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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선의 책으로 보는 세상 - '상하이에 부치는 편지'

中번역문화가 부뢰가 유학간 아들에게 쓴 편지
엄격하면서도 사랑 넘치는 절절한 부성애 '눈길'

  • 웹출고시간2011.05.01 18:48:34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오월 이맘때쯤이면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학교에서는 편지쓰기 행사가 많이 벌어진다. 각종 기관에서 주최하는 편지쓰기 대회 공문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주로 부모님께, 또는 추억의 선생님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열어놓은 창문으로 봄바람에 귀밑머리 나풀대는 아이들이 정성스레 편지지를 채워 나가는 모습은 그지없이 사랑스럽다.

요즘 같은 기기화 시대에 그래도 이런 행사가 있어 아이들은 편지를 써본다지만 우리 어른들은 어떤가. 나부터도 직접 펜으로 편지를 써 본 기억이 까마득하다. 돌아가신 조부모께서는 인척분들과 자주 편지로 안부를 나누곤 하셨다. 물론 통신매체가 발달되지 않은 시대의 산물이기도 하겠지만 편지란 조선시대에도 중요한 실용문이자 문화적 풍습이었다. 혼인 시 한 집안의 평판은, 혼수예단보다 사주함에 들어 있는 사돈의 봉채편지 품격으로 가늠되어지곤 했다.

이메일과 휴대폰 등으로 단편화된 문자가 난무하는 시대에 아주 가끔이라도 소중한 이에게 편지를 써보면 어떨까. 특별한 교감으로 그 사이는 더욱 돈독해질 것이다. 나 또한 사춘기 아들에게 먼저 편지를 써 보아야겠다고 마음먹어 본다.

상하이에서 부치는 편지

부뢰 지음 / 민음사

"나는 엄마 조아해, 만이 사랑해, 안녕"

예닐곱 살 때의 아들이 한창 글자를 배울 무렵, 아이는 가끔 내 손에 이런 내용의 종이를 슬쩍 쥐어주고 어딘가로 숨어 내 동정을 살피며 빨리 답장을 하라고 성화를 대곤 했다. 말이 아니라 글자로 교감하며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어린아이에겐 새롭고 신기한 즐거움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일에 쫓겨 별 성의없이 답장을 써주곤 했던 것이 새삼 아이에게 미안하다.

'상하이에서 부치는 편지'는 성장한 자녀에게 쓴 편지 모음으로써 실제로 온 영혼과 정신을 진력하여 자식을 대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그 어떤 방법론적 이론적 교육법보다도 그 호소력과 울림이 매우 크다. 각종 학원에 보내주고 풍부한 물적 자본으로 뒷받침해주는 것이 부모 역할의 전부가 아님을 절실히 깨닫게 해주는 편지글이다.

부모 자식이라는 수직적 관계 이전에 인간과 인간으로서의 서로의 삶에 대한 존중과 이해, 따뜻한 위무, 진지한 조언, 서로의 영혼에서 울려 나오는 깊은 심적 교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우쳐 주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연구하고 공부하듯 자식을 위해 무한히 노력해야 한다. 단순히 핏줄만 같다고 해서 유대감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많은 부모들이 자식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흔히 하는 말로 '다 제 팔자지 뭐'하며 자조하곤 한다. 이는 자식에 대한 공부가 부족한 탓이다. 농사지을 때도 재배법을 공부하는데 하물며 자식을 기르는 데 있어서랴.

부뢰의 책을 읽어 보면 자식을 같이 데리고 있지 못해도 편지로써 훌륭하게 양육시킬 수 있음을 알게 된다.

'집안의 편지는 만금과 같다.'는 두보의 명구를 인용하며 부뢰는 외국에 나가 있는 아들 부총에게 편지를 자주 쓸 것을 당부한다. 이는 아들의 편지를 많이 받고자 하는 단순한 욕심에서가 아니다. '사람이 글로 생각을 정리하지 않으면 생각의 체계를 만들기 어려운 법이다.', 또 '그 어떤 심리적 파동이나 우울증도 글로 써내면 저절로 후련해지고 차분히 정리가 되는 것'이라는 부뢰의 말은, 일기를 쓰듯 편지에 자신의 생각과 생활을 정리함으로써 아들의 일상이 이성적으로 정돈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이 편지들은, 1954년 피아니스트인 아들 부총이 폴란드로 유학을 떠나면서부터 이후 1966년 번역문화가인 아버지 부뢰가 문화대혁명의 주체세력이었던 홍위병에 의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기 직전까지 십여 년간 계속되었다.

편지 속에는 중국 근대사의 격변, 인문학적 성찰, 예술가로서의 사색과 삶의 태도, 예술에 대한 다양한 견해, 음악을 위한 사색과 예술품 감상법 등이 간곡한 어조로 깔려 있다. 이 밖에도 아들에 대한 조언과 당부는 매우 정밀하고 섬세해서, 부총은 먼 타국에서도 아버지가 늘 그의 옆에 함께 앉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을 듯하다.

부뢰가 아들에게 쓴 편지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첫째, 그는 '예술가'보다는 '사람'을 우선시했다. '예술가가 되려면 먼저 사람이 되는 것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하며 후에 부총이 결혼했을 때 '음악이라는 예술 때문에 생활이라는 예술을 잊지 않도록' 당부했다.

둘째, 매사에 조급해 하지 말고 이성적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라는 것이었다. 예술가는 때때로 감정의 격동에 휩싸이기 쉽다. 따라서 아버지는 아들에게 '이성적 인식'이 예술가의 세계를 더욱 깊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여러 번 이야기한다.

셋째, '세상에서 가장 유력한 논증은 실제 행동만한 것이 없고, 가장 효과적인 교육은 몸으로 하는 것 만한 것이 없다'라며 실천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고자 애쓴다. 부뢰는 또 '깨닫는 것과 새로운 습관을 길러 그 깨달음을 체현하는 것은 다르다'라는 것을 말하며 자신이 얻은 깨달음을 실천으로 옮길 것을 강조한다.

넷째, 시간을 효율적으로 잘 활용해서 쓸 것을 당부하고 있다. '규칙을 세워 경제적으로 시간을 안배해서 쓰는 것'이 예술가로서 더욱 진보할 수 있는 길임을 수시로 말한다.

다섯째, 훌륭한 예술가가 되기 위해서는 자연과 다른 예술 작품을 많이 감상해야 함을 강조한다. '고색창연한 거리나 교회, 다리 모두 자세히 음미할 가치가 있는 것들이다. 새벽이나 황혼, 심야에 이런 곳에서 배회하다 보면 특별한 느낌이 들어 시적인 정취와 이미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세심하게 배려하면서 '대자연과 조형예술을 많이 접하면 모르는 사이에 사람이 안정적이면서도 활발한 상태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주지시키고 있다.

여섯째, 조국과 민족에 대한 사랑이다. '멀리 떨어져 있지만 너와 내가 거리낌없이 사상을 교류하고 정신적 연대를 느끼는 것도, 이국 땅의 나그네인 네가 너를 낳아 준 민족, 너를 기른 조국, 우리의 문화, 혈육과 영원히 연결되어 있다는 걸 상징한다'라고 강조하며 언제 어디서나 중국인으로서의 자긍심을 잊지 말기를 당부하고 있다. 부친의 이런 가르침에 따라 부총은 부모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한을 품고 자살로 생을 마감했지만, 조국에 대한 사랑과 신의를 끝까지 저버리지 않았다.

'상하이에서 부치는 편지'는 단순한 편지의 수준을 넘어선다. 부뢰는 아들에게 보낸 편지를 다시 그대로 베끼고 일일이 번호를 매겨 보관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하면 다음 편지에서 같은 내용이 중복되는 것을 막을 수 있고, 지난번과 연계해서 더욱 체계적으로 진전된 내용을 전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 아들에게 편지의 내용과 관련된 각종 서적과 여러 자료를 보내 주기도 했다. 이쯤 되면 편지를 가히 학문적 수준으로 발전시켰다고 할 수 있겠다.

"만일 기운이 빠지면 이 아버지가, 이 가늘고 마른 팔뚝이라도 멀리서 너를 잡고 있다는 걸 생각해 다오."

편지 모음의 그 무수한 말 중에서도 이 한 마디가 유난히 가슴을 울린다. 그 어떤 실제적 조언과 당부보다도 부모의 조건 없는 사랑은 가장 감동적인 것인가 보다. 또한 이 편지글의 자구마다 배어 있는, 부모로서 노력하는 사랑의 모습을 나도 닮고 싶다. 그리고 내 아들이 더 자라 인생을 성찰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 부뢰의 편지글을 빌어 나 또한 이런 말을 주고 싶다.

"자신과의 독백이 무궁한 것처럼 너와 나의 대화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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