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자

이재은

충북대 행정학과 교수

가난 구제는 나라도 못한다· 남의 가난한 살림을 도와주기란 끝이 없는 일이어서, 개인은 물론 나라의 힘으로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가난은 어찌 보면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이자 가정의 문제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 왔다. 물론 어느 정도 타당한 부분도 있으리라. 하지만 잠시만 생각을 바꿔 주변을 돌아보면, 가난은 딱히 개인이나 가정의 문제로만 돌릴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예를 들면, 송아지 한 마리에 만원한다는 신문과 방송 보도에는 탄식이 흘러나올 뿐이다. 또 가계 빚이 900조원에 이르러 국가가 부채 디플레의 덫에 걸릴 수도 있다는 보도는 또 누구에게 책임을 돌려야 하나 고민하게 만든다. 이 모든 일들이 국민 개인과 가정의 책임인가. 국민들이 빚내서 과소비하고 지출을 많이 해서 그렇게 된 것인가. 수많은 국민들은 길고 긴 세월동안 국가 경제발전을 위해서 희생을 감내하라는 나라님 말씀에 임금 한 푼 올려달라는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다가 노동조합이라도 만들면 빨갱이로 몰려 곤욕을 치러온 세월이기도 했다.

없는 돈에 자식이라도 제대로 된 직장 구하게 해 주겠다는 일념으로 등록금 만들어 대학을 졸업하게 했더니 비정규직 제도로 인해 기 한번 제대로 못 피면서 정규직의 절반도 안 되는 월급으로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 그나마 어린 초등학교, 중학교 자식에게 따뜻한 점심 한 끼라도 눈치 안보며 먹을 수 있게 해주고 싶었는데, 등골 휘는 대학 등록금 깎아주었으면 했는데, 그나마도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포퓰리즘이니 뭐니 하면서 안 된다고 아우성 난리를 치는 통에 속만 태우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가 어마어마한 돈을 벌어들였다. 그런데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의 돈지갑은 더 얇아지고 있다. 자유시장경제주의자들이 그토록 주장하던 트리클다운(tricle down) 효과나 스필오버(spill over) 효과가 왜 우리에게는 안 미치는 것일까. 한미FTA 효과도 분명히 클 텐데 그것은 어떨까." 페이스 북에 올라온 글이다. 십분 공감한다.

인간 생명에 대한 존중과 인간의 존엄성이 구현되는 나라,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먹고 자고 살 수 있는 나라. 그 나라야 말로 우리가 꿈꾸는 사람 사는 세상 아니겠는가. 국가경쟁력 제고도 좋고, 자유민주주의 이념도 좋다. 또 대기업들의 매출액 증가도 좋다. 삼성전자가 지난 해 사상 최대의 매출액 164조 7000억 원과 연간 영업이익 16조 1500억 원을 기록한 것도 좋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는 나와 내 가족이 경제적으로 위급한 순간에 최소한 눈치 보지 않고 먹고 살 걱정이 없는 세상에서 살기 위해 대한민국이라는 울타리를 만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소중한 세상에서 자신의 후손과 가족이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우리의 할아버지, 아버지들이 생명을 바치면서까지 대한민국을 지켜냈던 것이다.

지금 이 땅에서 생활고를 겪으면서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아버지, 어머니들은 젊은 시절 전·후방 각지에서 병역의 의무를 수행했고, 산업의 역군으로 살아 왔으며, 남에게 폐 안 끼치면서 부정한 돈은 주지도 받지도 않고 성실하게 자녀들을 가르치면서 살고 있다. 적어도 이 사회에서 지도자라고 어깨에 힘깨나 주면서 행세하는 그 어떤 사람들보다 더 떳떳하고 당당하게 살아갈 이유와 권리가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허구한 날 어찌저찌 본인과 자식의 군대 면제 사유를 늘어놓아야만 하는 지도층 인사들보다, 또 그러면서도 복지 포퓰리즘을 경계해야 한다고 목소리 높이거나 부화뇌동하는 인사들보다, 진정 국가의 이익인지 자신을 위한 이익인지 분간도 못하면서 뛰어다니는 인사들보다 훨씬 더 소중한 국민인 것이다.

2012년 새해에는 적어도 이런 힘없고 못사는 국민들이 정치를 걱정하게 하지 말고, 정치가 국민을 걱정해주는 그런 '사람 사는 세상' 한 번 만들어 보자. 힘들고 소외받는 국민들이 밥걱정 하지 않는 세상, 그런 세상 말이다. 결국, 가난 구제는 나라밖에 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