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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선의 책으로 보는 세상 - 로베르토 볼라뇨의'전화'

누군가에게 내 삶과 당신 삶을 화두로 말 걸고 싶은 욕망
발신과 수신의 적절한 과정속에서 평안을 찾으려는 열망

  • 웹출고시간2010.12.12 18:21:49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한때 라틴아메리카 문학에 경도된 적이 있었다. 외국문학이라면 주로 영미권이나 유럽, 일본, 러시아 문학이 주류를 이루던 때에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은 문학의 신대륙처럼 놀랍고 신비스럽게 다가왔다. 이후 마누엘 푸익, 이사벨 아옌데, 보르헤스, 그리고 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바르가스 요사까지 그들의 작품은 신선하고 난해한 한편 어딘지 모르게 동화적 매력으로 끌어당기는 힘이 있었다. 흔히 말하는 '마술적 리얼리즘'의 작용 때문이었을까. 물론 위의 작가들을 남미 문학의 특장점이자 이제는 고착화된 용어가 되어버린 '마술적 리얼리즘'으로 모두 묶어 말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하지만 라틴 문학 속에는, 어린 시절 한밤중에 문득 깨어나 혼자라는 것을 알았을 때의 불안감, 그 어둠과 두려움 속에서도 영적 상상의 세계로 이끌어가던 주술적 질료의 매혹이 담겨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남미 작가 로베르토 볼라뇨는 위의 작가들과 확연히 다르다. 일견 보르헤스 계보로 평가되고 있는 이 작가는 2003년 이미 타계하였지만 현재까지도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미래'로 불리워지고 있다. 칠레를 고향으로 두고 멕시코와 스페인에서 주로 생활한 볼라뇨는 1999년 <라틴 아메리카의 노벨 문학상>이라 불리는 로물로 가예고스상을 비롯 유수의 문학상을 두루 수상하였다. 대표작『야만스러운 탐정들』을 비롯해 많은 장편과 단편을 남겼는데 오늘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의 단편집『전화』이다.

'전화'

로베르토 볼라뇨 지음 / 박세형 옮김

이 단편집에서 그는 존재의 불안에 시달리고 있는 인간 군상들을 묘사하고 있다. 삼류작가, 낙제생, 포르노배우 등 삶의 주변인들은 제 삶의 자리에서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이상적 '업'에 대하여 또는 타인과의 소통과 이해를 위해 끊임없이 몸부림친다. 그리하여 작품집에 실린 14개 단편 중에서「전화」가 표제작이 된 것은 그러한 '소통'의 문제를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었나 짐작해 본다. 전화는 인간이 발명한 문명 기기 중 그 기능이 가장 창의적으로 계속 진일보 하고 있다는 점에서 독보적인 존재이다. 묵직한 다이얼 전화에서부터 무선전화기, 휴대폰, 그리고 최첨단의 정보 기능을 장착한 스마트폰에 이르기까지 전화는 현대인의 개인주의적 기호에 가장 알맞은 기기이다. 상대에게 내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면서도 나의 모든 메시지를 쏟아낼 수 있으며, 일방적 전달과 단절을 자유자재로 통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하지만 상대방은 그로 인해 관계의 상처를 크게 입을 수 있다는 점에서 치명적이기도 하다. 따라서 전화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소통의 대척점에 서 있기도 한 것이다. 그러므로 존재의 불안과 소통의 문제를 단적으로 상징하는 전화는 현대인의 정서와 욕망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러한 전화가 소설에서 인물들의 심리적 거리를 활용하고 통제하기에 적절한 탄성(彈性)을 지녔음은 두말 할 나위없다.

표제작「전화」는 남녀의 만남과 사랑이야기다. B와 X라는 익명성으로 표시되는 두 남녀 사이에서 전화의 역할은 무엇인가. 남녀는 전화로 이별을 통보하고 전화로 다시 만난다. 또 다시 떠나달라는 X에게 계속 전화를 하며 B는 '이제 전화는 지긋지긋해. 네 얼굴을 보며 말하고 싶어'라고 말한다. B는 기계로 발산되는 메시지가 아닌 서로 체온을 나누는 '현상의 삶'을 원했던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 통화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X는 누군가로부터 살해된다.

이 책에서 소설의 목차가 시작되기 전, 첫 장에는 '누가 당신만큼 내 공포를 잘 이해할 수 있겠소·'라는 체호프의 단문이 적혀 있다. 이 또한 전화의 의미와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내 삶의 불안을 타인과 나누고 싶은 것-죽음이 예정되어 있는 인간의 삶이란 누구에게나 불안하고 공포스러운 것이다- 누군가에게 내 삶과 당신의 삶을 화두로 말을 걸고 싶은 욕망, 그 발신과 수신의 적절한 상호교합에서 인간은 평안을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전화」보다 사실 내게 더 관심과 공감이 갔던 것은「센시니」「앙리 시몽 르프랭스」「엔리케 마르틴」「문학적 모험」등 문학인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일군의 단편들이다. 결코 '문호'나 '대가'의 반열에 오를 수 없으면서, 아니 심지어는 작가라는 이름조차 얻기 힘든 이들이 문학이라는 행성 주위를 떠도는 이야기는 애처롭다. 자전적 색채를 띤 이들 작품은 볼라뇨의 문학 자체에 대한 오마주로도 읽힌다. 독서력이 일천해서인지, 작가들이 자신의 업 자체를 화제 삼기 꺼려서인지 그동안의 문학 작품에서 작가나 문학 자체를 대상화한 작품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런 만큼 이 단편들은 무척 흥미로웠다.

「센시니」에서 '나'와 센시니는 문학상 상금으로 생활을 영위한다. 나와 달리 이미 성공한 작가인 센시니도 생업적 직업인으로서 같은 작품을 제목만 바꾸어 각종 지방 문학상에 응모한다. 문학상을 제정하는 시(市)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바람직한 일인가. 실물경제만 탐하는 자본의 사회에서 기업체의 주최가 아닌, 순수 문학상을 제정하여 시상하는 관청이 있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센시니는 이들을 '문학을 믿는 선량한 사람들' '약간의 의무감에 찬 순수한 독자들'로 부른다. 우리 시에서도 이런 행정가들이 많았으면 한다.

볼라뇨가 그려낸 문학인들 중 나는 엔리케에게 가장 연민이 간다. 부끄럽게도 아직까지 학창시절 문예반 책상 수준인 '문학소녀'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 내가 투사되는 인물이다. 변변한 작품 하나 내지 못하면서 통장의 잔고를 털어 돈도 되지 않는 문예지를 만드는 엔리케의 그 마음은, 이름난 작가가 되지 못했다 하더라도 이미 사회에 기여한 바가 있다고 본다. 엔리케가 '여자들처럼 배 속에 넣어 보듬고 있다가 아이를 낳아보고 싶다'던 그 말은 역작을 내고 싶은 마음에 다름 아니었을 것이다.

센시니, 엔리케와 르프랭스의 삶 위로 '독서회'니 '합평회'니 하며 쫓아다니던 문예의 시절이 겹쳐진다. 이제는 낡고 퇴색되어 버린 '문청'이란 단어이지만, '남의 생각'을 사모하여 읽고 내 '진실된 아이'를 배태하고 싶은 문청들의 마음이야말로 문화적 사회의 원동력이 아닐까.

번역자 박세형은 서어서문학 및 국문학 전공자답게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자연스럽고 세밀하게 잘 살려냈다. '번역은 제2의 창작'이란 진리를 다시 확인케 하여주는 노작이다. 얼마 전 번역계의 대표주자였던 이윤기 선생이 유명을 달리했다. 그 큰 자리를 메꾸어갈, 소양과 능력을 갖춘 젊은 번역자들의 활동을 기대해 본다. 끊임없이 '문학과의 소통'을 갈망하는 영원한 문청들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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