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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2.03.04 18:50:01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황정하

청주 고인쇄박물관 학예연구실장

올해로 고인쇄박물관이 개관한지 20년이 되는 해이다. 보통 우리는 20세가 되면 약관(弱冠)이란 표현을 쓴다. 약관이란 논어 위정편에 공자가 스무 살에 관례를 한다고 한 데서 나온 말로 성년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지난 20여년을 돌이켜 보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

1980년대 초만 해도 운천동일대는 무심천 둑방의 서쪽부분으로 벼농사를 경작하는 논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몇 채 안 되는 집들이 자연부락을 이루었던 농촌마을이었다. 도시가 팽창하면서 이 일대에 택지개발공사를 위해 청주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동종(보물 제1167호)과 불상이 출토된바 있는 운천동사지 발굴조사가 진행되었다. 이 때 한 시민의 제보가 고인쇄박물관을 건립하게 되는 계기가 된 것이다. 당시 연당리에 살던 김정구씨는 동전 하나를 들고 운천동사지 발굴현장을 찾아와 감정을 의뢰한 것이다. 확인해 보니 고종때 대원군이 경복궁을 다시 짓기 위해 발행한 당백전이었다. 큰 가치가 나가는 것이 아니니 잘 보관하셨다가 후손에게 물려주라고 하였더니, 말문을 열기 시작하였다. 이야기인 즉, 내가 연당리에 살았는데, 택지개발이 되면서 사직동 변전소 근처로 이사를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연당리에 살 때 돌이 매우 좋아서 댓돌로 사용하다 이사하면서 가져갔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직동 집을 방문하여 확인한 결과, 절에 세우는 탑에 사용된 돌이었다. 정확한 출처를 확인하고, 현장을 방문해보니 밭 한 가운데에 개인 묘와 함께 주춧돌과 기와조각 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절터임이 분명하였다. 발굴조사를 하기위한 행정적인 절차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택지개발로 인해 절터의 일부가 훼손된 상태에서 연당리사지 발굴조사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발굴조사가 거의 마무리 될 때쯤 청동금구 조각이 수습되었는데, 여기에 "갑인오월 일서원부흥덕사금구일좌"라는 글씨가 음각으로 쓰여 있었다. 이는 직지의 간행기록에 있는 "청주목외흥덕사"에도 나오는 흥덕사와 일치하는 것으로 세상이 깜짝 놀랐고 흥분됐던 기억이 생생하다. 즉, 1377(고려 우왕 3)년에 금속활자로 직지를 간행한 흥덕사의 위치가 밝혀진 것이다. 이제는 절터의 발굴에서 금속활자를 찾기 위한 발굴로 전환하여 금속탐지기를 이용한 추가 조사와 학술회의도 개최하였다. 그 후 흥덕사지는 사적 제315호로 지정되고, 이를 정비하면서 우리나라 유일의 고인쇄 전문박물관을 건립하게 된 것이다. 박물관을 건립 당시에는 명칭을 놓고 '흥덕사지 박물관', '직지박물관' 등 이견이 많았다. 그러나 직지는 금속활자 발명국 코리아를 입증하는 현존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이며, 또한 우리나라 목판인쇄까지도 포함할 수 있는 이름으로 하자는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의 의견에 따라 '청주고인쇄박물관'으로 정한 것이다. 즉 우리 민족이 세계에서 가장 먼저 금속활자 인쇄술을 창안하여 발전시킨 문화 민족임을 알리고, 인류 문명사에 빛나는 선조들의 자랑스런 문화유산을 길이 보존하고자, 1992년 3월 17일에 개관하기에 이른다.

택지개발로 영원히 사라질 위기에 놓였던 흥덕사지가 한 시민의 제보로 다시 태어났고, 이를 기념하는 교육의 장을 만들기 위해 건립한 고인쇄박물관이 이제 성년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그 동안 박물관을 증축하고, 뉴밀레니엄을 맞아 인쇄출판박람회를 개최하였다. 독일 구텐베르크박물관 등 세계적인 인쇄박물관과 자매결연을 체결하여 인류 문화발전을 위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그리고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회의를 개최하여 직지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하였으며, 유네스코 직지상을 제정하여 체코국립도서관 등 4개 기관에 시상하였다. 그 외에도 직지문화특구 지정, 직지축제의 개최, 국내·외 전시회 및 학술회의 개최, 교과서 게재 및 학술서적 간행 등 성년이 되기까지 많은 준비가 필요했다.

이제는 금속활자 발명국 코리아를 대표하는 직지를 통해 청주가 지식정보 선진도시로 재도약하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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