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양지상'의 대화에도 등장'나는 더웁다. 나뭇잎들이 축 늘어져서 허덕허덕하도록 더웁다. 이렇게 더우니 시냇물인들 서늘한 소리를 내어 보는 재간도 없으리라. 나는 그 물가에 앉는다. 앉아서 자- 무슨 제목으로 나는 사색해야 할 것인가 생각해 본다. 그러나 물론 아무런 제목도 떠오르지는 않는다.'-자칭 박제가 되어버린 이상(李箱·1910∼1937)이 사색을 위해 물가를 찾은 모습이다. 조선시대 지식인들도 사색을 위해 물가를 자주 찾았다. 이때 사색의 공간에서 만나는 어류는 생동감 그 자체였다. 이상은 '권태'의 또 다른 곳에서 '무수한 오점이 방향을 정돈해 가면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생물임에 틀림없다'라고 표현했다.바로 민물어류 '피라미'다. 다산 정약용은 한시 '잡평'(雜評)을 이렇게 읊었다. '팔곡이라 맑은 못 넓게도 열렸건만(八谷淸淵漠漠開) / 이따금 구름 그림자 홀로 오르내리네(時將雲影獨沿O) / 참 근원 지척이라 맑고 밝음 유별나니(眞源咫尺澄明別) / 오가는 피라미떼 앉아서도 보이누나(坐見O魚自往來).'-조선후기 문신 김창협(金昌協)도 비슷한 분위기의 시를 남겼다. '옛 벼랑 고운 꽃 흐드러지게 피었고(古壁幽花重疊明) / 구름 해 잠긴…
◇1983년 어느 날 충북의 최남단에 위치한 영동은 3도(三道)의 접경지대다. 충남 금산군, 경북 금릉군(1995년 김천시로 통합), 전북 무주군이 접경을 이루고 있다. 게다가 경부선과 고속도로의 중간 지점이 영동에 위치하니 지역적으로 보면 한반도의 심장부가 되는 셈이다.영동은 옥천과 마찬가지로 대전에 생활권을 두고 있다. 생필품의 대부분이 대전에서 반입되고 다시 용산, 황간, 학산, 양산 등의 면(面) 지역으로 팔려나간다.대도시의 생필품과 교역되는 물목은 영동의 특산물인 감, 호두, 밤, 사과, 표고버섯 등이다. 그 중에서도 곶감과 표고는 영동 특산물의 대명사 역할을 한다. 청산과 더불어 영동은 감곶이다. 집집마다 산골마다 감나무 없는 집이 없고, 가로수마저 감나무 일색이다. 군청에 이르는 3㎞ 간선도로에 10여m 간격으로 감나무가 촘촘히 박혀 있다.지난 1970년부터 플라타너스 나무 대신 감나무를 가로수로 심기 시작하더니 10여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는 가을이 되면 탐스러운 열매를 어김없이 맺고 있다. 중심가에서 한발치만 벗어나면 가가호호 옥상 위에 감을 말리기 위한 감타래(시렁)가 동그마니 올라서 있다.수확기가 되면 감은 껍질은 벗는다. 아낙들의 손에 의
율곡 이이(1536~1584)의 '10만 양병론'은 임진왜란을 대비한 것이 아니라 국내 변란을 예방하기 위한 군사 전략이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지난 28일 한국행정학회와 국무조정실이 고려대 세종캠퍼스에서 '창조적 지방행정과 국가 경쟁력'을 주제로 개최한 '2013 행정학 공동 학술대회'에서 괴산군 중원대 하종필 초빙교수는 '율곡의 10만 양병론에 관한 소고'란 논문 발표를 통해 이같이주장했다. 하 교수는 "기존 학자의 주장을 검토한 결과 율곡의 10만 양병론을 임진왜란을 대비하기 위한 것과 북쪽 여진족에 대항하기 위한 것으로 보는데 사실은 국내 변란 예방 차원의 군사전략이었다"고 주장했다. 하 교수는 1573년(선조 6) 12월 서울에서 흰 무지개가 해를 꿰뚫어 요사스러운 기운이 햇빛을 압박했기에 선조가 간사한 신하들에 의해 국정이 농단 당할 것을 우려해 신하들의 의견을 구했고, 율곡이 1574년 재변의 원인을 없애기 위해 '만언봉사(萬言封事)'를 저술했다는 것을 그 근거로 들었다. 율곡은 1583년(선조 16) 4월 경연 석상에서도 '10년이 못 가서 땅이 무너지는 화가 있을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10만 양병론을 주장했다고 하 교수는 밝혔다. 하 교수는…
35. F기관과 말레이의 하리마오 ■ 하리마오란 말이 유행한 까닭 일본제국의 침략 수법은 비슷했다. 청일전쟁으로 조선을 청에서 떼어낸 다음 보호국으로 만들고 국권을 탈취해서 '무단통치'로 억눌렀다. 타이완은 청일전쟁 노획품으로 청에서 할양받아 '엿과 채찍(飴와 鞭)'으로 1905년부터 1945년까지 40년 간 다스렸다. 중국 동북지역은 관동군이 침략해서 중국에서 독립시킨다며 만주국을 세운 뒤 '모략과 폭력'으로 1932년부터 1945년까지 13년 간 지배를 했다. 동남아에서도 똑같은 수법을 썼다. 일본군의 말레이반도 공격은 진주만을 기습한 6시간 후인 1941년 12월 8일 새벽 1시 30분(한국시간)에 전격 개시하였다. 선전포고 없는 기습이었다. 이것을 일본에서 자존자위(自存自衛)를 위한 전쟁이면서 식민지해방을 위한 전쟁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동남아 여러 나라를 침공하고 펼쳤던 모략전쟁을 구미열강의 식민지를 분쇄하기 위한 전쟁이라고 호도하고 있다. 이런 거짓말을 반복하게 되면 듣는 사람이 세뇌될 수도 있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도 스스로 자기 말에 최면이 되기가 쉽다. 그런데 그것이 일본에서 이루어지는 일본사교육이라면 심각하지 않을 수 없다.…
괴산지역의 올갱이국은 특유의 쌉싸레한 맛 뿐만 아니라 건강식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특히 올갱이국을 가열할 때 우러나는 파란색의 액즙은 간(肝) 건강에 좋은 것으로 소문이 나 있다. 영양학계에서도 어느 정도 공감, "아미노산을 많이 함유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나아가 영양학계는 올갱이국에는 부추 또는 아욱이 궁합이 맞는 식재료라고 말하고 있다.올갱이는 음양상 찬 성질을 지니고 있는 반면 부추와 아욱은 따스한 성질을 지니기 때문에 둘을 함께 조리할 경우 궁합을 이룬게 된다고 설명하고 있다.괴산 올갱이국과 관련해 또 하나 눈여겨 볼만한 것은 '올갱이'를 표현하는 언어가 무척 다양하게 발달해 있다는 점이다. '올갱이'류의 표현은 충청도나 강원도 일부 지역의 사투리로, 표준말은 '다슬기'다. 그러나 변종언어인 '올갱이'는 괴산지역에서 그 생김새와 모양에 따라 또 한번 세분돼 불려지고 있다.괴산지역에서 올갱이를 잡는 사람들은 껍데기에 오돌토돌한 작은 융기가 있는 것은 '까끌이', 껍데기가 다소 맨질맨질한 것은 '뺀질이'. 그 중간의 것은 '반까끌이', 약간 둥그스럼한 것은 '사발이'라고 표현한다. 이중 '뺀질이'는 물 흐름이 빠른 계곡에서,
독일 구텐베르크박물관장을 역임한 에바 하네부트 벤츠 박사가 평생 수집한 18∼19세기 유럽의 인쇄출판문화 관련 일러스트(삽화)자료 100여 점을 청주고인쇄박물관에 기증했다.벤츠 박사는 "구텐베르크박물관장을 하는 동안 고인쇄박물관뿐만 아니라, 청주시에서 많은 지원과 협력이 있어 상호 정보교류와 교환 전시회가 가능했었다"며 "그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개인 소장품이었던 도서를 기증해 고인쇄박물관의 전시물 확장에 작은 보탬이 되고자 한다"고 기증 동기를 밝혔다.벤츠 박사는 현재 진행하는 북 히스토리 집필을 마무리하면 추가로 소장 자료를 고인쇄박물관에 기증하기로 약속했다.귀중한 유럽의 고판본 자료를 기증한 벤츠 박사는 1987년부터 2010년까지 24년 동안 구텐베르크박물관장을 역임했으며, 재임 기간 동서 인쇄문화 교류 증진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인쇄박물관과는 2000년 자매결연한 이후 구텐베르크박물관의 세계적 위상과 국제 네트워크를 활용한 특별전, 학술회의 등 매년 활발한 교류협력을 통해 고인쇄박물관의 국제적 위상을 높여 줬다.특히 2001년 '직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와 2004년 고인쇄박물관이 유럽인쇄박물관협의회에 동양 최초로 가입할 수 있도록 가교
속보= 6.25 미군 노획 편지 중 받는이(수취인)의 주소가 '충북'으로 돼 있으면서 현재도 생존해 있는 인물이 확인됐다. 본보는 이번 보도건을 마무리 짓는 차원에서 이미 기사화한(6월 10일, 14일, 19일자) 발신인 뿐만 아니라, 수취인 12통의 편지 주인공도 탐문·추적했다. 방법은 전과 같이 주민센터를 통해 지인을 연결하는 수법을 사용했다. 미군이 평양에서 노획한 편지 중 '충북'이 수취인 주소인 인물은 최수철(청원 강서), 이순섭(〃), 이순옥(〃), 전종옥(〃), 리덕기(음성 맹동), 김성래(진천 당부), 김성해(〃), 원영히(단양 보안대), 황호연(청원 강서), 최석영(청원 오창), 문관분(음성 대소), 이원상(충주) 등이다.그 결과, 12명의 한 명인 '이순옥' 할머니가 당시 수취인 주소지(충북 청원군 강서면 현암리)에서 가까운 세종특별시 조치원읍 침산리에 생존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금년 76세. 이순옥 할머지의 본래 이름은 '이순교'이나, 이는 발신자 전종대(전남 여주 거주) 옹이 1950년 9월 평양에서 편지를 쓸 때 나이 차이(10살)가 많이 나 이름 기억에 착오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나머지 수취인 가운데 △최수철, 전종옥
◇1983년 어느 날 경부(京釜) 국도상의 중간 지점에 자리 잡은 옥천(沃川). 이 곳에 과객의 왕래가 빈번했던 것은 오늘뿐만 아니라 과거에도 마찬가지였다. 영남 지방에서 추풍령을 넘어 한양 길을 재촉하는 과객이나 보부상, 소몰이꾼들은 이원면 개금벌과 옥천 삼거리를 지나기 마련이었다.삼거리의 찹쌀 인절미는 오랜 여행길에 쌓인 노독(路毒)을 풀어주는 별미로 개금벌의 청포묵과 함께 고소한 그 맛이 전국적으로 유명했다고 한다.나그네의 정취가 서렸던 삼거리(현재 옥천읍 삼양리)에는 금산, 대전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길목을 지키고 있을 뿐 떡장수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치닫는 차량의 행렬과 철마의 경적이 요란을 떨고 있는 게 변모된 삼거리의 모습이다.현재 옥천시장은 삼양리에 개설되고 있는데, 그 이전에는 구읍(舊邑)에 섰었다. 이 일대를 구읍이라 부르는 것은 경부선이 개통되기 전 옥천읍의 소재지였기 때문이다.벌판뿐이던 삼양리 일대는 철도가 개설되면서부터 발전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1937년에는 시장을 이곳으로 옮겨오게 됐다. 3만명의 옥천읍민 가운데 2만5천명이 신(新) 시장인 삼양리 일대에 거주하고 있으니 명실공이 옥천의 노른자위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시내버스
속보= 충주 중앙탑(공식명칭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국보 제 6호)이 일제가 엉터리로 해체·조립한지 98년만에 본래 모습을 되찾을 수 있게 됐다. 앞서 본보는 해체 직전인 1916년에 작성된 중앙탑 원형 실측도가 국가기록원에 존재하는 것을 확인, 지난 < 2012년 8월 13일자> 기사에서 이를 바탕으로 할 경우 본래 모습을 되찾을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19일 지역 문화재계에 따르면 충주시는 총 30억원의 예산을 들여 오는 2015년까지 중앙탑을 본래 모습대로 복원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첫 단계 사업으로 중앙탑을 정밀측량, 이를 3D(입체) 스캔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업체 선정작업에 들어갔다. 시 관계자는 "3D스캔사업의 입찰금액은 6천9백만원으로, 도·시비외에 문화재청 보조금도 포함돼 있다"며 "도내 기업 중에는 응찰자가 없어 조만간 입찰 범위를 전국으로 전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충청대학 장준식 박물관장과 대전대 이달훈 교수 등 국내 석조미술 전문가들은 일제가 지난 1917년 엉터리로 해체·조립한 중앙탑에 대해 △4개 면의 탱주 숫자와 면석의 간격이 일정치 않고 △기단 갑석의 경우 부분적으로 다른 석질의 부재라고 밝혔다. 두 전문가는 또 △
충북을 비롯한 전국의 상업계 교사들의 학술대회가 열린다. 19일 한국상업교육학회(회장 김효겸 대원대 총장) 2013 하계학술대회가 22일 공주대 천안캠퍼스에서 열린다고 밝혔다. 한국상업교육학회는 전국 대학의 상업계 관련 교수와 상업고교장, 교사 등 1천여명으로 조직된 것으로 매년 정기적으로 학술발표회를 개최하면서 학회지 발간 등을 수행해 오고 있다. 이번 학술대회는 '한국상업교육과 농어촌직업교육의 현황진단과 미래 발전방향'을 주제로 5개분야로 실시된다. 이번 학술대회에서 박재순(한국농어촌공사) 사장이 최고경영자 대상을 수상한다.박 사장은 한국농어촌 발전에 기했을 뿐만 아니라 상업과 농업을 융합해서 공동 발전하는데 기여해 온 공로를 인정받았다. /김병학기자
본보가 단독 입수한 미군 노획 편지가 전국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본보 조혁연 대기자는 18일 오후3시20분 'TV조선'에 출연해 편지를 입수하게 된 배경부터 주인공 추적 과정 등을 소개했다.조 대기자는 이날 TV조선 프로그램인 '신율의 시사열차'에서 지난 한국전쟁 당시 청원군에서 강제 징집된 인민군 병사들이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10여 통의 편지들을 소개했다. 그는 편지의 주인공을 끈질기게 추적하는 한편, '이산가족찾기', '충주지역 토지개혁' 등 사료적 가치도 재조명했다.특히 4통의 편지를 발송한 전종대(83)옹이 전남 여수에 거주하고 있는 사실을 확인하고 한국전쟁 당시 그의 군 생활과 애잔한 가족 이야기를 집중 조명했다.조 대기자는 편지 원본을 보고 싶어 하는 주인공 가족의 뒷이야기도 전했다.그는 "편지 소식을 들은 가족들이 원본을 꼭 한번 보고 싶어 했다"며 "편지 소유권이 미국정부에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조 대기자는 편지를 반환받기 위해 하루 빨리 주인이 나타나야 한다고 피력했다.그는 "10여 통에 대한 편지 주인이 아직까지 생존해 있거나, 그 후손들이 한국에 있을 가능성이 충분하다. (편지의)주인이 나타나면 미국 정부에 반환…
34. 일본군 특무기관의 공작과 비밀전쟁(하) ■ 과분중국(瓜分中國)과 일본군강희제 이후 전성기를 맞은 청국의 판도는 오늘날의 중국 영토와 거의 비슷하다. 흑룡강부터 신강성까지 넓혔고 남으론 티베트와 접경하였다. 이 넓은 땅이 19세기 말에 들어와 서구열강의 침략으로 갈가리 찢겨졌다. 결정적 계기는 청일전쟁이었다. 청이 일본에게 일방적으로 패배하고 막대한 배상금을 지불하자 열강이 아귀같이 달려들었다. 만주와 몽골은 러시아가 선점했고, 산동성은 독일이 차지했다. 영국은 양자강 유역을 빼앗았고, 프랑스는 광동성과 광서성을 세력권에 넣었다. 조차지도 늘어나서 뤼순과 따렌은 러시아, 칭따오는 독일, 영국은 홍콩에 이어 구룡반도를 차지했다. 1896년부터 1898년까지 중국을 분할했던 이른바 과분중국(瓜分中國)이다. 1899년 의화단의 봉기는 이런 침략에 대한 처절한 항거였다. 하지만 8개국연합군이 베이징을 점령한 이후 중국의 분할은 더 빨라졌다. 청은 대제국의 위신을 상실했고, 더 이상 열강의 침략을 막아낼 군사력이 없었다. 8개국연합군은 영국 미국 러시아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이태리 일본에서 보낸 군대로 구성되었지만 주력은 일본군 제5사단 11연대와 42연대의…
조선 세종대의 한양도성 수축공사에 충청도 사람이 총 5만6천여명이 동원된 가운데 이들이 새긴 각자(刻字) 성돌이 10개가량 현존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민덕식 전국사편찬위원화 교육연구관이 충북사학 제 27집(발행인 충북대 신영우 교수)에 '충청인들의 서울성곽 축성관계 금석문'(부제: 세종4년 축성을 중심으로) 논문을 발표했다.논문에 따르면 조선의 수도인 한양도성은 태조 4년(1395) 처음 축조된 후 27년만인 세종4년(1422)에 나머지 구간을 수축하게 된다. 이때 8도가 전구간을 배분해 맡은 가운데 충청도 각 고을에서 동원된 수축군은 지금의 혜화문-낙산-흥인문 구간을 맡았다.이 구간은 풍수상 한양의 좌청룡에 해당하는 곳으로, 인왕산이 있는 우백호에 비해 지맥이 다소 낮고 거리가 짧은 입지환경을 지니고 있다.논문에 따르면 이 구간 성벽수축 공사에 동원된 충청도 수축군은 총 5만6천1백여명으로, 이는 당시 전체 동원인력 32만2천400여명의 17%에 해당하는 수치다.충청도 수축군은 39일간 진행된 성벽공사에서 태조 때 쌓은 744척(약 227m)을 제외한 5천256척(1,627m)을 새로 쌓았다.이때 동원된 충청도 각고을의 수축군들은 'OO 구간은 우리가 쌓았
청주고인쇄박물관은 고객이 OK하는 열린박물관 운영을 위해 운영사업과, 학예연구실 직원 등과 함께 휴관일인 17일 직원워크숍을 실시했다.청주고인쇄박물관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 직지가 간행된 우리나라 유일의 고인쇄 전문박물관으로 연간 관람객이 20만명을 넘고 있다.이날 안승길 운영사업과장은 "오는 8월 금속활자 주조 전수관 개관, 연말 근현대인쇄전시관을 준공 시 직지특구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며 "직원 워크숍을 통해 통합시를 대비하고 고인쇄박물관의 미래비전에 대한 의견제시, 박물관 로고·홍보물 제작에 대한 부서 의견을 상호 교환하는 자리가 됐다"고 말했다.고인쇄박물관은 관람객들을 위해 매월 넷째주 토요일 다례체험과 문화행사를 열고,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박물관 광장에서 에어로빅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김수미기자
옥천지역서 문화재 훼손이 잇따르고 있어 대책마련이 요구된다.옥천군은 문화재 현상유지구역 안에서 나무를 무단 벌채한 A(61)씨를 적발해 조사 중이다.A씨는 지난달 20일께 안내면 도이리 지방문화재인 휴율당(後栗堂·충북도기념물 13호) 현상유지구역 안에 있는 소나무 등 10여그루를 무단 벌채한 혐의를 받고 있다.A씨는 "농로를 내기 위해 나무를 베면서 문화재 현상유지구역인줄은 몰랐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조선시대 사당인 이곳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 조헌(趙憲)이 봉기한 곳이다.문화재 현상유지구역에서는 허가 없이 벌채 등의 개발 행위를 할 수 없다.앞서 옥천군은 지난해 청성면 산계리 신라시대 산성인 '굴산성(屈山城)'을 훼손한 B(60)씨를 적발, 원상복구 명령했다.그러나 전씨는 "건축 허가를 잘못 내준 옥천군의 책임"이라며 최근 청주지법에 원상복구명령 무효 확인소송을 내 승소했다.B씨는 2011년 9월 이곳에 주택과 창고를 짓기 위해 옥천군으로부터 개발행위와 산지 전용허가를 받아 흙을 파내는 공사를 했다.이 과정에서 석축 등이 외부로 드러나면서 훼손됐다.옥천군청의 문화재 관리 담당자는 "굴산성 같은 매장 문화재 보호를 위해 개발행위 허가 때 부서간 협력체제를
속보= 미군이 6.25때 평양에서 노획한 조선인민군의 편지 주인공 중 충북을 연고로 한 1명의 생사 여부와 소재지가 본보 추적을 통해 확인됐다. 특히 이 사람은 1950년 7월 청주에서 북한군에 강제징집을 당해 남북을 오가며 모두 3번(총 6년)의 군복무를 한 것으로 나타나, 전쟁이 한 인간의 삶을 어떻게 파괴하는 지를 웅변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본보는 6월 10일자 3면과 11일자 1면으로 보도했던 충북 연고자 12명 중 편지를 4통으로 가장 많이 썼으면서 '충청북도 청원군 강서면 현암리 100호'를 받는이 주소지로 하고 있는 '전종대'라는 인물을 지목, 인물 추적에 나섰다. 추적 방법은 현주소지인 강서1동 주민센터→현암동 통장→현암동 노인회장→현암동 경로당회장 수순을 밝았다. 그 결과, 강제징집 당시 마을인 현 강서1동에 동생 전종성(75) 옹이 생존해 있고 그를 통해 현재 전남 여수에 살고 있는 형 전종대(83) 옹과 통화를 하는 것이 가능했다. 다음은 일문일답으로, 편의상 존칭은 생략했다. - 언제, 어떤 과정을 거쳐 북으로 가게 됐나. "청주에 들어온 인민군들은 1950년 7월 청주, 청원지역 2천여명의 장정들을 시내 모 국민학교에 집결시킨 후 강제
옥천지역서 문화재 훼손이 잇따르고 있어 대책마련이 요구된다.옥천군은 문화재 현상유지구역 안에서 나무를 무단 벌채한 A(61)씨를 적발해 조사 중이다.A씨는 지난달 20일께 안내면 도이리 지방문화재인 휴율당(後栗堂·충북도기념물 13호) 현상유지구역 안에 있는 소나무 등 10여그루를 무단 벌채한 혐의를 받고 있다.A씨는 "농로를 내기 위해 나무를 베면서 문화재 현상유지구역인줄은 몰랐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조선시대 사당인 이곳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 조헌(趙憲)이 봉기한 곳이다.문화재 현상유지구역에서는 허가 없이 벌채 등의 개발 행위를 할 수 없다.앞서 옥천군은 지난해 청성면 산계리 신라시대 산성인 '굴산성(屈山城)'을 훼손한 B(60)씨를 적발, 원상복구 명령했다.그러나 전씨는 "건축 허가를 잘못 내준 옥천군의 책임"이라며 최근 청주지법에 원상복구명령 무효 확인소송을 내 승소했다.B씨는 2011년 9월 이곳에 주택과 창고를 짓기 위해 옥천군으로부터 개발행위와 산지 전용허가를 받아 흙을 파내는 공사를 했다.이 과정에서 석축 등이 외부로 드러나면서 훼손됐다.옥천군청의 문화재 관리 담당자는 "굴산성 같은 매장 문화재 보호를 위해 개발행위 허가 때 부서간 협력체제를
33. 일본군 특무기관의 공작과 비밀전쟁(중) ■ 사이고와 야마가타가 보낸 스파이들 메이지유신 직후 사쓰마와 토사, 그리고 조슈번의 군대가 도쿄에 들어와서 고신페이(御親兵)라는 정부의 직속 군대로 편성되었다. 그 핵심은 4개대대 5천명을 가세시킨 사쓰마번의 병력이었다. 이제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가 정부와 군의 중심에서 활약하게 되었다. 사이고 다카모리는 정한론 주장자였다. 조선에서 천황이라고 기재한 국서 받기를 거부하자 침략을 주장한 것이다. 1872년 그는 외교사절 하나부사 요시토모(花房義質, 1842~1917)의 일행 속에 스파이들을 포함시켰다. 그중 육군소좌 벳부 신스케(別府晋介)가 2개월 간 정탐을 한 후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한국을 유린하는 데는 일본군 2~3개 중대면 충분하다.” 이때 만주로 간 육군소좌 이케노우에 시로(池上四郞, 1842~1877) 등이 돌아와서 「만주시찰복명서」를 제출했다. 이 복명서는 흑룡회에서 펴낸 『서남기전(西南記傳)』에 수록되었는데, 한국과 만주의 지형 정세 군대 재정 풍속 등을 정탐해온 것이었다. 1877년 사이고 다카모리가 세이난(西南)전쟁에서 패배한 후 자결하자 메이지 군대는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縣有朋)의
속보= 재미 언론학자 이흥환 씨가 공개한 7백여통의 미군노획 편지 중에는 '받는이'(수취인)의 주소가 충청북도로 돼 있는 것이 모두 12통 존재하고 있다.(5월 10일자 3면) 당시 발신인(보내는이)들이 편지를 작성한 시점은 6.25 동란 와중인 63년 전으로, 미군이 평양으로 진격한 1950년 가을 무렵이었다. 따라서 당시 편지를 쓴 주인공들 중 일부는 아직 생존해 있거나, 6.25 휴전후 고향으로 돌아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받는이'의 대부분은 참전하지 않은 후방의 민간인들이었기 때문에 이들이 생존해 있을 가능성은 더욱 높다. 남북 이산가족찾기 운동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의미에서 △편지를 쓴 주인공 △받는 이의 주소 △'누가 → 누구에게' 등을 상세히 소개한다. ①, ②, ③, ④는 어떤 이유로 북한 인민군에 입대한 '전종대'가 고향 '충청북도 청원군 강서면 현암리'의 후배 최수철, 누이 이순섭·순옥 등 2명 그리고 남동생 종옥 등 4명에게 보내려고 한 편지다, ⑤는 리충기가 복무지 황해도에서 충북 음성군 맹동명 쌍정리의 리덕기에게 부치려고 한 편지로, 둘은 부자간이다. ⑥과 ⑦은 평남 성천군의 김동빈이 충북 진천군 당부 김성래 등에게…
○…문화관광체육부(이하 문체부)가 지난 6일 청원군 내수읍 형동리 '운보의 집'에 대한 운영상황 등을 점검.운보문화재단정상화추진위원회(이하 정추위)에 따르면 문체부가 운보의 집에 대한 운영상태 등을 점검하기 위해 충북도, 운보문화재단, 정추위 관계자들과 함께 운보의 집을 답사. 문화예술계 인사 등 20여 명으로 구성된 정추위는 지난 4월 발족한 뒤 문체부를 방문, 운보의 집이 아직 파행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며 정상화를 요구.문체부는 이 같은 주장에 대해 그동안 실사를 한 뒤 충북도와 관련 단체에 이날 현장 점검을 한다고 통보. 그러나 이날 현장 점검은 후원회 측 관계자와 정추위 관계자의 고성 등으로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못한 현지답사로 마무리.정추위 관계자는 "파행으로 운영되고 있는 운보문화재단을 문체부가 직접 관리하거나 직접 관리할 수 없으면 충북도로 이관해 줄 것"과 "충북도와 운보 김기창 화백 탄생 100주년 행사를 협의해 추진해 줄 것을 문체부에 요청했다"고 설명./ 김수미기자
◇1983년 어느 날 청주에서 동남방 26㎞ 거리에 있는 '쌀안장' 미원(米院). 청주와 보은의 중간 지점인데다 샛길로 청천 화양동이 코끝에 닿아 있고, 청천을 지나면 괴산·증평에 이르게 돼 있어 산간지대이긴 하나 지방 교통의 요충지로서 제구실을 하는 곳이 바로 미원이다.그래서 미원은 산간 지방의 농산물이 집산되는 곳이었고, 청주의 길목인 까닭에 농산물을 공급하는 젖줄이기도 했다.향곡(鄕谷)의 저자바닥을 오가는 장돌림들도 대개 미원장을 거쳐 청주로 올라왔다. 때로는 장 고개를 넘어 증평 봉천장으로 빠지기도 했다. 지금이야 아랫녘에서 청주로 이어지는 길이 잘 포장돼 있지만 소몰이꾼이나 보부상의 지름길은 다소 다르다.보은에서 창리고개를 지나 미원으로 가는 길이야 현재와 같지만 미원에서 삼거리를 지나지 않고 가덕 금거리에서 낭성으로 꺾어들어 상당산성을 지나 청주장에 도착했다. 창리를 거치지 않으려면 보은 산외면으로 통하는 싸리재나 채목고개를 넘기도 했다.예로부터 '쌀안장'이라 불리던 미원장의 유래는 구구각색이나 '쌀안'이란 뜻은 상당산성 안, 즉 산의 안쪽에 있다해 '산안'으로 불리다가 '쌀안'으로 변천됐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쌀이 떨어지지 않는 '쌀고을'이어서
배달 안 된 6.25 편지들이 63년만에 무더기로 공개됐다. 특히 이들 편지 중에는 충북을 받는이(수취인)의 주소로 한 것도 10여통이 넘어 지역적인 관심도 끌고 있다. 재미 언론학자 이흥환(워싱턴 KISON 선임 편집위원) 씨가 얼마전 미군이 평양 진격 때 노획, 미문서보관소(NARA)에 보관돼 오던 당시 편지 일부를 '조선인민군 우편한 4640호'라는 책을 통해 공개했다. 이씨는 전체 1천17통(엽서 포함)의 편지 중 113통은 편지글 형태로 공개하고, 나머지 616통은 분량상 받는이의 주소만을 공개했다. 이들 편지는 6.25 한국전쟁이 진행 중이던 1950년 가을 평양에 소재한 조선인민군 우편함 OOOO호 등을 통해 가족, 연인, 친구 등에게 부친 편지들이나 아직껏 배달되지 못한 것들이다. 특히 이들 중에는 '충청북도 청원군 오창면 기암리' 등과 같이 받는이의 주소가 충북으로 돼 있는 것도 10여통이 넘어 경우에 따라서는 이산가족찾기 등에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일부를 소개하면 '최석준'이라는 이름을 가진 인민군 병사는 '충청북도 청원군 오창면 기암리'에 살고 있는 형 석영 앞으로 '형님 전상서'로 시작되는 한 통의 편지를 썼다.(사진) 편지글
충북도정사의 최대 치욕으로 6.25 한국동란 와중에 발생한 '청주사건'이 망각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치욕의 역사도 역사인 만큼, 여기서 교훈을 얻으려면 당시 사건을 있는 그대로 후대에게 알려줘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본보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1951년 5월 26일에 발생한 '청주사건'의 실체를 보다 명확히 하기 위해 당시 신문보도, 이승우씨가 저술한 '도정 반세기' 그리고 국가기록원 자료 등을 비교·분석했다. 청주사건은 1951년 5월 공비가 집결해 있다는 정보를 받고도 적절한 대책을 세우지 않아 충북도청 건물 일부와 국가서류 등이 불타고, 또 경찰관 등이 희생된 사건을 말한다. 당시 공비들은 청원 낭성면에 집결해 있다가 새벽 어둠을 틈타 상당산성-우암산 루트를 이용해 청주에 침입, 충북도청·도지사관사·청주교도소 등을 공격했다. 그러나 당시 사건은 국가 공문서 등이 불타면서 자료마다 적지 않은 차이를 보이고 있어, 실체 규명이 절실하다는 주장이 존재해 왔다. 1951년 6월 5일자 동아일보 기사는 당시 충북도지사(이광)와 내무부의 보고 내용이 서로 점을 5줄 제목으로 기사화하는 등 크게 문제삼았다. 먼저 동아일보는 '청주사건'과 관련해…
32. 일본군 특무기관의 공작과 비밀전쟁(상) ■ 일본군 특무기관의 말레이반도 파견세상에는 음지에서 일어난 사건도 함께 보아야 할 일이 많다. 수바스 찬드라 보스가 임팔전투에 투입시켰던 자유인도군이 그렇다. 자유인도군은 일본군 특무기관의 작품이었다. 일본은 진주만 기습을 노리면서 영국과 전쟁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다. 영국은 독일과 한창 전쟁 중이라서 전력을 기울여 식민지를 방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식민지는 전쟁수행에 필수인 인력과 물자 공급지였기 때문에 대응이 만만치 않을 것이었다. 일본군은 영국군 조직에서 인도병사를 이간시키려고 했다. 당시 영국군에 편입된 인도인 지원병은 3백만 명이었다. 이제 군사력을 보면 대영제국이란 말은 맞지 않고 영국인도제국이라고 해야 적합했다. 영국의 아시아 식민지에 주둔한 인도병사를 꾀어내면 영국군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었다. 일본군 참모본부 제2부의 제8과가 나섰다. 제8과는 모략과(謀略課)였다. 1937년 중일전쟁에서 첩보조직의 필요가 커지자 국제정세와 기밀정보의 수집 분석과 선전공작, 그리고 모략활동이 임무인 8과를 신설했다. 이 모략과가 인도를 대상으로 본격적인 공작을 시작한 것이다. 일본의 이차대전 평가가 기이
1970년 개통된 경부고속도로의 중간지점이면서 최악의 난공사 구간으로 꼽히는 옥천군 동이면 옥천터널 주변의 옛 경부고속도로의 등록문화재(근대문화유산) 등재가 추진된다.한국도로공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경제개발의 상징인 경부고속도로 건설의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이 지역 옛 경부고속도로(길이 4㎞)에 대한 등록문화재 등재를 추진할 계획이다.이 구간에 놓인 당재터널(현 옥천터널)과 금강을 가로지르는 아치형 교량인 당재육교도 등재 대상이다. 길이 560m의 당재터널은 이 도로 건설 당시 국내에서 가장 긴 도로터널이고, 아치경간이 75m에 달하는 당재육교도 당시 이 부분 최장기록을 갖고 있다.한국도로공사 녹색환경처의 성현경 부장은 "경부고속도로는 국토의 대동맥이면서 우리나라 산업발전을 이끈 시설물로 문화재적 가치가 크다"고 말했다.또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50여종의 철도 시설물의 상당수가 일제에 의해 건설된 반면, 경부고속도로는 순수 국내기술로 건설된 한국 토목공사의 상징"이라고 덧붙였다.이 구간은 2003년 구불구불한 노선을 반듯하게 펴는 선형개량공사를 하면서 폐도(廢道)돼 국토교통부로 소유권이 넘어간 상태다.그 뒤 옥천군이 관리권을 넘겨받아 왕복 4개 차로 가운데 2
[충북일보] 오는 30일 본보와 충북리더스클럽이 주최하는 '14회 충북경제단체 친선골프대회'가 오전 11시 30분부터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 그랜드 컨트리클럽(그랜드 CC)에서 열린다. 대회는 경제인들의 친목 도모와 상호 간의 다양한 정보교류를 통해 기업 경쟁력을 강화하고 기업 환경변화에 대한 적응력을 높여 지역경제 발전에 기여하고자 마련됐다. 이날 대회는 도내 경제단체 회원과 재경 경제인 등 160여 명이 40개 팀을 이뤄 신페리오 방식으로 치룬다. 라운딩 이후 시상식과 김영환 충북도지사 초청 만찬, 행운권 추첨은 오후 6시 30분부터 진행된다. 시상식은 △메달리스트 △우승(남·여) △준우승(남·여) △니어리스트(남·여) △롱게스트(남·여) 수상자에게 트로피와 부상이 각각 주어진다. 가장 멋지게 옷을 입은 참가자인 △베스트드레스상(남·여) 수상자에게는 부상이 수여된다. / 성지연기자
[충북일보] 7일 오전 10시부터 오후까지 충북 청주시 소재 충북대학교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주관한 국가재정전략회의가 열렸다. 그러자 지역 곳곳에서 '무슨 일이 있느냐'는 문의전화가 빗발쳤다. 대통령실의 한 관계자는 이날 국가재정전략회의가 열린 배경에 대해 "기존에 국가재정전략회의는 국무총리와 장·차관 등 국무위원 중심으로 열렸다"며 "이번에는 다양한 민간 전문가들을 참여시켜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고 정책의 현실 적합성을 높이고자 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해도 왜 굳이 충북대에서 이번 회의가 열렸어야 했는지 궁금증은 해소되기 어려워 보인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또 하나의 특징은 회의 장소가 충북대라는 점"이라며 "기존에는 주로 세종청사나 서울청사에서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열었는데, 충북대를 이번에 택한 이유는 지방 발전, 지역 인재 육성을 포함한 지방시대와 연계해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열고자 하는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이 또한 대통령의 의지라는 부분을 제외하고는 일반 시민들의 궁금증을 해소시키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윤 대통령은 MZ세대인 충북대 학생들과 오찬 간담회를 열어 청년일자리, 지역인재 육성 등의 고민과
[충북일보] 충북 도내 최대 규모의 공연장인 가칭 '충북아트센터' 건립 사업에 본격적인 시동이 걸렸다. 오는 2026년 착공을 목표로 기본계획 수립, 타당성 조사, 중앙투자 심사 등의 절차를 밟게 된다. 26일 충북도에 따르면 지난 4월부터 충북아트센터 건립을 위한 타당성 조사 및 기본계획 수립 연구용역이 진행 중이다. 다음 달 중순 마무리되며 용역을 통해 세운 기본계획에는 공연장 등 규모, 운영 방안, 경제성 검토 등이 담긴다. 도는 이 계획을 타당성 조사에 들어간 한국지방행정연구원에 제출할 예정이다. 앞서 도는 지난 7월 행정안전부에 타당성 조사를 의뢰했다. 총사업비 500억 원 이상이 투입되는 신규 사업은 의무적으로 타당성 조사를 받아야 한다. 충북아트센터 건립에는 총 2천300억 원이 소요된다. 연구원은 내년 4월까지 경제성과 재무성, 정책적 사업 추진 가능성 등을 분석한다. 도는 조사 결과가 나오면 같은 해 상반기 행안부에 지방재정 중앙투자심사를 신청할 방침이다. 심사를 무난히 통과하면 충북아트센터 건립을 위한 준비를 마친 뒤 오는 2026년 첫 삽을 뜬다는 계획이다. 오는 2028년 완공을 목표로 잡았다. 도는 이런 절차가 차질 없이
[충북일보] "산업 현장은 치열한 전쟁터라 조용해 보이지만 끊임없이 경쟁력을 개발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재진(67) ㈜ATS(에이티에스) 대표는 기업의 생존을 위해선 혁신을 통한 경쟁력 개발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ATS는 국내 자동차 플라스틱부품 업계 1위 기업으로 2004년 설립해 20년간 끊임 없이 달려왔다. 주력 제품은 초정밀 사출 기술을 이용한 자동차용 클립(Clip)과 패스너(Fastener)등 자동차 플라스틱 부품이다. 이재진 대표는 "클립, 패스너 등 플라스틱 부품과 연료 부품 분야로 두 가지 트랙을 사업 아이템으로 갖고 있다"며 "보통 300가지 정도의 부품이 매월 생산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에이티에스는 지난 2022년 국내 완성차 업체 2곳이 필요로 하는 부품 점유율의 50%를 넘어섰다. H사의 1대에 사용되는 내장·외장용 클립 100개중 50개 이상은 에이티에스 제품이 사용되고 있다는 의미다. 이재진 대표는 "신차 개발은 2년을 앞두고 이뤄진다. 올해 기준으로 2026년 모델링이 나오면 그에 필요한 부품을 부품 회사들이 2~3년전부터 개발하기 시작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 차의 디자인 등에 맞춘 개발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