸다. 그러나 이내 하나 둘 동문들이 찾아들기 시작하면서 행사에 대한 자신감이 부쩍 늘어났다.

먹을거리는 푸짐했다. 2년 만에 치르는 체육대회를 성대하게 치르기 위해 뷔페음식을 맞췄다. 40여 가지나 되는 갖가지 음식이 잔디 위 식탁에 가지런히 차려지고 출장 요리사가 나와 즉석에서 몇 가지 요리도 만들었다. 뷔페 식탁 옆에서는 대형 구이판에 선홍색 삼겹살이 노릿노릿 고소하게 구워졌다.

빗발이 조금 굵어져 야외 체육행사를 하기가 쉽지 않았다. 식순에 맞춰 간단하게 1부 행사를 한 뒤 아침 겸 점심 식사를 시작했다. 선후배가 삼삼오오 같은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하면서 선후배 간 대화가 깊어졌다. 선배들은 주로 후배들의 진로에 대해 걱정하며 자신감을 심어주려고 노력했다. 후배들은 선배들의 학교 생활이나 취업 준비 과정에 대해 궁금해 했다.

말로만 듣던 청년실업의 현실이 그대로 확인되었다. 올해 졸업한 후배들의 취업률은 40%가 채 되지 않았다. 그것도 약간의 허수가 포함된 점을 감안하면 열 명에 세 명 정도 취업한 것에 불과하지 않았다. 그러니 아이들의 자신감이 저렇게 떨어져 있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충격적인 사실은 내년도부터 인문대와 예체능계 학과의 취업률은 아예 평가 내용에 산정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취업을 위해 대학에 진학하는 학과가 아니기 때문에 취업률 평가 기준에서 제외된다는 논리였다. 대학교 취업률 평가에서 제외된다는 것은 한 마디로 지원이 거의 없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후배들은 대학문을 나오자마자 동물의 왕국에서 각자 알아서 살아남아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 되었다.

어쩐지 바로 전날 있었던 직종 별 선배 초청 특강에서도 비슷한 점이 감지되었다. 언론사 선배들을 특강 강사로 초청한 자리에서 자신이 원하는 직종의 선배로부터 생생하고 뜨끈뜨끈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텐데도 질문이 생각보다 많지 않았던 것은 한 마디로 아이들의 자신감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눈치 빠른 선배는 곧바로 후배들의 자신감을 불어넣어주기 위한 강의 내용으로 나머지를 채웠다. 확고한 목표 설정, 꾸준하고 집중적인 준비, 반드시 이룰 수 있다는 자신감. 꿈은 결국 자신감 있는 자신 안에 있다는 것이었다.

식사 후 몇 가지 운동경기를 하기는 했지만, 대부분 체육행사로 채워졌을 행사가 일부나마 진지하고 차분하게 선후배 간 소통으로 채워진 것은 가을비 덕분이다. 가을비는 겨울을 재촉하기 위해서 내리는 것이 아니라 가을을 정리하기 위해 내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똘똘하지만 자신감이 부족한 나의 후배들이나, 능력 있지만 삼겹살 거리에 확신이 부족한 당사자들에게 가을비는 조용하게 웅변하고 있다.

<끝>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윤현우 충북도체육회장, "재정 자율화 최우선 과제"

[충북일보] 윤현우 충북도체육회장은 "도체육회의 자립을 위해서는 재정자율화가 최우선 과제"라고 밝혔다. 윤 회장은 9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3년 간 민선 초대 도체육회장을 지내며 느낀 가장 시급한 일로 '재정자율화'를 꼽았다. "지난 2019년 민선 체육회장시대가 열렸음에도 그동안에는 각 사업마다 충북지사나 충북도에 예산 배정을 사정해야하는 상황이 이어져왔다"는 것이 윤 회장은 설명이다. 윤 회장이 '재정자율화'를 주창하는 이유는 충북지역 각 경기선수단의 경기력 하락을 우려해서다. 도체육회가 자체적으로 중장기 사업을 계획하고 예산을 집행할 수 없다보니 단순 행사성 예산만 도의 지원을 받아 운영되고 있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선수단을 새로 창단한다거나 유망선수 육성을 위한 인프라 마련 등은 요원할 수 밖에 없다. 실제로 지난달 울산에서 열린 103회 전국체육대회에서 충북은 종합순위 6위를 목표로 했지만 대구에게 자리를 내주며 7위에 그쳤다. 이같은 배경에는 체육회의 예산차이와 선수풀의 부족 등이 주요했다는 것이 윤 회장의 시각이다. 현재 충북도체육회에 한 해에 지원되는 예산은 110억 원으로, 올해 초 기준 전국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