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어머니

천미선

도예가

여자나이 마흔이면 불혹이라고 한다. 나의 생에 첫 해외여행이라는 것을 시작 한 것도 그즈음이다.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않았던 80년대엔 평범한 나로선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한다는 것은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매우 어려운 일이였다. 그러다가 불쑥 마흔이 가까울 무렵 불혹이라는 나이를 핑계 삼아 아주 오래전부터 꿈꿔오던 인도 배낭여행을 가기위해 무조건 짐 꾸리고, 인도로 떠나게 되는 것이 도공의 물레 여행 시발점이 되었다.

그러나 가정과 아이가 있는 주부의 신분으로 한 달을 넘게 집을 비운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으나 오랜 설득과 호기를 부린 덕에 가족의 승낙을 받을 수 있었고, 집을 비우는 동안 살림과 아이 돌보는 일은 친정어머니께 부탁을 드리고 나서야 떠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죄송하고 감사 한마음뿐이다. 그 이후에도 자의든 타의든 매년 밖으로 나갈 기회가 주어졌다. 그때마다 친정어머니께서는 일주일이나 한 달, 때로는 두 달씩 막내딸의 집에 오셔서 백년손님이라는 어려운 사위의 밥상을 챙겨주시고, 어린 손주 녀석을 돌봐 주시곤 하였다.

나는 어머니께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해달라며 떼를 쓰면, 어머니께서는 쉽지 않은 일임에도 자식 일이기에 마다하시지 않으시고 베풀어 주시는 것이었다. (난들 왜 모르겠는가! 아무 조건 없이 내어 주시는 모든 것의 의미를......)

어머니 고향은 도자기의 고장인 문경이기 때문에 도자기를 만드는 일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를 이미 알고 계시기에 "그 힘든 일을 왜하냐? 그냥 살림이나 잘하면 되지" 라고 말씀 하시며 막내딸을 늘 안쓰러워하신다. 그래서 오십을 코앞에 두고도 살림이 서툰 막내딸에게 아직까지도 김치며, 밑반찬들을 모두 친정어머니께서 손수 해주신다. 그러면서도 내심 어머니와는 다른 모습으로 당당하게 열정을 가지고 일하는 막내딸이 자랑스러워 친구 분이나 이웃어르신들께 누가 묻지 않아도 "우리 막내딸이 말이야.........." 하신다.

팔순 노모께서 거친 주름이 도드라진 손으로 직접 하신 맛난 음식들을 친구며 손님들과 나누어 먹으라며 가득 담아주신 푸짐한 음식들로 작업실에 오는 지인들과 함께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어머니의 음식에는 언제나 흑임자를 넣어서 맛이 아니더라도 이미 알고는 "어머니가 해주셨구나! 역시 일품이야"라며 한결같이 입을 모아 말한다.

어머니께서는 지금도 항상 "내 집에 오는 손님들은 때가 되면 모두 밥은 먹어 보내야한다"라고 말씀 하신다. 아마도 모두가 가난하고 배고픈 시절 조금이나마 함께 나누던 정 일 것이란 생각이 든다. 옛 말에 곡간에서 인심난다고 했던 가 이 모든 것이 친정어머니 덕분이다. 이렇게 어머니께서 제게 베풀어 주시는 끝없는 사랑에 비해서 난 해드린 것이 없으니 언제나 죄송한 마음뿐이다.

어머니!

제가 일이 있어 집을 비울 때에는 언제나 오셔서 조건 없이 빈자리를 채워 주시고, 힘들고 어려운 번거로움까지도 감수해 주셨기 때문에 저도 지금의 모습으로 생활하며, 행복한 도공의 물레 여행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항상 감사드리고 건강하게 제가 철들 때까지 오래 오래 사세요.

"사랑 합니다 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