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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선의 책으로 보는 세상 - 엄마를 부탁해

인간 심리 묘파하는 서정적 모성애

  • 웹출고시간2011.04.17 19:00:16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우리들의 학창시절에 있어 '고전'은 이른바 영미문학이 주를 이루었다. 제임스 조이스나 카프카, 헤세의 소설을 읽는 것이 교양의 척도로 여겨지던 때가 있었다. 사실 이러한 인식이 지금이라고 해서 크게 달라진 것은 아니다. 다만 20~30년 전에 비하여 세계 문학으로 파급되어 나가는 우리나라 문학의 위상이 점차 높아져가고 있음이 더없이 뿌듯하고 반갑다.

요즘 아마존닷컴의 30위권을 오르내리고 있다는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가 미국에서 화제라고 한다. 현지 언론의 호평은 물론 뉴욕타임스의 베스트셀러 순위에도 진입하는 등 연일 낭보가 들려오고 있다. '모성'이라는 인류보편적 주제에다 유려한 번역이 큰 영향을 주었겠지만, 무엇보다 인간 심리를 묘파하는 작가 특유의 서정적 화법의 진실성이 미국 독자들의 심금을 울렸을 것이라고 짐작해 본다.

소설의 형식을 따라 '잃어버린 엄마'를 찾아 나서본다.

▲1장, 아무도 모른다

'엄마는 식구들이 모인 왁자한 상태를 좋아했다.'

책 서두의 한 구절이다. 세상 모든 엄마들의 행복은 비슷한가 보다. 이제 일흔이 되신 우리 엄마도 그렇다. 별일 없이 우리 형제자매들이 그냥 우연히 친정에 모여도 엄마는 명절이나 된 것처럼 음식 준비를 하신다.

엄마는 자식들의 속내를 들여다 본 듯 알지만, 그 버릇이며 작은 습성까지도 훤히 꿰고 있지만, 과연 자식들은 엄마를 안다고 할 수 있을까. 식구들은 지하철역에서 잃어버린 엄마의 행방을 모를 뿐 아니라 엄마의 이상과 꿈을, 그의 가장 싱그러웠던 시절을, 심지어는 엄마가 현재 어떤 상태에 놓여 있었는지조차도 모른다.

엄마가 극심한 두통에 시달리고 있을 때도, 병마에 서서히 잠식되어가는 상황에서도 자식들은 그저 자신들의 고만고만한 일상에 바쁘다. 자식들에게 있어 엄마는 그저 삶의 배경에 소품처럼 놓여 있다. 살아 움직이는 생태적 존재가 아니라 붙박이 사물처럼, 늘 그 자리에서 비슷한 일을 반복하는 하나의 기기처럼.

인간의 삶을 통찰한다는 소설을 쓰는 큰딸조차도 엄마가 근황에 대해서 물어보면 그저 '일이 있어요.', '일 때문에 어디 가요' 하는 반응 정도만 보일 뿐, 그 일이란 것에 대해서 엄마와 진정성 있게 대화를 나누어 보려는 생각은 별반 하지 않는다.

큰딸이 엄마와 마음을 나누는 속 깊은 대화를 하는 것은 맹인들에게 자신의 소설로 만들어진 점자책을 기증받고 강연을 하고 나서이다. 앞 못보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소설 이야기를 들려준 후 집에 돌아와 그들과의 이야기를 엄마에게 해 주는데 '그래도 그들은 너의 책이라도 읽었구나'하는 엄마의 말로서 캄캄했던 엄마의 세계를 아프게 깨닫는다.

언어로 이야기를 구조화하는 작가의 삶을 살면서도 문자가 없었던 엄마의 세계에는 무심했던 큰딸도, 나머지 식구들도, 모두 엄마에 대해서는 아무도 몰랐던 것이다.

이름 : 박소녀

생년월일 : 1938년 7월 24일생(만 69세)

용모 : 흰머리가 많이 섞인 짧은 퍼머머리. 광대뼈 튀어나옴. 하 늘색 셔츠에 흰 재킷, 베이지색 주름치마를 입었음.

엄마를 찾기 위해 길거리에 붙인 전단지에 나와 있는 이 일반적 내용이 현재 자식들이 알고 있는 엄마의 전부다. 집을 떠나온 후 남아 있는 엄마에게 무슨 일이 있었고, 어떤 삶을 영위하고 있었는지는 모른다. 우리의 모든 자식들도 위와 같은 항목 외에 엄마에 대해 얼마나 더 많은 내용을 추가할 수 있을까.

▲2장, 미안하다, 형철아

맏이라는 존재는 부모와 특별한 관계다. 세상의 모든 맏이는 그 가운데의 둘째 셋째와는 다른, 좀 더 부모와 숙명적인 인연 같은 것이 느껴진다.

'니가 나한티 처음 해보게 한 것이 어디 이뿐이간· 너의 모든 게 나한티는 새세상인디. 너는 내게 뭐든 처음 해보게 했잖어. 배가 그리 부른 것도 처음이었구, 젖도 처음 물려봤구.'

실종된 엄마의 이 마음을 읽었을 때 친정의 맏이로서의 내 모습이 새삼스레 읽혀졌다. 부모님의 사랑은 늘 동생들에게 치우쳐 있다고 생각했는데 첫아기를 안고 설레며 벅차하는 젊은 시절 내 부모님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3장, 나, 왔네

아내를 얻는 순간, 남자들은 또 다른 엄마를 가지는 복록을 누리는 게 아닌가 싶다. 아내가 아니라 새로운 젊은 엄마를 갖게 되는 것은 아닌지. 요즘 젊은 부부들의 모습은 많이 달라졌을지 몰라도 적어도 우리 세대까지는 그런 양상을 띠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기에 옛 남자들은 아내가 있으면서 다른 여자를 취하곤 했다. 아내를 엄마로 여기지 않고서야 어떻게 아내가 살고 있는 집안에 버젓이 새 여자를 데려올 수가 있었을까. '엄마'라는 이름은 자식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었다. 남편에게도 아내는 엄마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세상의 수많은 남자들은 집을 떠났다가도 늙고 병들어 고향처럼 아내에게 기어들곤 했던 것이다.

엄마처럼 편안하고 덤덤한 존재……. 어느 영화의 대사처럼 '가족끼리 어떻게 잠자리를 할 수 있느냐'는 의미 속에는 결혼한 아내의 위치가 확연히 드러난다.

소설 속 아버지도 아내로부터 받기만 하는 존재였다. 타인의 일상적 의식(衣食)을 평생토록 감당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참 무서운 노동이다. 아내들은 소리 한번 지르지 않고 그 노고를 치러내었다. 자신은 아프면서도 고단하다는 남편의 온갖 수발을 다 들었다. 그러면서도 어디 아프다 소리 한번 제대로 하지 않았다. 비명 한번 지르지 않고 그렇게 스러지듯 엄마들은, 아내들은, 사라져 갔다.

그러기에 '나 왔다'고 해도 이미 늦어버린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4장 또 다른 여인

아, 엄마가 좀 더 행복한 모습으로 남아 있었더라면 좋았을텐데…. 햇빛 따스한 시골집 마루이거나, 아니면 엄마가 즐겨 일하곤 하던 헛간 평상 위에서 평소처럼 마늘이라도 까고 있도록 집에 다시 앉혀 놓았으면 한결 마음이 가벼웠을텐데…….

결국 작가를 원망할 수밖에 없었다. 세상 모든 자식들에게 벌을 내리듯 끝내 엄마를 놓치고 말다니……. 읽는 이의 가슴을 이렇게도 후비듯 아프게 파헤쳐 놓는 것은, 우리들의 엄마를 잃기 전에 더 깊이 생각하고, 더 많이 함께 하며, 책에서의 그 아픔을 봉합하라는 뜻일까.

엄마는 새처럼 자유롭게 날아갔다. 새가 되어서야 마음 한 켠의 그 남자도 한쪽 날개에 싣고 알 수 없는 세계로 날아갔다. 엄마의 엄마가 아직 살아 있던 그 먼 세계로, 그 안온한 세계를 찾아 떠난 것일까. 그 세계에서는 파란 슬리퍼도 가뿐히 벗어던지고 맨발의 깊은 상처도 치유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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