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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천호

영동 황간초 교장

'셋째 아이의 웃음소리 온가족의 행복'

시골을 오가는 시내버스에 큼직하게 새긴 출산을 장려하는 광고 문구다. 정류장에 잠시 멈춘 마을버스엔 얼핏 보아도 승객이라곤 노인 서너 명 밖에 되지 않는다. 하긴 시골 마을에서 아이들의 뛰어 노는 모습 본지가 이미 오래되었다. 젊은 사람들이 떠난 마을엔 노인들 기침소리만 공허한 메아리로 돌아온다. 골짜기 마다 들어섰던 많은 학교들이 학생 수 감소로 인해 하나 둘 문을 닫고 폐교가 되었다.

1960년대 우리나라의 공식 출산율은 6명 정도였다. 전문가들은 당시 국민의 의식 수준과 사회적 환경이 높은 출산율로 연결되었다고 말한다. 그 때만해도 사람들이 피임이라는 것을 잘 몰랐고, 문맹자도 많은 상태였다. 따라서 정부에서는 출산율을 낮추기 위한 산아제한 정책에 사활을 걸었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도 가족계획에 대한 정책은 더욱 강화되었다. 그 당시 축구 스타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차범근 선수가 부인과 딸아이와 함께 '하나만 더 낳고 그만 두겠어요.'라는 가족계획 홍보 모델을 하기도 했다. 또 '딸·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라며 남아선호 사상을 바꾸기 위한 노력도 이어졌다. 2명 이하 자녀를 둔 남성이 불임시술을 하면 예비군 교육을 면제해 주었고, 심지어 공공주택 분양 우선권을 주기도 했다. 어디 그뿐이랴. 공무원들의 경우엔 둘 이상 되는 자녀들에게 가족수당이 지급되지 않았고, 의료보험 혜택도 제외되었으며, 연말 소득세 정산에 있어서도 불이익을 받았다. 급기야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자녀가 둘 이상 된다고 하면 먼 외계에서 온 이방인 취급을 받기까지 했다. 이런 정부의 인구정책에 힘입어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우리나라 출산율이 1.5명대로 떨어졌다. 통계에 의하면 결혼한 부부가 2.1명의 아이를 낳아야 현 수준의 인구가 유지된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강력한 인구 억제 정책으로 2005년 출산율은 1.08명까지 떨어지게 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출산율이 급격히 감소하면서 내수경기 악화, 생산 인구의 감소, 재정지출의 상승, 의료보험 인상, 노인 문제 등 고령화 사회의 문제점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더욱이 결혼하는 연령대가 점차 뒤로 늦추어지면서 가임기간 자체가 절반 이하로 뚝 떨어져 버렸다. 젊은 부부들은 주거비, 교육비 부담 등을 이유로 자녀를 한 명, 아니면 아예 낳지 않는 쪽을 선호하였다. 대가족 형태에서 핵가족 형태로 바뀌면서 대를 이어 가계를 이어가기보다는 현재의 삶을 즐기는 쪽으로 가족에 대한 개념 자체가 바뀐 것도 한 이유였다.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은 정부는 뒤늦게 '아이가 미래입니다'를 부르짖으며 출산장려 정책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영·유아 보육비 지원, 양육수당 지급, 육아휴직 급여 지원, 신혼부부 주택자금 지원, 임신·출산 진료비 지원, 다자녀가정 소득공제 등 출산을 장려하는 정책을 잇달아 발표하였다. 성비 불균형으로 결혼을 못하는 시골 노총각들에게 동남아 처녀들을 맺어주는 다문화 결혼이 추진되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직 출산율은 크게 오르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선진국의 경우 출산장려 정책이 안정되는데 20년 정도가 걸렸다고 하니, 우리도 새로운 정책이 안착되려면 그 정도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정류장에 잠시 머물던 버스가 다시 시동을 건다. 어린 시절, 장날만 되면 발 디딜 틈도 없이 동네 사람들을 태우고 신작로 길을 달리던 버스가 아니던가. 머지않은 날에 젊은이들이 돌아오고, 셋째 아이의 웃음소리 넘치는 활기찬 시골 마을이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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