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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선의 책으로 보는 세상 - 길 위에서 듣는 그리스 로마 신화

우리들 삶에 맡겨진 신탁

  • 웹출고시간2011.05.29 18:49:21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처음 당신이 꽃신을 사 보냈을 때, 그 꽃신은 퍽 컸어요. 그러나 난이가 아장아장 꽃신을 신고 다니기 시작할 때는 거의 맞았어요. 나는 그 꽃신이 작아질까봐 걱정까지 했어요. 그러나 그 꽃신은 영영 작아지지 않을 거예요."

첫아이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전시의 일선에서 들은 아빠는 어렵게 예쁜 꽃신을 하나 구해, 당장 달려올 수 없는 애틋한 부성을 대신 전한다. 난이는 그 꽃신을 물동이삼아, 바구니삼아 가지고 놀다 신 한 짝을 잃어버렸다. 잃어버린 신발 한 짝이 너무도 안타까운 엄마는 생전 처음으로 난이의 엉덩이를 때리고, 공교롭게도 그 일 이후부터 아직 두 돌도 못된 난이는 시름시름 앓다 죽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강아지가 감추어 두었던 신발 한 짝을 물고 나오자 회한과 슬픔에 북받친 엄마는 그동안 미루어 두었던 난이의 죽음을 비로소 위와 같이 아빠에게 편지로 전한다.

길 위에서 듣는 그리스 로마 신화

이윤기 著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1권 제1장 '잃어버린 신발을 찾아서'란 표제를 보는 순간, 늘 마음 한 켠에 아린 슬픔으로 덮여 있던 강소천의 '꽃신'이란 동화가 다시 떠올랐다. 내가 알고 있는 신발과 관련된 이야기 중 가장 가슴을 먹먹하게 했던 난이와 꽃신 이야기. 그 동화 중에서 그동안 어쩐지 내게는 석연치 않게 생각되었던 엄마의 태도-신발 한 짝 때문에 말도 채 익히지 못한 아기를 모질게 다그친-가 이 제1장을 읽어나가면서 차차 이해가 되었다. 엄마에게 있어 그 꽃신은 단순한 신발이 아니라 전시에 있던 남편 안위의 척도이거나 남편과 아기란 존재의 상징이었구나 하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이렇게 나의 신화 읽기는 아직 자신을 말로써 변명할 줄 모르는, 그래서 강아지가 물고 간 신발 한 짝에 대해 아무 얘기도 할 수 없었던, 그리하여 그저 쓸쓸하게 엄마를 바라보다가 별빛처럼 스러진 고운 아기, 난이에 대한 연민에서 시작되었다.

신화란 원래 기계문명 이전, 사람의 일생으로 치자면 아기와 같은 순수 자연의 시대에 인간의 본성을 신들을 통해 마음껏 드러낸 이야기 아닌가. 그리고 무엇보다 신화의 바탕에는 인간에 대한 사랑과 연민이 깔려 있다고 본다.

초등학교 때 처음 읽었던 계몽사 출판 어린이 세계 명작에서의 그리스 로마신화에서부터, 토마스 불핀치의 그리스 로마 신화, 호메로스의 '일리아드 오딧세이', 오비디우스의 '변신' 등 신화의 세계는 그 종류와 격이 다양하다.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가 다른 신화 이야기와 차별되는 점은 쉽고 대중적이며 생동감이 넘친다는 점이다.

"내가 그리스 로마 신화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조선 민족으로서의 '우리'보다는 인류의 한 갈래로서의 '우리'에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그 '우리'는 몇 가지 기본적인 경험을 공유한다."

제 2권 '사랑의 테마로 읽는 신화의 12가지 열쇠'에서 작가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 기본적인 경험으로 인간의 삶과 죽음, 성을 이야기한다. 신화는 결국 이 세 가지 이야기가 가장 큰 골격을 이루고 있다. 비록 신들이 영생불사하는 존재라 해도 그들은 인간의 죽음에 얼마나 끊임없이 간섭하고 관심을 기울이는가.

1,2권 각 12장의 이야기들은 비록 신화이지만, 인간 안에 내재되어 있는 인간 본성을 스프링처럼 고스란히 튕겨 보여 준다. 신과 인간들의 성애, 그들의 번민과 사랑, 질투, 배신, 슬픔, 근친상간, 동성애, 지순한 애정, 예술에 대한 선망, 야망, 복수, 과욕 등 극화된 삶의 세사(世事)가 녹아 있다. 선의와 덕행에 대한 일화보다는 애증과 갈등, 반목, 나락으로 떨어지게 하는 주체 못할 호기심 등, 인간으로서의 숙명적 한계를 가지는 이야기들이 더 많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매력은 올림푸스 신들이 산상에만 머무르지 않고 때로 지상의 인간들과 호흡을 같이한다는 데 있다. 호머의 '일리아드 오딧세이'는 결국 인간에 빙의된 신들의 욕망과 갈등이며, 신과 인간세계의 경계도 모호하다. 신들 하나하나의 특성은 곧 인간 성격의 전형을 보여주기도 한다.

제우스와 헤라는 수시로 부부싸움을 벌이나 곧 제자리로 돌아와 일상적 삶의 궤도로 돌아가곤 하는 평범한 이웃집 아저씨 아주머니 같은 친근감을 준다. 신들이 불멸의 존재라면, 지금도 아름다운 천상의 그늘에서 에로스와 함께 나른히 누워 인간들의 사랑을 점지하며 즐거워하고 있을 아프로디테, 날개 달린 모자를 장난스럽게 쓰고 이곳저곳 기웃거리고 다닐 것 같은 헤메로스, 사자 가죽을 두르고 대적할 자를 고르기 위해 어깨에 힘주고 있을 듯한 헤라클레스, 학문과 문화 예술계 인사들의 숨결에 넘나들고 있을 아홉 무사이들…….

그들의 목소리는 저 하늘 위의 근엄한 자리에서만 울리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의 삶의 결에 갖가지 희로애락의 모습으로 숨어들어 광휘를 발한다. 신화는 세상사의 기막힌 교합과 우리 모두 서로가 서로에게 얼마나 깊은 관계인지 생각하게 해준다. 비록 한 번의 일면식도 없는 타인이라 할지라도.

시대를 초월하여 인간 심리와 삶의 시원이라 할 수 있는 신화, 그 신전에 마음껏 드나들 수 있고, 현재의 인간들을 향한 신탁의 열쇠가 '책'이라는 유형의 존재로 살아있음이 참으로 고맙다.

두 번째 책 '사랑의 테마로 읽는 신화의 12가지 열쇠'에서 저자는 이렇게 묻고 있다.

"우리는 신화로써 세계의 전모, 인간의 바닥을 흐르는 낯선 강의 모양을 짐작할 수 있는가·"

이 물음에 나는 앞서 말한 '꽃신' 속의 난이가 되어 응답해 본다.

"그 날 밤 꿈에 난이는 반가운 듯이 엄마 앞에 나타났습니다. 두 발에 꽃신을 신고 민들레 핀 길섶을 아장아장 걷고 있었습니다."

신화에 대하여 아직 어린아이와 같은 나는, 내 존재의 심연을 이끌고, 앞으로도 신화의 깊은 강줄기를 따라 계속 흘러가고 싶다. 때로 그 오래되고 아득한 흐름의 물살이 지금 내 발 밑을 적시기도 하는 것에 놀라워하면서…….

* 2002년 가을, 이윤기 선생과 다녀왔던 그리스 로마 신전 중심의 답사 여행은 내게 그야말로 '신화'적인 일로 남아 있다. 지중해 나프폴리를 지나며, 아르테미스 산을 넘으며 그가 불던 '희랍인 조르바' 음악의 휘파람 소리도 잊을 수 없다. 그리고 여행 후 선생의 과천 서재에서 작가로서의 근로의식을 피력하던 모습에서까지, 그는 내게 지적 불씨의 영성을 깨우쳐준 프로메테우스적 인간이었다.

"세상에는 진실의 입을 단지 하수도 뚜껑이라는 사실적 시각으로 치부하는 부류와 그것에 손을 넣으면 정말 손을 뺄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것을 믿는 부류가 공존한다. 우리는 후자에 속하지 않겠는가."

여행의 마지막 날, 로마 산타마리아델라교회 입구의 대리석 가면인 '진실의 입'에 대한 선생의 소회를 들으며, 나는 허구적 진실에 대한 화두를 가슴에 품게 되었다.

아직도 선생의 이른 죽음이 너무나 가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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