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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2.11.11 17:23:53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황정하

청주 고인쇄 박물관 학예연구실장

우리는 직지하면 현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이라는 것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란 수식어에 익숙해 있다. 왜 이런 수식어가 붙게 된 것일까· 그것은 직지가 갖는 본원적인 가치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며, 아울러 그 가치를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1985년에 직지를 간행한 흥덕사 터가 확인되어 사적 제315호로 지정되고, 이 터를 정비하면서 1992년에 청주고인쇄박물관을 개관하였다. 고인쇄박물관과 시민단체에서는 직지를 찾는 운동을 전개하기도 하였으며, 한편에서는 직지가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이니까 기네스북에 등재하자는 움직임도 있었다. 이에 고인쇄박물관에서는 직지의 가치와 위상을 세계적으로 알리기 위하여 1997년에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와 공동으로 '동서양 고인쇄문화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하였다. 이때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관계자들과 만나 이야기 하는 가운데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프로젝트에 대해 알게 되었다. 유네스코의 유산사업은 세계유산과 세계기록유산이 있다는 것이었다. 세계유산은 1972년에 세계유산협약을 체결하면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으로 부동산 문화재가 이에 해당되고, 또한 사라져 가는 기록유산도 관리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1993년에 세계기록유산 프로젝트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직지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직지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다면 우수성과 가치를 빠른 시일 내에 전 세계에 알릴 수 있다는 판단아래, 1998년에 유네스코 한국위원회를 통하여 유네스코 본부에 등재 신청을 하였다. 그러나 유네스코에서는 직지가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기 때문에 프랑스와 공동으로 신청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외교통상부와 유네스코 한국대표부를 통해 직지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도록 프랑스와 협의 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이에 대해 프랑스 국립도서관으로 부터 받은 회신은 직지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는 내용이었다. 따라서 제4차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에 직지는 안건으로 상정조차 할 수 없었다. 유네스코 국제자문위원회는 세계기록유산의 전반적인 프로그램 계획 및 이행에 자문을 제공해주는 조직체로써, 유네스코 사무총장이 선발한 14명의 기록유산보존분야 전문가들로 구성되어있다. 사무총장은 매 2년마다 정기적으로 국제자문위원회를 소집하는데, 여기에서 기록유산 등재가 권고된다.

청주시에서는 전략을 바꿔 제5차 국제자문위원회를 청주로 유치하여 유네스코와 자문위원들에게 직지를 홍보하는 것으로 목표를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고인쇄박물관과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관계자들이 오스트리아 비엔나회의에 참석하여 청주 유치를 희망하는 신청서를 제출하였으나, 멕시코에서도 신청하여 서로 경합을 벌이게 되었다. 유네스코의 기본입장은 개최국의 수도를 희망하였다. 즉, 청주는 개최국의 수도가 아니기 때문에 어렵겠다는 반응이었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자문위원들과 개별 접촉을 통해 이해와 설득 작업에 들어갔다. 그 결과 2001년 제5차 국제자문위원회 개최지로 청주가 결정되었다.

회의를 준비하면서 직지를 안건에 상정하였을 경우, 유네스코 규정상 문제점이 없는지, 프랑스 국립도서관의 입장은 어떤지 등을 검토하였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의 입장은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는 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직지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독일 구텐베르크 박물관장으로부터 등재 추천서를 받아 첨부하는 등 다방면에 걸쳐 안건 상정에 대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마침내 유네스코 본부에서는 회의 안건에 직지를 포함하게 되었다. 회의 개최결과 직지는 구텐베르크 성서와 함께 등재가 권고되었고, 2001년 9월 4일에 청주고인쇄박물관으로 등재되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중에 소장하고 있지 않으면서 등재한 유일한 예이다. 직지는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가 인정하는 인류문화유산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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