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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선의 책으로 보는 세상 - 유림

추로지향(鄒魯之鄕)을 꿈꾸며

  • 웹출고시간2011.04.03 17:36:05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올 겨울은 '유림'의 숲에 은거하다 봄을 맞았다. 정독한 유림 세 권을 한 옆에 쌓아 놓으니 이 겨울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다는 생각에 새삼 충만한 생의 봄기운이 솟아오르는 듯하다. 마지막 3권, 퇴계의 행적 속에서는 그가 유난히 사랑했던 매화 이야기가 향기로운 춘신(春信)처럼 은은했다.

바야흐로 남녘 마을로부터 서서히 꽃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시간이 흘러 사는 모습이 변해도 절기는 옛 모습 그대로인 것처럼, 사람의 본성과 도리 또한 옛날과 다르지 않다. 그리하여 "진정한 미래는 오랜 옛 지혜 속에 있다"라는 라다크의 격언처럼 우리는 미래를 성찰하기 위해 고매한 선인의 정신을 우러르는 것이다.

다소 오래 전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도발적인 제목의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유교의 권위적, 수직적인 사고 관념이 우리 사회의 민주적 다양성, 독창성 등을 해치고 있으므로 이제 젊은이들에게 공맹 사상은 필요 없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저자는 공자와 유학(儒學)을 잘못 이해하는 데서 그와 같은 편견을 갖게 되지 않았나 싶다.

"새나 짐승과 같이 어울려 살 수는 없는 일이다. 내 천하의 사람들과 어울려 살지 않고, 그 누구와 더불어 살겠는가."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공동체 사회 속에서 이상적인 삶의 모습과 아름다운 질서를 부여하려 끊임없이 애쓰던 공자는 노자의 사상에 반(反)하여 이렇게 말한다. 어차피 인간은 혼자 은둔하여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다. 소수의 사람들이 자신의 성향대로 자연에 홀로 은거할 수는 있겠지만, 모든 인류가 저마다 고립된 섬처럼 살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공자는 더불어 사는 사회 속에서 저마다 자기의 위치대로 어떻게 '잘' 살아갈 것인가를 고심하던 삶의 경영자로 불려도 좋을 것이다.

유림

최연호 지음 / 열람원

그리하여 '유림'의 저자는 종교적 성인인 예수나 부처와는 달리 공자를 난세의 선각자이며 교육자, 현실주의적 철인이라고 간파해 낸 것이다. 공자가 천하를 주유하며 각 나라의 정세 속에서 자신의 경륜을 펼쳐 보이고자 끊임없이 시도한 것은, 단지 높은 벼슬을 탐하여 부귀영화를 구하고자 한 것이 아님은 누구나 알 것이다. 임금답고, 신하다우며, 아버지답고, 자식다운, 나라의 구성원 모두가 제 역할에 충실하여 유연히 삶을 영위하도록 하는 바른 정치를 꿈꾸었기 때문이다. 그는 꿈꾸는 사람이었다. 그리하였기 때문에 고달픈 유목민과도 같은 생활을 십수 년간 자처할 수 있었다.

그리고……그 후 2천여 년의 세월이 흘러 조선에 또 하나의 그처럼 꿈꾸는 사내 하나가 나타났다. 정암 조광조, 이상국가로의 개혁을 추진하며 혼신으로 새 정치의 훈풍을 일으키고자 했던 그는, 그러나 훈구파에 의해 붕당 죄란 누명을 쓰고 하루아침에 유배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불과 4년의 꿈같이 짧은 국정 쇄신의 바람을 제대로 펼쳐 보이기도 전에 일어난 참극이었다. 그리고 참으로 안타깝게도 능주에 유배된 지 불과 두 달 만에 조광조는 사사되어 스러지고 말았다. 차라리 유배 기간이라도 길었더라면 학문적 업적이라도 좀 더 이루었을텐데 그토록 성급하게 목숨을 앗은 것이 못내 한스럽다.

"사람의 마음에는 욕심이 있으므로 그 마음 본체의 영묘한 것이 잠기어 인륜이 폐해지고, 천지만물이 생을 이루지 못하는 것입니다."

조광조가 중종에게 바치는 '계심잠' 서문의 일부이다. 이는 비단 임금이 스스로의 마음을 경계하는 데에 국한되는 내용은 아닐 것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여실히 적용된다. 마음의 영묘함이 흐려져서 천륜을 어기는 일이 비일비재하고, 천지만물이 제 삶을 제대로 영위하지 못함은 오히려 조선시대보다 오늘날이 더 심각하지 않은가.

"부부는 남녀가 처음 만나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다. 가장 바르게 해야 하고, 가장 조심해야 하는 처지이다. 그렇기 때문에 군자의 도가 부부에서 발단이 된다고 한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모두 예와 존경함을 잊어버리고 서로 버릇없이 칭하여 마침내 모욕하고 인격을 멸시해 버린다. 이런 일은 서로 손님처럼 공경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퇴계가 혼인하는 손자에게 쓴 편지이다. 5백 년 전 유학자의 말씀이 오늘날 그 어떤 주례사보다 신선하며 울림이 있다. '부부는 남녀가 처음 만나 세계를 창조하는 것', '군자의 도가 부부에서 발단이 된다', '서로 손님처럼 공경한다'는 말씀들이 고요히 가슴에 스민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라는 허울 좋은 미명하에 얼마나 많은 부부들이 수시로 치열하게 싸워 왔던가. 그리하여 우리나라 이혼율은 세계의 선두가 되고 있지 않은가. 현대 사회의 많은 병폐가 가정에서부터 시작됨은 자명한 현상이다. 가정의 문제는 곧 부부간의 불화에서부터 비롯된다. 퇴계는 스스로도 정신이 온전치 못한 부인을 봉양하듯 함께 살았다. 조광조 또한 평생 부인 한 사람하고만 정리를 나누었다고 한다. 당시 사대부들의 여성관이나 처첩제도를 볼 때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따라서 유교로 인하여 가부장적 권위 의식이 싹텄다함은 유교의 한 단면만을 확대 해석한 것이다. 진정한 유학의 기풍에는 부부의 동등 의식이 확고하였다. 다만 시대적 조류에 의하여 안과 밖의 구별을 두었을 뿐이지 남녀의 인격까지 차별한 것은 아니었다. 참으로 자신을 살펴 조용히 헤아리는 몸가짐을 가졌던 유학자들은 그렇게 살았다. 조광조가 그러하였고 퇴계가 그러하였다.

시간을 과거, 현재, 미래로 분절한다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과거란 현재의 실물감으로 존재하는 내 속에 이미 흘러내려오고 있으며, 현재는 극히 찰나적이어서 다가오는 미래를 시시각각 받아들이고 있는 상태라는 것이 더 옳겠다. 따라서 공자나 조광조, 이퇴계 같은 인물들은 이미 과거 속으로 사라져 간 인물들이 아니라 흐르는 시간을 타고 내 안에 영속적으로 존재하는 선현들인 것이다. 죽은 자들이 아니고, 한물 간 말씀들이 아니다. 그들 속에 바로 '오래된 미래'가 존재하는 것이다.

"옛 사람들이 말을 함부로 하지 않은 것은 실천이 따르지 못함을 부끄러워해서였다."

퇴계의 '자성록' 서문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퇴계가 살았던 시대에도 사람들은 끊임없이 옛 성현들의 몸가짐을 반추하고 자성하며 살았던 것이다.

'유림'은 단숨에 읽는 책이 아니다. 천천히 넘겨 가며 한 구절마다 곱씹어 소화시켜야 한다. 내 언행과 사유에 비추어 가며 가슴에 새기듯 읽어야 한다. 책 속 선현의 말씀은 단순한 활자가 아니라 내 삶의 거울 위에 그대로 비치는 유기체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유림'은 오늘의 현대인들에게 또 하나의 '자성록'을 쓰는 계기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추로지향(鄒魯之鄕 ), 맹자와 공자의 도가 이루어지는 나라를 꿈꾸었던 퇴계는 마지막 벼슬길이었던 홍엽(紅葉)의 죽령고개에서 안동의 추로지향을 마음 속에 건설한다.

어찌 알았으리 백년토록

마음 두고 학문 닦을 땅이

바로 평소에 나무하고

고기 낚던 곳 곁에 있을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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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