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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선의 책으로 보는 세상 - 마당을 나온 암탉

지극한 모성 그린 양계장 나온 암탉 '잎싹' 이야기
밀리언셀러 기록…올 여름 애니메이션 영화 개봉

  • 웹출고시간2011.05.15 18:19:23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지난번에 이어 한 번 더 '모성'에 대해 말하려 합니다. 어버이날이 지난 지 아직 열흘이 채 안 되었으니 어머니의 모습을 한 번 더 들여다보아도 좋을 듯 싶습니다.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가 엄마를 잃어버린 자식의 입장에서 뒤돌아보는 '쓸쓸한 회한의 모성'이었다면, 황선미의 '마당을 나온 암탉'은 어미로서 간절히 '꿈꾸는 사랑과 희생의 모성'을 품고 있습니다. 둘 다 밀리언셀러들이라 이 지면을 빌어 또 한 번 언급한다는 것이 식상한 느낌조차 있지요. 하지만 '마당을 나온 암탉'이 동화라는 이유로 아직 읽어보지 않은 어른이 있다면 반드시 오월이 가기 전에 일독하시길 권해 드립니다. 그리고 올 여름 애니메이션으로 개봉된다니 독서 후 자녀와 함께 관람하시면 좋을 것 같네요.

마당을 나온 암탉

황선미 著 사계절 출판사

양계장 문 틈 사이로 보이는 아카시아 푸른 잎새를 보며 바깥 세상을 꿈꾸고, 자신이 낳은 알을 가슴에 품어 보는 소망을 가진 암탉 잎싹! 그는 향기로운 꽃을 피워내는 아카시아 잎사귀가 부러워서 '잎싹'이라는 이름을 저 혼자 지어 가졌지요. 잎싹은 정말 영민한 암탉이었습니다. 나무 잎사귀 하나에서도 그가 그토록 갈구하던 모성의 아름다움을 보았으니까요. 사람들은 유록빛 잎새의 싱그러움과 그 그늘에 앉아 쉬는 것만을 즐기지요. 암탉 잎싹처럼 그 나뭇잎을, 온 생명을 토해내는 산고의 모체로서 보아주는 이가 그 중에 몇이나 있을까요.

"잎사귀는 꽃의 어머니야. 숨쉬고, 비바람을 견디고, 햇빛을 간직했다가 눈부시게 하얀 꽃을 키워내지. 아마 잎사귀가 아니면 나무는 못 살 거야. 잎사귀는 정말 훌륭하지."

유일한 친구였던 청둥오리에게 자신이 이름 지은 내력을 이렇게 설명했던 잎싹은 그 눈부신 나뭇잎의 비밀을 아는 암탉이었습니다. 비록 양계장에서 기계적으로 사육되는 수천 마리 암탉 중 하나에 불과했지만, 문틈으로 보이는 마당과 아카시아 푸른 잎에 가슴 설레는 닭은 오직 그 하나뿐이었지요. 그 설렘은 자유에 대한 무작정의 동경이 아니었습니다. 알을 품겠다는 모성을 가진 암탉으로서의 당연하고도 간절한 소망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무릇 세상 모든 암컷들은 본능적인 모성이 있으니 양계장의 다른 암탉들도 모성 본능은 있었겠지요. 그러나 그들은 꿈도 소망도 없이 사육되는 무기력한 존재로서 어미로서의 자각 의식은 전혀 없었지요. 그러나 잎싹은 달랐습니다. 만져 보지도 못하고 속절없이 철망 밑으로 굴러 떨어지는 알을 안타까이 바라보면서 언젠가부터 부화에의 희망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가슴으로 알을 보듬어 그 체온을 느끼고, 어미의 기운을 받아 태어난 병아리와 눈빛을 교감하고픈 따스하고 정겨운 소망을 가졌던 것입니다.

오직 그 소망에 골몰하여 먹는 것도 잊은 잎싹은 너무도 허약해진 탓에 폐계 취급을 받아 드디어 양계장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토록 원했던 바깥 세상에서 처음으로 맞닥뜨린 건 죽음의 구덩이었습니다. 처음 내던져진 곳이 죽거나 병든 폐계를 버리는 죽음의 구덩이라는 것은 앞으로도 잎싹의 삶이 결코 순탄치 않으리라는 것을 암시합니다. 그곳에서 잎싹은 자신의 삶과 죽음의 축이 되는 두 인물을 만납니다. 청둥오리와 족제비가 바로 그들이지요.

청둥오리의 도움으로 죽음의 구덩이에서 간신히 족제비의 손길을 피한 잎싹은 안온한 보금자리의 상징인 마당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나 마당 식구들에게 이방인으로 언제나 따돌려지던 청둥오리가 데려온 잎싹 역시 그들에게 불청객 취급을 당합니다. 붉은 볏을 권위의 상징처럼 치키고 모든 마당 식구들을 우렁찬 목소리로 제압하는 수탉, 다소 뻔뻔스럽고 신경질적인 암탉, 집단이기적인 오리들, 늙고 노회한 개, 이들 중 어느 누구도 잎싹을 환영하지 않습니다. 자신들의 자리가 불편해지고 먹이만 줄어들 것을 염려하는 그들은 자신들의 안위 외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다만 나그네 신세로 그들의 가장자리에 겨우 끼어 살던 청둥오리만이 잎싹의 친구가 되어 준 것입니다.

잎싹은 아늑하고 따뜻한 마당의 헛간이, 그 포근한 짚 덤불이, 자신의 보금자리가 될 수 없다는 걸 깨닫습니다. 겨우 하룻밤을 헛간에서 보낸 잎싹은 마당을 나옵니다. 언제 족제비가 덮칠지,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는 야산과 들판으로 잎싹의 떠돌이 여정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곳에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유가 있었습니다. 힘들지만 노력하면 얼마든지 먹이도 얻을 수 있었지요.

이리저리 잠자리를 구하던 어느 날, 잎싹은 찔레 덤불 속에서 크고 하얀 알을 발견했습니다. 그 알을 품으며 잎싹은 드디어 어미로서의 소망을 이루게 됩니다. 잎싹이 알을 품는 기간 동안, 어떻게 알았는지 청둥오리는 잎싹에게 먹이를 구해다주고, 밤잠도 잊은 채 잎싹을 지킵니다. 그동안 뽀얀 오리하고만 친해진 청둥오리에게 소외감을 느끼던 잎싹은 그저 이런 청둥오리에게 감격할 뿐이었지요. 알이 부화되기 전날 밤 청둥오리는 저수지로 가라는 유언을 남기고 족제비에게 잡혀 갑니다. 청둥오리가 물려간 쪽을 헤매다가 망연자실한 상태로 돌아온 잎싹에게 드디어 꿈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토록 원하던 작은 생명체가 알껍질을 깨치고 눈을 빛내며 서 있는 것이었습니다.

아기를 키우며, 점점 청둥오리를 닮아가는 아기를 바라보며, 잎싹은 왜 청둥오리가 그렇게 죽어갔는지, 스스로 족제비의 제물이 되다시피 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청둥오리 또한 잎싹 못지 않은 부성을 가진 아비였던 것이지요.

비록 자신의 친자식은 아니었지만 깃털을 뽑아 헤쳐가며 오랫동안 품은 아기, 자신을 친엄마라 믿고 있는 아기, 더구나 친구였던 청둥오리의 아기인 '초록머리'는 잎싹에게 목숨보다 소중한 자식이었습니다.

아기를 위해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된 마당을 어쩔 수 없이 다시 찾아가나 역시 쫓겨난 잎싹은 족제비로부터 초록머리를 지키기 위해 매일 밤 잠자리를 바꾸는 고달픈 떠돌이의 생활을 계속합니다. 그런 와중에도 잎싹은 자신의 날갯죽지 밑에 초록머리를 보듬을 수 있는 나날들이 행복하기만 합니다.

가을이 깊어가던 어느 날, 초록머리는 갈대밭에 날아온 자신들의 무리인 야생 청둥오리 떼에게 날아가 합류합니다. 잎싹은 초록머리를 더 이상 자신의 품에 거두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것을 압니다. 예전처럼 몸을 같이 부비진 못해도 유유히 헤엄치거나, 힘차게 날아오르는 초록머리를 언제나 눈으로 좇으며 잎싹은 대견해 합니다. 초록머리가 무리를 지키는 늠름한 파수꾼이 되었을 때, 그리고 무리에서 가장 눈에 띄는 그 파수꾼이 족제비의 첫 번째 공격 대상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잎싹은 마지막 타협점으로 자기 삶을 내놓을 준비를 합니다. 족제비 또한 역시 배곯은 새끼를 가진 한 어미였다는 것을 안 후 잎싹은 별다른 저항 없이 조용히 목숨을 버립니다. 거친 들판의 삶을 살아온 잎싹으로서는 마지막 순간이 '오히려 뼈마디가 시원해지는' 느낌이었지요. 초록머리를 위해, 족제비 새끼를 위해, 죽음을 택한 잎싹은 크고 아름다운 날개로 가붓하게 하늘로 떠오릅니다.

누구에게 안긴 것보다 오히려 내가 품에 보듬어 안았을 때 더 포근하고 따뜻한 것은 왜일까요. 나는 그토록 알을 품고 싶어 했던 잎싹의 소망을 이해합니다. 내가 안음으로써 오히려 내가 더욱 부드럽고 환한 물결에 휩싸인 느낌……. 우리는 그 위대한 사랑의 느낌을 모성이라고 부르지요. 모성의 힘으로, 그 절실한 소망으로, 잎싹은 갇힌 곳에서 걸어 나왔고, 초록머리를 낳았으며, 마침내 큰 날개를 얻어 온 세상을 품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족속이 달라도 중요한 건 서로를 이해하는 것! 그게 바로 사랑이야."

잎싹이 꿈꾸었던 모성이야말로 갈등과 대립의 세계를 구원하는, 가장 크고 위대한 사랑의 힘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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