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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하

청주고인쇄박물관 학예연구실장

청주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무엇인가하고 시민들에게 물어보면, 가장 많이 나오는 대답 중에 하나가 교육문화 도시라는 것이다. 물론 그 외에도 직지, 가로수길, 무심천, 우암산 등 여러 가지가 있다. 그러면 왜 이런 이미지가 사람들 머릿속에 각인된 것일까? 그 해답을 정보 전달매체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인류의 정보전달 매체는 언어, 문자, 인쇄, 컴퓨터를 비롯한 전자미디어 순으로 발전하였다. 이 가운데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것은 인쇄술이었다.

지식정보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책이 필요했고, 책을 만들기 위서는 인쇄가 필요했다. 그리고 인쇄를 위해서는 금속활자가 필요했던 것이다. 금속활자는 수단이지 목적은 아니다. 최종 목적은 금속활자를 이용하여 책을 만드는 것이고, 이 책을 통해 지식정보를 전달함으로써 교육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즉, 교육의 필요성에 의해 금속활자를 발명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금속활자의 발명은 1200년대 초에 개성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인 견해이다. 그 이유는 1239년에 목판으로 간행한 남명천화상송증도가가 전해지고 있는데, 이 책에 수록된 최이(우)의 발문에 의하면, 장인들을 모아 금속활자로 인쇄한 책을 거듭 목판으로 만들었다(飜刻)는 기록이 있다. 이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 금속활자로 인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금속활자로 인쇄한 실물은 전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이규보의 문집인 동국이상국집에 진양공 최이를 대신하여 지은 상정예문의 서문이 실려 있는데, 그 내용에 보면, 50권의 상정예문을 금속활자로 28부 인쇄했다는 기록이 있다. 구체적인 간행 연도는 알 수 없지만, 최이가 진양공이 된 1234년부터 이규보가 죽은 1241년 사이가 된다. 이 책도 현재 전하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1377(고려 우왕 3)년에 간행한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약칭 직지)는 현재 실물이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전하고 있다. 따라서 직지는 대한민국이 1200년대 초에 금속활자를 발명했다는 기록을 뒷받침 해주는 실물 증거자료로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역사적으로 청주는 고대부터 철기문화가 발달했던 지역이다. 그 증거로 신봉동백제고분군, 고려시대 용두사지철당간, 흥덕사지와 사뇌사지에서 출토된 청동유물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유물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이 지역에서 금속이 많이 생산되었으며, 또한 이를 다룰 수 있는 기술이 축적되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청주에서는 지식정보 전달매체인 책을 만드는 기술에 금속을 도입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즉, 인류는 문명의 이기(利器)들을 수없이 많은 발명을 했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란 말이다. 지식정보를 전달할 필요성에 의해 금속활자를 발명한 고려는 문화선진국이었음을 알 수 있다. 정보문화의 강국 고려, 그 중심지에 청주가 있다는 것이 직지를 통해 조명될 수 있을 것이다.

청주에서 인쇄의 시작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지금까지 밝혀진 것은 1305년에 청주 원흥사에서 목판으로 금강반야바라밀경(보물 제1408호)을 간행한 것이다. 최근 학계에서는 고려대장경(초조대장경, 1011년)의 발원지가 청주라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조선시대에는 어린이들의 인격수양을 위한 교양서로 가장 많이 읽힌(베스트셀러?) 책이 명심보감인데,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먼저 간행된 곳이 청주였다. 1454년에 청주목사와 충청도관찰사에 의해 목판으로 간행한 것이다. 인쇄문화를 통해 청주가 지식정보 전달에 선구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교육문화 도시였다는 증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오늘날 지식정보 강국인 대한민국에 이러한 역사적 사실들이 밑거름이 되어 향후 청주가 교육문화 도시로 발돋움하는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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