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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은

충북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이제 그렇게 지나가는가 보다. 언제부턴가 불확실한 미래를 즐기는 것을 배우는가 싶더니, 이제는 언제부턴가 나도 모르게 체념하는 것을 배웠는가 보다. 세월이 지나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이젠 그것을 즐기기까지 하는 것을 보니 나도 벌써 중년인가 보다. 그렇다. 하지만 나는 분명히 젊고 활기차다.

나는 바람 불고 비오는 토요일이나 일요일, 적막하고 고요한 내 연구실에서 글을 쓰는 것을 무엇보다 좋아하고 즐긴다. 물론 주말에 학교에 나와서 글을 써야하는 비상사태를 만들지 않기 위해 나름 최선을 다하고는 있지만, 그래도 불가피하게 나와야 하는 일이 잦을 뿐이다. 그 또한 내 스타일인 것을 탓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다행히도 저녁 늦게 까지나 새벽까지 논문이나 학회 일 등으로 인해 학교에 남아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제 시간에 퇴근해서 가족들과 시간을 함께 하거나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과 놀기 위해 직장 일은 직장에서 해결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결과이다. 하지만 주말마저 온전히 내 시간으로 만들기란 것은 참으로 쉽지 않은 것 같다.

엊그제 토요일 아침, 두 달여 전에 예정되어 있던 특강을 가려는데 전화가 왔다. 다섯째 작은아버지께서 말기 암으로 임종하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뵙고 인사드릴 분들에게 오시도록 하라는 담당 의사선생님의 말씀이 있었다는 사촌동생의 전화였다. 3대 독자이셨던 할아버지께서 자손을 귀하게 여기셔서 9남매를 낳으셨고, 그 옛날 낙후된 의료시설이나 전란에도 불구하고 한 분도 잃지 않으시고 잘 키우셨다. 그 덕일까. 지금은 할아버지의 직계 손과 외손들이 110여 명에 이른다. 그 중에서도 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삼촌, 고모들로부터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랐으니, 복이 많은 것임은 틀림없다. 조상님과 친척들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지금도 매달 제사나 차례, 시제, 아니면 집안 어른들 생신 등으로 일상이 바쁘게 돌아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누구나 만나는 사람들 중에 특별히 좋아하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나 역시도 많은 집안 식구들 중에서 다섯째 작은아버지를 특히 좋아했다. 잘해주신 덕분도 있겠지만, 말도 별로 없으시면서 쏟아주시는 애정이 각별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아이들이 태어난 후에는 아이들에 대해서도 오실 때마다 아이들을 안으시고는 장난감과 과자는 물론이고 땅에 내려놓지 않을 정도로 특별히 예뻐하셨다. 우리 식구들 역시 다섯째 작은아버지네 사촌 동생들과 조카들과 각별하게 잘 지내고 있다. 조카인 나와 47년의 세월을 그렇게 잘 지내시던 분이 벌써 임종을 맞게 된 것이다.

엊그제 오후엔 기어코 작은어머니의 눈물을 보고 말았다. 그렇게 잘 어울리시고 예쁘게 지내시던 두 분의 영원한 헤어짐을 앞에 두고는, 병실 문 앞에서 울고 계셨다. 혹시라도 작은아버지께서 들으실까 봐 숨죽여 울고 계셨다. 불과 한 달 전 병원에 오실 때만 해도 다시는 못 가실 줄은 꿈에도 모르셨던 작은아버지께서 자꾸만 작은어머니와 두 분이 사시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씀에, 다른 말씀은 못하시고 빨리 나아서 집에 같이 가자는 약속을 한 것이 못내 미안하고 안타까우셨던 것이다. 아, 어쩌랴.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 밖으로 나왔다. 갓 시집오셨을 때 코 흘리고 다녔던 도련님, 벌써 반백년 이상의 세월을 함께 지냈고, 중매까지 하셔서 결혼도 시켜주신 형수님인 어머니께선 별다른 말씀이 없으셨다. 바람 부는 병원 앞에 가득한 은행나무 낙엽만을 바라보았다. 이젠 정말 중년이 된 것 같다. 사랑하는 작은아버지와의 헤어짐을 체념하고 받아들이니 말이다. 그래도 아직은 젊은 것 같다. 글 쓰는 내내 눈물이 나는 것을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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