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아직도 표류중인 운보의 집이여, 어디로?

'운보의 혼' 함께 호홉할 공간으로 만들자

  • 웹출고시간2008.07.06 20:23:41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운보 김기창 화백

빨간 양말을 신고 지팡이를 짚고 불편한 몸으로 그 어떤 방문객도 마다않던 예술가 운보 (雲甫) 김기창(1914~2001). 10여 년 전 그를 만났을 때, 노환이 깊어지고 있었지만 종이에 펜으로 글씨를 써가며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때 그는 간간히 힘겹게 그림을 그렸고 죽는 순간까지 붓을 잡고 싶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그 당시나 그 이전이나 그가 지향하는 삶은 이랬다.

‘나는 귀가 들리지 않는 것을 불행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듣지 못한다는 느낌도 까마득히 잊을 정도로 지금까지 담담하게 살아왔습니다. 더구나 요즘같이 소음공해가 심한 환경에서는 늙어 갈수록 조용한 속에서 내 예술에 정진할 수 있었다는 것은 오히려 다행이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다만 이미 고인이 된 아내의 목소리를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게 유감스럽고 또 내 아이들과 친구들의 다정한 대화 소리를 들어보지 못하는 것이 한이라면 한(恨)이지요.
예술가는 늙으면 대자연의 품에 안겨 자연의 창조주와 끊임없이 대화를 해야 한다고 늘 생각해 왔습니다. 늙어가면서 하늘과 대화를 나누며 어린이의 세계로 귀의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날더러 마지막 소원을 말하라면 “도인이 되어 선의 삼매경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 입니다.’ -운보 김기창 어록에서-
문득 이 어록에서 ‘소음공해’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자동차소리나 공장에서 기계 돌아가는 소리만 소음공해가 아닐 터이다. 세상에는 굳이 듣지 않아도 될 소리들이 너무나 많다. 오히려 들어 약이 되기보다는 독이 될 소리가 더 많은 듯 하다. 지금, 운보가 살아 있다면, 자신과 관련된 주변의 복잡한 소음들로 오히려 미명으로 들리던 자신의 귀를 스스로 틀어막지 않았을까 싶다. 이 여름, 문득 운보의 집을 생각하면 답답하다. 그가 남긴 예술적 업적들이 점점 퇴색해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운보의 집은 한국화가인 운보(雲甫)가 71세 되던 해인 1984년 완공하여 2001년 1월 작고할 때까지 생활했던 곳이다. 운보의 집이 있는 청원군 내수읍 형동리는 운보 어머니의 고향이다. 솟을 대문을 지나 정원과 2개의 중문을 통과하면 아름다운 한옥 한 채가 나온다. 낮은 산으로 둘러싸인 약 2만 6천여 평의 대지에 운보의 집을 비롯하여 운보 미술관, 수석공원, 조각공원, 도자기 공방, 연못과 정원, 찻집, 운보의 묘 등이 있다. 운보 미술관에는 대표작 50여점과 도자기, 판화, 스케치, 유품, 부인박래현의 작품 등이 전시돼 있다.

이러한 운보의 집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은 2년 전 아들 김씨가 벌인 사업이 실패하면서 일부 땅이 경매로 넘어가게 된데서 비롯되었다. 2006년 11월 운보의 집 부지 중 7천 800평을 서울의 모 인사가 낙찰을 받았고 그는 문화재단 측과 공동으로 운보의 집을 활성화 하겠다고 했으나 쌍방간에 협의가 안돼 갈등양상으로 치닫게 되었다. 그로인해 땅을 낙찰 받은 모 인사는 자신소유의 땅에 사람들이 드나들 수 없도록 금줄을 쳤고 갈등은 점점 골이 깊어졌다. 그 와중에 아들 김 씨는 모든 일에서 손을 뗀 상태다.

반면 문화재단 내에서도 갈등이 불거졌다. 이사진들이 둘로 갈라져 한쪽은 외부의 재력가를 영입해 문화재단 소유의 운보의 집을 개보수해 상업적인 목적으로 활용하겠다는 것이고 한쪽은 그 일 자체를 반대하면서 일을 추진했던 전임이사장 등을 공사중지, 이사직 박탈 등의 건으로 검찰에 고발한 상태다. 이를 지켜보던 충북예총을 비롯, 도내 예술단체는 지난해 운보의 집 정상화를 위한 대책위원회를 구성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러한 분위기에 힘입어 문화관광부와 법원이 나서게 되었고 공사는 중단된 상태이며 법원은 지난해 11월 청주예총 김동연 회장을 직무대행이사장으로 선임했다.

김회장이 이사장직을 맡아 운보의 집 정상화를 위한 가닥이 잡히는가 했더니 운보의 집은 갈수록 오리무중이 돼 가고 있다. 이후 운보미술관 관장이며 문화재단 사무국장이었던 김형태씨가 일부 전임 이사진들에 의해 협박과 구타를 당하는 사건이 발생하는가 하면 직무대행으로 선임된 김회장과 대책위원회 간에 갈등까지 더해졌다.

그런 와중에 지난달 27일 문광부 직원 입회하에 이사회를 소집해 이사중 한명인 이강균씨를 새로운 이사장으로 추대했으나 문광부는 인정하지 않고 있는 상태이며 이사회는 법원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운보의 집 전경

문제는 이사장이 누가 되느냐가 이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사이 운보의 집은 병들어 가고 있고 집 뒷산에 묻혀 있는 운보가 지금 번지고 있는 이 소음 때문에 땅속에서 조차 편히 쉴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다. 이제쯤은 뭔가 결정적인 것이 돌출되어 현재까지 벌어진 모든 안 좋은 상황을 정리해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 첫 번째 대안은 결국 ‘자치단체’라는 게 충북예총을 비롯한 대책위원회 소속 미술인들의 주장이다. 복잡하게 얽힌 문화재단과 운보의 집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충북도가 운보의 예술적 정신을 받아들여 충북의 문화자산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로서 충북도는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 무관심한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그 어떤 것도 이유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오직 이유라면 문화를 인식하는 자치단체장의 감식안이 없다는 것, 뿐일 것이다.

두 번째 대안으로 자치단체에서 관심이 없다면 결국 재력 있는 개인 사업자나 충북도에 위치한 대기업에 기대해 볼 수밖에 없다. 대책위원회측도 전임 이사들이 예술적 성과를 유지하려는 순수함 보다는 상업적 목적으로 이용하려는 타 지역 재력가의 영입에 딴지를 걸었던 만큼, 운보의 문화 예술적 역량이나 문화재단 설립의 취지를 살려 제대로 활성화 할 수 있는 지역의 개인 재력가나 기업이 나타나 준다면, 이 또한 적절한 대안이다. 현재 충북도에는 그런 개인이나 기업이 없다.

마지막 최선의 대안은 문화재단을 해체하고 국고에 환수시키는 일이다. 법원이 파견한 직무대행이사장이나 현재 운보의 집에 머물고 있는 황모씨 등 이사진들이나, 대책위나 모두 갈피를 못 잡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선은 이사장을 중심으로 이사들 스스로가 문화재단을 해체하는 것이며, 해체한 후 정부에 귀속시키고 문광부는 문화재단의 부채 및 황모씨가 개인적으로 투자한 자금만 복귀시켜준다면 모든 상황은 정리되는 것이다. 현재로서는 가장 빠르고 정확한 대안이 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책위원회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고민해보자. 우선 이사진들과 적극적인 대화를 모색해보는 일이다. 어렵겠지만 중재자를 두고라도 끊임없이 시도해야할 일이다. 이들을 설득해 법적인 분쟁을 종식시켜야 하며 운보의 집을 위한 진정한 대안을 선택해 그것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함께 협력해야 할 것이다. 문제는 갈등과 분쟁의 종식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자신들의 목소리를 낮추고 함께 앉아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면 합의점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정말 부끄럽다. 누구는 평생 마음을 갈고 닦아 선의 경지에서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고백했고, 또 그렇게 살아 후대를 위해 금쪽같은 예술품을 남겨 놓았는데, 그것 하나 제대로 지키고 가꾸지 못하는 후대인이 되었으니 말이다.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는 모든 목소리를, 모든 소음을 죽이고 이젠 진정으로 운보가 남긴 그의 예술작품과 그가 살았던 삶의 공간만을 생각하자. 그래서 그 공간이 그가 한때 숨쉬고 예술을 고민했던 그 공간이, 영원히 살아 모든 사람들이 함께 그 공기를 호흡할 수 있는 공간이 되도록 만들어 보자.


/김정애 (소설가·프리랜서)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