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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은

충북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얼떨결에 산타클로스가 되었다. 그것도 5월의 화창한 봄날에. 다소 당황스럽기까지 했지만 분명 기쁘고 반가운 일이었기에 만사 제치고 그 역할을 했다.

돌이켜보면 우리나라에는 하나도 없는 재난피해자를 돕기 위한 자원봉사단체를 만들기로 마음먹었던 것은 지난 2006년 여름이었다. 벌써 만 6년의 시간이 흘렀다.

물론 지금도 대규모 자연재난이 발생하면 수많은 기관, 단체, 봉사자들이 재난피해지역으로 모여 도움의 손길을 건네주고 있다. 재난 발생 직후에는 각종 중장비와 인력을 동원하여 온 군인이나 인명 구조와 식수공급 등을 해준 소방, 질서유지와 복구 작업에 동참한 경찰, 오로지 이재민을 돕겠다는 아름다운 마음 하나로 말없이 전국 경향각지에서 모여든 자원봉사자들이 재난피해지역에서 땀방울을 흘리면서 도와준다. 또 해당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은 거의 대부분이 현업을 제쳐두고 이재민을 돕기에 여념이 없는 것도 당연지사다. 언론에서는 연일 안타까운 인명 피해와 미담을 쏟아내기에도 바쁠 지경이다.

이제 재난이 발생하고 나서 3개월, 아니 짧으면 1개월이 지난 후, 재난 피해 지역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마치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한 물음만이 남아있게 된다. 희망을 남겨두고 떠난 자원봉사자들의 흔적을 기억으로만 더듬어 볼 수 있을 뿐이다. 그리도 분주했고 무엇이 문제인지를 따져볼 겨를도 없었던 재난 발생 초기와는 달리 세상은 예전과 다름없이 평온하고 바삐 돌아갈 뿐이다. 재난피해자 입장에서는 억울하기 짝이 없다. 법 잘 지키고, 남에게 피해 안주고, 열심히 농사짓거나 생업에 종사하면서 잘 살아왔는데. 옆에 있던 가족은 재난으로 인해 죽거나 다쳤고, 농작물 피해는 어디서 보상받을 길도 없고, 논과 밭은 흙으로 덮여있고, 집은 반파된 상태이다. 그리고 내가 당한 억울한 피해는 불과 3개월도 안돼서 주변으로부터 잊혀졌던 것이다. 고단한 일상이 반복될 뿐이다. 누구도 지난 번 피해로 상심이 크시겠다며 위로의 말을 건네지 않는다. 그냥 속으로 삭일뿐이다.

재난피해자들과의 심층면접을 통해 알게 된 사실들이다. 죽는 것이 아프고 서러운 이유는 몸이 고통스럽거나 아파서라기보다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잊혀진다는 것 아니겠는가. 사랑하는 자식, 손자, 친구, 이웃으로부터 점점 잊혀지는 것이 두려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재난피해자도 마찬가지다. 나는 아무 죄지은 것 없이 억울하게 피해를 당했는데, 누구에겐가 하소연 하고 싶어도 할 데가 없는데, 내가 당한 그 아픈 피해가 이미 세상으로부터 잊혀진 것이 억울하고 슬플 뿐인 것이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 우리는 당신이 당한 억울한 피해를 잊지 않고 있고, 누군가는 여러분의 안타깝고 슬픈 상황을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을 재난피해자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그러하기에 재난이 발생한 직후가 아니라 다른 자원봉사자들이 모두 철수하고 난 6개월 이후부터 3년이 지난 이후에 재난피해지역으로 봉사를 가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물론 불가피하게 구원의 손길을 요청하는 장애우 가정이나 취약계층 가정의 경우에는 재난 발생 직후에도 봉사활동을 가기도 한다.

9명의 지인들과 함께 시작한 조그만 단체가 이제는 제법 규모를 갖추었다. 취지에 동참하는 가까운 분들이 동참하여 이제는 운영이사만 해도 많은 분들이 함께 하고 있다. 그런데 같은 대학에 있는 운영이사 한 분이 외부회의에 참석했다가 봉사단체 명함을 건넸다고 한다. 그리고 그 명함을 건네받은 사람들 중의 한 분이 지난 5월 4일 이재민 어린이에게 전해달라는 메시지와 함께 과자상자를 소포로 보내왔다. 마침 어린이 날인 다음 날, 만사 제치고 과자 상자를 들고 정말로 경제적으로 어렵고 힘든 상황에 처해있는 5살 아들을 데리고 살고 있는 조선족 부부 집으로 갔지만 아이는 친척집에 놀러가고 없었다. 명함을 건넨 이사님, 명함을 받고는 과자를 보내준 따뜻한 마음씨의 제과회사 실장님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그리고 두 분 덕분에 졸지에 5월의 산타클로스가 되었다. 아, 집에 돌아온 5살 어린이가 뜻밖의 과자상자에 얼마나 행복해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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