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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선의 책으로 보는 세상 - 사랑, 은비령 별빛 통신

"사랑을 나누기는 쉽지만 인생을 나누기는 녹록치 않은 법"

  • 웹출고시간2010.11.28 21:06:00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은빛 살별이 긴 여운을 그리며 가슴 속을 서늘히 가로지르는 듯 했죠. 마지막 문장을 읽고 났을 때 말입니다. 사실 이 광속의 시대에 당신들의 사랑을 뒤따르자니 읽는 내내 좀 답답했던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요즘이 어떤 때인가요·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만나고 헤어지는 것도 인스턴트식 아니던가요· '사랑'이란 통조림을 원터치로 따서 달콤한 과즙을 들이키듯 한번 소비해버리고 나면, 서로에 대한 마음을 빈 깡통처럼 비워버린 채 깨끗하게 헤어지는 것. 그것이 쿨한 사랑으로 인식되는 것이 이즈음 젊은이들의 사랑법인 듯합니다.

이렇게 '쿨'한 시대에 2천 5백만 년 후를 기약하는 사랑이야기란 그야말로 '판타지 소설' 쯤으로 분류될 법 합니다. 사실 두 사람의 사랑을 거스를 만한 외적 요인은 특별히 눈에 띄지 않습니다. 여자는 사별하여 혼자 몸이고, 남자는 아내가 주소까지 옮겨가서 별거 중입니다. 두 사람이 한 몸이 되는 것에 장애가 될 요인은 아무 것도 없지 싶어요. 다만 여자가 죽은 친구의 아내라는 것밖에는. 그런데 그것이 두 사람이 그토록 머뭇거리는 이유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낡은 도덕적 외피에 불과하죠. 늘 닿을 듯 말 듯 스치는 당신들의 사랑을 어느 평론가는 '작가의 윤리관'에 입각한 것으로 근엄한 판단을 내렸더군요.

하지만 나는 당신들의 사랑에 '유교적 윤리'라는 말을 쓰고 싶지 않습니다. 굳이 작가와 연관지어 말한다면 그것은 이순원 작가의 '사랑의 미학'이라고 말하고 싶군요.

당신들은 둘 다 결혼의 상처를 갖고 있습니다. 그것은 곧 삶의 상처이기도 하지요. 그 상처의 출발점은 사랑이었구요. 그래서 당신들은 다시 선 출발점에서 망설이는 것입니다. 사랑은 곧 삶을 나누는 것으로 이어지니까. 자신은 물론 상대의 인생을 쉽게 생각할 수는 없는 것이니까요. 사랑을 나누기는 쉽지만 인생을 나누기란 결코 녹록치 않은 법이죠. 그래서 당신들은 두 번째 사랑의 문을, 멀고 아득한 공간 은비령에 세워 놓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생각해요. 벼랑의 눈길에 목숨을 내어놓고 찾아가야만 열 수 있는…….

선혜씨, 그렇지 않은가요· 세 주인공 중 유일하게 이름을 부여받은 인물이기에 당신을 불러봅니다. 몹시도 사랑했던 남편이 남긴 상실의 자리를 경험한 당신은 그 상실의 반복에 대한 두려움이 앞섰을 것 같습니다. 당신들의 집, 사무실, 아니면 여관· 그 어느 곳에서도 당신들은 사랑을 이야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질기게 반복되는 일상의 공간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 당신들의 사랑이었습니다.

그리하여 한 별이 또 하나의 가깝고도 먼 별을 불러내어 세상에 있는 듯 없는 듯한 은비령에 도달해서야 당신들의 사랑은 비로소 편안해집니다. 주인공 소설가는 예전에 은비령에서 세속적 정점으로의 도약을 꿈꾼 적이 있었습니다. 무언가를 갈망하던 장소였지요. 하지만 이루어내지는 못했었고, 또 그것은 당연한 것이었어요. 자신의 마음에서 진정으로 깊이 울려나오던 것이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다시 돌아온 은비령에서 하쿠다케 혜성을 보던 날 밤, 2천 오백만년이란 깊고도 먼 사랑의 꿈을 비로소 태동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소설가인 당신이 젊은 시절 처음 은비령에 왔을 때부터 깊이 소망해 오던 것은 '세속적 성취'가 아니라 '바람꽃 닮은 사랑'이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소설가인 당신, 아내로부터 일상에서 늘 '이것도 저것도 아닌'사람으로 치부되던 당신의 쓸쓸함이 은비령의 사랑을 세웠던 것이겠지요.

"그럼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요·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게……."

"대체 뭐가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는 거야·"

"나한테는 그래요. 당신 글쓰는 게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구요."

삿된 욕심이 사람을 얼마나 무기력하고 지치게 하는지 정말 잘 압니다.

그러고보니 나는 선혜씨 같은 사랑을 하지는 못할 것 같네요. 별빛이 아득히 흘러갈 정도의 먼 시간을 기약하기보다 당장의 사랑을 놓칠까봐 옆에서 종종걸음치는 속되고 욕심 많은 여자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 같아요. 세속적 인간은 어떻게든 지상에 안착하여 일상의 궤도를 순항해야 마음이 편해지죠.

선혜씨, 당신의 사랑은 그러한 지상의 사람살이에 위안과 휴식을 주는 사랑입니다. 때로 눈을 들어 하늘을 보았을 때 캄캄한 천공뿐이라면 우리들 지상의 사랑에 어떤 믿음을 가질 수 있겠어요· 당신처럼 몇 천만 광년, 영속의 빛을 약속하는 사람이 있어, 우리들은 머리 위 늘 흐르고 있을 사랑의 빛을 감지하며 안심한답니다.

별은 그렇게 어느 봄날 바람꽃처럼 내 곁으로 왔다가 이 세상에 없는 또 한 축을 따라 우주 속으로 고요히 흘러갔다.

작가는 사랑이 빛을 잃지 않는 시대를 꿈꾸나 봅니다. 어떠한 광속의 시대에서도 사랑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그날 밤, 은비령엔 아직 녹다 남은 눈이 날리고 나는 2천5백만 년 전의 생애에도 그랬고 이 생애에도 다시 비껴가는 별을 내 가슴에 묻었다. 서로의 가슴에 별이 되어 묻고 묻히는 동안 은비령의 칼바람처럼 거친 숨결 속에서도 우리는 이 생애가 길지 않듯 이제 우리가 앞으로 기다려야 할 다음 생애까지의 시간도 길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자정을 넘긴 깊은 밤, 희미한 도시의 별들 뒤편에도 2천5백 년 전 은비령 별들이 보낸 사랑의 빛이 도달하여 있을 것입니다.

선혜씨, 당신의 눈시울처럼 반짝이는 별빛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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