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바트 거리 소라야, 모스크바 중앙에 자리 잡고 있는 이 거리는 러시아 젊은이들의 혼이 숨 쉬는 곳이고 예술의 거리야. 서울의 명동과 인사동을 합쳐놓은 곳이라고 보면 돼. 전통과 자유로움과 어수선함이 묘하게 섞여서 예술이 되는 거리. '생활이 그대를 속이더라도...'의 푸시킨이 아름다운 신부 나탈리아와 살던 신혼집도 있어. 저 아름다운 신부로 인해 얼마나 많은 결투와 핍박을 받았는지 알지? 결국엔 아내의 정부가 쏜 총에 맞아 죽었다는 얘기… 얼만 큼이 진실인지 연구해보진 않았지만 죽도록 사랑한건 사실이니까 존경할 수 있어. 작가가 아닌 여인의 남자로서도 백점 만점에 백점이잖아. 그치? 영국에는 세익스피어가 있고 독일에는 괴테가, 대한민국에는 조정래(순전히 내 생각임)가 있다. 그럼 러시아엔 당연히 푸시킨이 있다. 맞지? 동상 앞 보도블럭에는 모자이크처럼 된 맹세석이 있어. 연인들이 와서 사랑의 맹세를 하고 사인한거래. 참 묘하다. 나탈리아가 바람을 피웠는데...거기다 대고 맹세를 한다는게 난 이해가 안가더라. 이상하지?러시아의 많은 문인들이 유년시절을 보낸 곳이라서 그런지 거리 전체가 문화재라고 말하는군. 악사들이 연주하는 재즈음악을 배경으로 수많은 사
◇ 선운사의 풍경들 도솔산에서 바람이 불어온다. 아지랑이 속에 부는 바람치고는 시원하기보다는 좀 차가운 바람 이였다. 도솔산 선운사를 찾아가는 마음은 잠시라도 세상의 번뇌, 망상, 괴로움에서 벗어나려 함이다 사막에서는 연꽃이 자랄 수가 없다. 연꽃은 진흙 흙탕물 속에 나서 물을 청정하게 해주고 아름다운 꽃으로 핀다. 진주를 갖고 져 하면 바다 속으로 들어가지 않고는 손에 넣을 수 없다.번뇌, 망상에 들어가지 않으면 깨달음이라는 보주를 얻을 수 없다. 이와 같은 번뇌를 깨우침에는 선운의 도량이 아닌가 생각 되었다. 선운사는 안개, 구름 속에 수도하여 참선의 관문을 넘어 세속의 티끌들을 타파함에 있기 때문이다. 선운산은 만 필의 말들이 뛰어 오르는 형상으로 뭇 신하들이 임금과 잔치를 벌이는 모습이며 만물의 근원에 돌아간 신선이 모이는 진리의 산이라 한다. 이 진리는 아침에는 선운(鮮雲)이 반공에 두둥실거리고 저녁에는 밝은 달 밤하늘, 별빛이 있는 훌륭한 수행 처에서 큰 뜻을 깨치라는 것이다. ◇ 선운사 가는 길 이 진리를 깨치기 위해 풍천 강 지류를 타고 선운사 계곡으로 오르는데 길가에 풍천 장어집들이 장어구이 비린내를 내고 있다. 진리의 샘이 있는 곳을 찾아가
◇ 대웅보전의 비로자나 부처님 만세루 앞에 보물 290호인 대웅보전이 서있다. 대웅보전은 맞배지붕으로 정면 5칸 측면 3칸의 법당이다. 이 대웅전을 조선 광해군 때 중창하였는데 현종 때 큰 비로 오른쪽 2칸이 무너졌다. 이듬해 보수하여 오다가 1973년 완전 복구수리를 하였다 한다. 법당 안에는 비로자나불을 중앙에 안치하고 좌우 협시로 약사여래와 아미타여래가 모셔져 있다.일반적으로 비로자나불을 주존 으로 모시면 노사나불과 석가모니불을 좌우 협시로 모시고 대웅보전이라는 전각의 이름을 붙이는데 선운사는 약사여래와 아미타여래를 모셔 대웅보전의 명칭을 붙었다. 중앙의 주존불 비로자나불이 천개의 꽃잎을 가진 연꽃 좌대에 결가부좌를 하고 앉아 계시다. 수인은 좌우 두 손 모두 엄지를 손에 넣고 주먹을 진 다음, 왼손 집게손자락을 펴서 바른 손으로 감싸 쥐고, 바른 손의 엄지손가락과 왼손의 집게손가락 끝을 서로 대는 손 모양을 취한 지권인을 하고 있다.지권인은 무언에 설법으로 그대의 불성을 보라. 모든 것은 원래부터 둘이 아니다. 그 어느 것도 불성을 떠난 것이 없다. 그 무엇도 불성을 물들이지 못한다. 오직 불성으로 깨어나 그대의 불성을 보라라는 비로자나 부처님이 설법
조선전기 문신인 남효온(南孝溫·1454~1492)은 추강집이라는 저서를 남겼다. 여기서 사육신(死六臣)이라는 개념이 생겨났다. 세조 집권 후의 당시 조정 분위기는 사육신을 거명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 되던 시기였다. 그럼에도 그는 부당한 권력에 항거하다 죽어간 이들을 역사 한 모퉁의 기록으로 남겼다. 지금은 사육신 정원(?)이 한 명 더 늘어났다. 논란 끝에 지난 90년대 우리고장 옥천출신 김문기(金文起·1399~1456)가 추가됐다고 밝힌 바 있다. 따라서 호칭도 '사칠신'이라고 불러야 보다 정확하나, '사육신' 명칭은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사육신 명단에는 올라있지 않으나 단종복위 운동과 관련해 음독 자살한 인물이 있다. 청재(淸齋)를 호로 갖고 있었던 박심문(朴審問·1408년∼1456)이다. 그는 중앙정치 무대가 아닌, 변방 평안도 의주에서 자살했기 때문에 오랜 시간 동안 잊혀진 인물이었다. 단종복위 운동과 관련해 그의 이름이 사료에 등장하는 것은 고종 때이다. '병자년(1456, 세조2)에 김종서와 황보인 등이 죽게 되자, 원통하고 분하여 조카 중손(仲孫)에게 말하기를, "내가 감히 성군(세조를 가리킴)을 하찮게 대하는 마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아름다움을 추구하려는 남녀노소의 욕망이 '오수희 미남미녀 헤어펌'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됐고, 나아가 세계무대에서 한국의 미를 과시하는데도 한 몫 하게 하게 된 것 같습니다."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서 수많은 진·선·미를 배출해온 '오수희 미남미녀 헤어펌' 오수희 대표.그녀는 미개척분야인 미용업계에 뛰어들어 지난 1980년부터 30여 년간 미스코리아 충북대회에 관여해 오고 있다.일본 동경 이시와다리 아카데미와 영국 스프린턴스 뷰티스쿨, 프랑스 크리스찬 쇼보 메이크업스쿨을 수료해 헤어뿐 아니라 메이크업과 피부, 네일, 아트 분야까지 다방면의 기술을 습득한 그녀는 보다 체계적인 미스코리아 후보들의 교육을 위해 정창석 이사와 오경희 부원장으로 전담팀을 구성, 후보 교육에 나서고 있다.오 대표는 "처음 미스코리아대회에 관여할 당시 대부분의 미용인들이 체계적인 이론과 기술에 대한 갈증을 느끼고 있는 터였는데 욕심을 내 유학을 하고 시대의 변화에 빠르게 적응한 탓에 후보들의 교육이 보다 체계적으로 자리 잡은 것 같다"고 말했다.현재 대한미용사회 충북지회장과 대한미용사회 중앙회 부회장으로 활동 중인 오 대표는 미스충북대회를 앞두고 후보들의 스피치 교육과 몸가짐, 예절, 워킹
영화든 소설이든 전편을 압도하는 후편은 그리 흔치 않다. 2탄 또는 속편은 처음부터 기획되어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경우에 따라선 전편의 미진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제작된다. 그러나 앙코르 제국의 문화는 후편에 속하는 앙코르 톰의 위용이 전편인 앙코르와트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두 사원은 앙코르 문화의 쌍벽이다. 앙코르 유적에서는 자야 바르만, 수리야 바르만, 인드라 바르만 등 '바르만'이라는 칭호가 여러 번 등장하는데 '바르만'은 국민의 수호자라는 뜻으로, 즉 왕을 일컫는다. 서양의 '킹'이나 몽골의 '칸'에 해당하는 말이다. 앙코르 문명은 앙코르와트를 건설한 수리아바르만 2세 때 꽃을 피웠고 자야바르만 7세라는 걸출한 인물을 배출하면서 전성기를 구가하였다. 그의 시대에 왕국의 영토는 타이(태국)와 베트남 일부를 포괄할 정도였다. 자야바르만 7세는 선왕의 위업을 이어받아 앙코르 톰(대왕도)이라는 왕궁을 다시 지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창덕궁에 버금가는 경복궁을 지은 셈이다. 앙코르 톰은 한 변의 길이가 3km나 되는 정사각형의 거대한 도성이다. 중앙에는 세계의 중심을 상징하는 바이욘 묘(廟)를 배치했고 주변에 바푸온 사온, 타프롬 사원, 코끼리 테라스, 피미아
문종(文宗·1414~1452)은 아버지 세종을 많이 닮았으나 병약했다. 재위 2년 4개월만에 병사하니 그의 나이 38살이었다. 문종은 죽음을 눈앞에 두고 당시 대신이었던 김종서, 황보인 등에게 어린 단종을 잘 보살펴 줄 것을 부탁한다. 이런 까닭에 수양대군 세조가 왕권 찬탈을 위해 주도적으로 일으킨 계유정난 때 이들이 1차적으로 제거된다. 반면 당시 영의정으로, 문종의 부탁을 함께 받았던 鄭분(?~1454)은 화를 입지 않았다. 정분과 정인지는 처남 매부지간이다. 일설에 의하면 정인지의 구명 노력으로 화를 면했다. 그러나 정국은 계속 심상찮게 돌아갔다. 그는 영의정의 몸으로, 하삼도 체찰사로 보내진다. 체찰사는 왕명에 따라 일정 지역의 민정을 살펴보는 고위 임시직을 일컫는다. 사가들은 이 역시 처남 정인지의 배려로 보고 있다. "간신을 처벌해야 한다"는 상소가 그치지 않고 계속 올라왔다. 그는 하삼도 체찰사 임무를 마치고 상경하는 도중 세조의 유배 전지(傳旨)를 접하게 된다. 하삼도는 충청, 전라, 경상도, 전지는 임금의 뜻이 담긴 공문서를 의미한다. 이 부분에 우리고장 충주가 등장한다. '체찰사로서 영남에서 돌아와 충주에 이르러 황보인ㆍ김종서 등의 머리를…
계유정난은 수양대군 세조가 왕위를 찬탈하기 위해 김종서 부자, 황보인, 허후 등을 제거한 사건이라고 앞서 밝힌 바 있다. 계유정난과 관련, 1등 공신에 오른 인물 중에 한확(韓確·1403~1456)이 있다. 그가 계유정난 때 어떤 역활을 했는지는 사료 상으로는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고 있다. 다만 '정난공신 1등'에 오른 것으로 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세조 즉위식 때 그의 위치가 보다 분명하게 드러난다. 여러 백관을 데리고 세조에게 인사를 올린 인물이 한확이었다. 백관은 조정의 모든 벼슬아치를 일컫는다. 이때 한확은 백관의 대표로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사직(社稷)이 안정을 얻으니 조야(朝野)가 모두 기뻐하고 있습니다. 신 등은 다 같이 용렬한 자질로 다행하게도 경사로운 때를 맞아, 저 서기(瑞氣) 어린 해와 구름 속에 천명(天命)도 새로운 거룩한 성대(盛大)를 얻어 보고 태산(泰山)과 반석(盤石) 같은 바탕에서 다시 무강(無彊)하신 큰 계책을 기대하는 바입니다."(세조실록) 세조와 한확의 이런 교분은 '사돈' 관계로까지 발전한다. 세조 장남 도원군(20세 요절)은 한확의 딸 수빈한씨를 아내로 맞았다. 우리 귀에 익숙한 인수대비, 즉
수양대군 세조는 왕위 찬탈을 위한 첫 작업으로 계유정난(癸酉靖難·1453)을 일으켰다. 김종서 부자, 황보인, 조극관, 이양 등이 역모죄로 희생됐다. 세조 즉위 10년 후에 작성된 단종실록은 계유정난이 여론의 지지를 받은 것처럼 기술하고 있다. '김종서의 부자·황보인·이양·조극관 등을 모두 저자에 효수(梟首)하니, 길 가는 사람들이 통쾌하게 여기지 않음이 없어 그 죄를 헤아려서 기왓돌로 때리는 자까지 있었고, 여러 사(司)의 비복(婢僕)들이 또한 김종서의 머리를 향해 욕하고, 환시(宦寺)들은 김연(金衍)을 발로 차고 그 머리를 짓이겼다'. 이 시기 대신으로 허후(許 言+羽·?~1453)라는 인물이 있다. 그는 살생부에 들지 않아 화를 면했다. 그러나 그는 희생된 계유정난 대신들이 죄가 없음을 자주 거론했다. 특히 그는 황보인과 막역한 사이였다. 정난이 성공으로 끝나자 궁궐에서는 한 바탕 '파티'가 벌어진다. 남효온이 지은 추강집에 등장하는 내용이다. '술을 돌리고 풍악이 울리자 재상 정인지(鄭麟趾), 한확(韓確) 등이 손뼉을 치고 기뻐하며 웃었으나, 허후는 홀로 어두운 표정으로 고기를 먹지 않았다. 세조가 그 까닭을 묻자 재일(齋日)이라고 핑계하였으나 세조는
단종(端宗·1441∼1457)의 마지막은 사료마다 표현이 다소 다르다. 세조실록은 단종의 마지막을 매우 짧게 적고 있다. '노산군이 이 소식을 듣고 스스로 목매어 죽으니 예절을 갖추어 장사지냈다'. 이때의 노산군은 단종의 강등된 이름을, '이 소식'은 삼촌 금성대군이 세조로부터 사약을 받은 것을 의미한다. 기록대로라면 단종은 세조로부터 사약을 받지 않았고, 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 된다. 사가들은 세조실록에 대해 즉위 후의 일은 대체로 사실대로 기록했으나 왕위찬탈 과정은 왜곡이 심하다고 평하고 있다. 이때 사관으로 참여한 인물은 신숙주, 한명회 등이다. 연려실기술에는 사약, 교살 등의 표현이 모두 등장한다. '금부도사 왕방연(王邦衍)이 사약을 받들고 영월에 이르러 감히 들어가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으니, 나장(羅將)이 시각이 늦어지다고 발을 굴렀다. (…) 통인(通引) 하나가 항상 노산을 모시고 있었는데, 스스로 할 것을 자청하고 활줄에 긴 노끈을 이어서, 앉은 좌석 뒤의 창문으로 그 끈을 잡아당겼다. 그 때 단종의 나이 17세였다'. 문헌대로라면 단종은 사약이 아닌 목졸려 타살당한 것이 된다. '나장'은 병조에 속한 하급직원을, '통인'은 관아에 딸리어
문의마을 유래비에 의하면 고려초기 일륜선사가 부처님의 도장을 세울 만한 명당을 찾던중 서원의 남쪽을 지나다 일모산(현 양성산)에 올라 대청호쪽을 바라보니 들녘에는 따뜻하고 명랑한 기운이 감돌고 산야에는 발발한 정기와 온후한 덕망이 안개와 무지개처럼 피어나 제자에게 말하기를 "사방의 정기는 영명하다. 장차 문(文)과 의(義)가 크게 일어나 숭상될 것이다. 육로와 수로가 사통팔달했으니 부락과 인물이 번성하리라. 그러나 어이하랴. 향후 천년 뒤의 운세가 물밑에 잠겼음을. 그때 이르러 새터전을 마련케 되리라"라고 예언을 남겨 면의 명칭을 문의(文義)라 하였으며 그의 예언대로 많은 인물이 배출되고 교통의 중심지가 되었으나 오늘날 면의 중심지가 대청호에 수몰되고 새로운 소재지가 형성된 형국이다. 이와같이 1000년 부활의 전설이 살아 숨쉬는 문의면은 대청호 주변을 끼고 수려한 자연경관과 다양한 문화시설, 공원시설들이 잘 되어 있어 청주권, 대전권을 포함한 인근 지역주민들에게 널리 사랑 받고 있는 곳이다.1000년 부활의 전설이 살아 숨쉬는 문의면을 중심으로 둘러볼 수 있는 관광명소로는 대청호의 역사를 곰스란히 담고있는 대청댐과 2002년 4월 그 속내를 드러낸 대통령…
내소사 가는 길 위치 : 전북 부안군 산내면 석포리 지평선이 펼쳐진 만경, 김제평야 들판에 우뚝 솟은 바위 산, 능가산이 풍체를 자랑하고 서있다. 그 산 허리에 내소사가 안겨있다. 옛 부터 신선들이 사는 곳으로 숭배된 능가산, 봉래산, 소래산이 내소사를 둘러 위로는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아래로는 중생을 제도하라는 묵언의 진리 같은 산 이란다. 능가산은 그 곳에 이루기가 어렵 다는 이름이고 소래산은 다시 태어나기 위해 찾는다는 산으로 내소사가 능가산자락에서 안겨 법의 진리를 펼치는 곳이라 한다. 이는 산이 선인 선경의 세계를 찾아와 사람들에게 참된 마음으로 소생 하여 돌아 갈 수 있게 한다는 뜻이다. 또는 아침에 깨어날 때 육신이 먼저 깨어나는가, 아니면 정신이 깨어나는 가 청정자연이 설법 하는 산경의 가람 이란다. 이 선경에 초입으로 들어가면 전어 굽는 냄새가 살생을 금지하는 불가의 교리 앞에 찾아온 마음이 편치 않다.◇ 일주문과 당상나무 상가를 지나 일주문 앞에 오르면 등치 큰 할머니 당산나무가 구백여년의 수령을 자랑하며 서있다. 그 나무에 민속 신앙에서나 볼 수 있는 새끼줄을 두르고 앞에 상돌을 만들어 내소사의 스님과 주민들이 해마다 함께 정월보
수양대군이 1456년(세조 2) 왕위에 등극하자, 한평생 벼슬하지 않고 단종을 위하여 절의를 지킨 신하들을 생육신(生六臣)이라고 한다. 김시습, 이맹전, 조려, 성담수, 남효온, 원호 등이 그들로, 사육신과 대칭된다. 생육신은 방랑을 하거나 두문분출하는 방법 또는 귀머거리나 소경인 체 하면서 단종을 추모했다. 이 와중에 우리고장 충북과 인연을 만든 인물로 김시습(金時習·1435~1493)과 원호(元昊·1397∼1463)가 있다. 김시습은 통분을 이기지 못하고 '설잠'이라는 중이 되어 전국을 방랑했다. 그는 청주 상당산성도 방문, '遊山城'(유산성)이라는 한시를 남겼다. '꽃다운 풀향기 신발에 스며들고 / 활짝 갠 풍광 싱그럽기도 하여라 / 들꽃마다 벌이 와 꽃술 따물었고 / 살진 고사리 비갠 뒤라 더욱 향긋해 / 웅장도 하여라 아득히 펼쳐진 산하 / 의기도 드높구나 산성마루 높이 오르니 / 날이 저문들 대수랴 보고 또 본다네 / 내일이면 곧 남방의 나그네 일터니'. 원호는 집현전 직제학(종3품)을 역임될 정도의 학구파 관료였다. 그는 왕위를 찬탈당하자 고향으로 낙향했고, 단종이 승하한 뒤에는 영월로 들어가 삼년 동안 묘살이를 했다. 이 부분에 대한 내용이 국
'원통한 새 한 마리 궁중에서 나온 뒤로 / 외로운 몸 짝 잃은 그림자 푸른 산을 헤매누나 / 밤마다 잠청해도 잠들 길 바이없고 / 해마다 한을 끝내려 애를 써도 끝없는 한이로세 / 울음소리 새벽 산에 끊어지면 그믐달이 비추고 / 봄 골짝에 토한 피가 흘러 꽃 붉게 떨어지는구나 / 하늘은 귀 먹어서 저 하소연 못 듣는데 / 어쩌다 서러운 이 몸의 귀만 홀로 밝았는고'. 단종(端宗·1441~1457)이 유배지 영월 청령포에서 지은 자규시(子規詩)이다. '자규'는 피를 토하며 운다는 두견새를 의미한다. 그 피가 땅에 떨어져 꽃으로 다시 피어나니 두견화다. 진달래를 두견화로도 부르는 것은 핏빛 색깔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종은 17살 꽃다운 나이에 삼촌(세조)에 의해 죽음을 당했다. 일부 기록은 '자살을 했다', 또 다른 사료는 '교살을 당했다'라고 적고 있으나, 세조에 의해 죽음을 강요당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엄흥도(嚴興道·?~?)의 영월엄씨 문중사와 송자대전은 단종의 마지막을 다소 다르게 표현하고 있다.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영월에 유폐 되었던 단종이 화를 당하자 명에 의하여 시신이 강물에 던져져 옥체(玉體)가 둥둥 떠서 돌아다니다가…
◇ 공통질문1, 이번 지방선거는 어떤 의미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가.2, 선거 전략을 소개해 달라.3, 청주 청원 통합과 세종시 문제에 대한 견해는.4, 유권자들에게 바라는 말씀이 있다면.△한나라당 송태영 위원장 1. 2012 청주·청원통합, 충북경제자유구역조기지정, 청주공항활성화 등 충북의 숙원사업을 제대로 해결할 수 있는 일꾼들을 뽑아 충북이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전기를 만들고 이명박 정부의 국정운영동력을 견인하는 참으로 중요한 선거다.세종시로 여론을 호도하고 길거리정치, 장외투쟁만을 일삼는 정치꾼들의 장이 되어서는 안 되며, 일하지 않는 충북의 다수당인 민주당과 민주당 국회의원들을 심판하는 선거가 돼야 한다. 2. 충북 현안을 해결할 수 있는 집권당의 책임의식과 실천력을 가진 일꾼들로 하여금 말만 하는 민주당, 일하지 않는 민주당에 맞서 정책과 비전으로 승부하고자 한다. 각 지역별로 충청고속화도로 조기건설, 청원군일부지역 세종시 편입 제외, 중부혁신도시 및 충주기업도시의 차질 없는 추진, 제천한방엑스포의 성공적 지원 등 지역별 맞춤형, 차별화 전략을 통해 공약을 실천해 나갈 생각이다. 또 서민무상급식, 무상보육을 통한 명품교육도시를 만들겠다.3.
지구상의 석조 건축물 가운데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를 보지 않고 이집트의 피라미드나 로마의 콜로세움, 파리의 노트르담 사원,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사원 등을 본 많은 사람들은 그것이 지구상에서 가장 뛰어난 석조 건축물이라고 꼽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캄보디아의 밀림에 묻힌 앙코르와트를 보고 난 후라면 자신들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점을 쉽게 인정할 것이다. 동·서 문화를 비교 우위론 적으로 단순히 평가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 어떤 사람은 서구의 여러 건축물보다 앙코르와트가 한 수 위라고 생각하고, 또 어떤 사람은 피라미드나 만리장성에 버금가는 석조 건축물이자 위대한 세계문화유산이라는데 이의가 없다고 할 것이다. 이처럼 동·서 문화를 비교하는데 갈등을 겪는 것은 우리가 그동안 세계사의 중심축이나 변천과정을 이해하는데 다분히 서구 위주나 서구 우월주의의 시각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기실 인류의 농경문화는 터키, 메소포타미아의 초승달 지역에서 시작돼 발칸반도를 통해 유럽 전역으로 파급됐음에도 오늘날의 세계문화사는 문명의 시발점을 지중해의 그리스나 로마에 두고 있다. 이런 서구 문명 우월주의나 서구 문명 중독 증세를 바로 잡지 않는다면 앙코르와트의 문화를…
지난 1970년대 이른바 '사육신 자격' 논란이 일어났다. 조선전기 문신인 김문기(金文起·1399~1456)가 핵심에 위치했다. 당시 사육신은 성삼문, 박팽년, 이개, 유성원, 유응부, 하위지 등이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유응부(兪應孚·?~1456)를 사육신에서 제외시키고 대신 김문기를 넣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김문기는 집현전 학자 출신이면서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한 반면, 유응부는 非집현전에 무신 출신이면서 역할도 다소 왜곡돼 있다"고 밝혔다. 국사편찬위원회는 논의한 끝에 "유응부는 존속시키돼, 김문기를 사육신의 한 사람으로 현창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결의했다. 따라서 지금의 사육신 정원(?)은 한 명 더 늘어난 7명이다. 호칭도 '사칠신'이라고 불러야 정확하나, '사육신' 명칭을 그대로 사용키로 했다. 논란은 남효온이 지은 추강집(秋江集)의 육신전(六臣傳)에서 비롯됐다. 남효온은 앞서 언급한 6명을 거론하면서 김문기는 기술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김문기에 관한 사실을 유응부의 것으로 기술하는 오류를 범했다. 김문기는 단종복위 운동에 있어 성삼문, 박팽년 만큼이나 주도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그것도 병력 동원과 관련이 있다. 실록에는 다음과…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이개, 유성원, 유응부 등을 가리켜 이른바 사육신이라고 한다. 대부분 능지처참됐고 일부는 혹독한 고문으로 심문 중 사망했다. 박팽년은 후자에 속하고 있다. 두 경우에 속하지 않는 인물이 있다. 유성원(柳誠源·?~1456)으로, 역모가 탄로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다만 그가 자결한 정황은 다소 다르게 기록돼 있다. 남효온(南孝溫·1454~1492)은 그의 저서 '추강집'(秋江集) 육신전 편에서 유성원의 자결 장면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병자년(1456, 세조2)의 모의에 참여하였다가 일이 발각되어 성삼문을 잡아갈 때에 유성원이 마침 성균관에 있었다. 제생(諸生)들이 성삼문의 일을 알리자, 즉시 수레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서 아내와 더불어 술을 따라 이별주로 마시고, 사당에 올라가서 오래도록 내려오지 않았다. 가서 보니 관대(冠帶)도 벗지 않은 채 패도(佩刀)를 뽑아 스스로 목을 찔렀거늘 목숨을 구하려 했으나 이미 소용이 없었다. 그러나 그 까닭을 알지 못했더니, 조금 뒤에 관리가 와서는 시체를 가져가서 책형을 가하였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은 약간 다르게 표현하고 있다. '일이 발각되자 성삼문·박팽년 등은 차례로 잡혀와서 모진…
홍재전서(弘齋全書)는 금성대군의 마지막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전패를 모실 자리를 설치하고 서쪽을 향하게 하자, 유(금성대군 지칭)가 "우리 임금님은 영월에 계신다"하고 북쪽을 향해 슬피 운 후 다음, 네 번 절하고 드디어 죽었다." 홍재전서는 정조가 지은 시와 문장을 모아서 편찬한 것을, 전패는 객사에 봉안된 위패로 임금을 상징한다. 함께 거사를 했던 당시 순흥부사 이보흠(李甫欽·?∼1457)도 박천에 유배된 끝에 그해 가을 교살됐다. 이보흠은 매우 유능한 관료였다. 그는 규휼제도의 일종인 사창제(社倉制)를 대구에서 시범적으로 실시해 큰 성과를 거뒀다. 때문에 당시 대구 백성들로부터 '순량'(循良)이라는 칭송을 들었다. 문종은 이런 이보흠을 정4품 고위직인 사헌부 장령으로 발탁했다. 한 마디로 이보흠은 '문종의 사람'이었다. 형(문종)의 아들(단종)을 내쫓고 왕위에 오른 세조가 이런 이보흠을 곱게 봤을 리가 없다. 그는 즉위 후 얼마안가 이보흠을 궁벽한 외직인 순흥부사로 발령냈다. 이때의 외직은 지방직을 말한다. 그런데 이 부분은 잘 이해되지 않는 면이 있다. 정황상 세조는 금성대군과 이보흠 모두가 자기에게 적대적이라는 점을 분명히 인지하고…
소라야! 바실리 사원을 나와서 옆으로 돌면 그러니까 입구에서 보면 오른쪽(동쪽)에 궁전같은 백화점 GUM이 있어. 국영백화점이라는 뜻의 러시아어 첫 글자로 지어진 이름인데 수입명품을 파는 백화점이래. 사회주의국가에 있는 명품백화점. 좀 이상하지 않니· 과시용인가· 아무튼 최신식의, 최고의 백화점이야. 카운터의 총길이가 2.5Km나 되고 3층 건물에 천장을 유리로 만들었으니… 자유로운 영혼들이 붕붕 떠다니고 있더구나. 광장의 북쪽에는 붉은색의 역사박물관이 있어. 러시아 고고학 자료와 제정 왕조의 다양한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는데 나는 겉모습만 보고 왔어. 아쉽게도… 광장에는 많은 동상이 있는데 모스크바 동상 중 걸작으로 꼽힌다는 '미닌과 포자르스키'의 동상에 눈에 가더라. 두 사람은 폴란드로부터 모스크바를 해방시키는데 크게 일조한 영웅이래. 동상이 역동적이고 참 잘 만들어졌어. 또 모스크바의 표준시를 알리는 대형시계가 달린 스파스카야탑(구원의 탑)도 있어. 15분 간격으로 종이 울린다는데 난 왜 못 들었는지 몰라. 런던의 빅밴은 들었는데… 이 탑은 많은 성탑들 중 제일 아름답고 중요한 탑이래. 황제들이 외국 사신을 맞이하거나 전쟁을 위해 출병하는 군사들이 황제의
대청호반을 끼고 도는 최상의 드라이브 코스는 회남대교이후 어부동을 지나 대전과 옥천으로 연결되는 호반도로이다. 대청호변의 굽이길을 따라 드러나는 대청호는 다도해를 연상케 하는 시원스런 풍경을 연출한다. 주변의 크고 작은 산들과 옹기종기 모여앉은 마을들을 바라 보노라면 도심속에선 느껴보지 못한 멈춘 듯 더디 흐르는 시간 속에 드리운 소박한 여유와 담백한 여백의 풍경들을 만날 수 있게 된다. 그런 스치듯 지나치는 속도감을 빌어 감상하는 시간도 쉼표가 필요하다 싶을즈음 닿는 곳이 대전,옥천 방향과 방아실로 나뉘어지는 와정삼거리다. 그곳에 서있는 방아실 입구 대형 입간판엔 매운탕, 붕어찜, 송어회등 나름 원조와 전문성을 앞세운 문구 빼곡이 적힌 먹거리촌이 나열되어 있다. 이끌리듯 자연스레 향하는 걸음 사이로 노란꽃들과 푸른 새싹들로 앳된 봄을 들여놓은 방아실은 수줍은듯 모습을 드러낸다. 꽃처럼 예쁜 언덕 위의 마을이란 뜻으로 꽃다울 방(芳)언덕 아(阿)를 쓰고있는 군북면 대정리 방아실은 대청호와 어우러진 한 폭의 수채화 같은 풍광들이 곳곳에 자리한 마을로 주변에 수상스키를 즐길 수 있는 수상레저시설과 방아실 낚시터 그와 더불어 송어회, 민물매운탕등의 다양한 먹거리촌
수양대군이 왕권을 찬탈하려 한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그러자 단종은 다음과 같은 교서를 내린다. 교서는 국왕이 발표하는 문서를 말한다. "혹은 이르기를, '수양 대군이 장차 과인에게 이롭지 못할 것이다' 하여, 서로서로 의혹하고 혼란하여 안팎에 만연되니, 이것은 우리 군신을 이간시키고 국가를 동요시키려는 것이다. 만일 뜬말을 퍼뜨리는 자가 있으면 곧 잡아서 고하라. 반드시 중한 상을 주겠다". 소문은 현실화했다. 수양대군은 계유정난을 일으켜 김종서를 제거하는 등 왕위찬탈 음모를 행동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명분은 신권이 왕권을 넘본다는 것이었다. 마침내 단종으로부터 왕위를 선양받았다. 이때 단종이 남긴 교서 내용이다. "종묘와 사직을 수호할 책임이 실상 우리 숙부에게 있는 것이다. 숙부는 선왕의 아우님으로서 일찍부터 덕망이 높았으며 국가에 큰 훈로(勳勞)가 있어 천명과 인심의 귀의하는 바가 되었다. 이에 이 무거운 부하(負荷)를 풀어 우리 숙부에게 부탁하여 넘기는 바이다". 단종복위 운동이 일어났다. 1차는 이른바 사육신이, 2차는 금성대군이 주도했다. 세종은 6명의 부인 사이에 18남 4녀를 두었다. 이중 소헌왕후 심씨 사이에서 태어난 문종이 장남, 수양대
'강호에 병이 깊어 죽림에 누웠더니... 송강 ' 정철(鄭澈, 1536~1593)이 지은 관동별곡으로, 그 도입부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정철은 사미인곡, 속미인곡 등의 가사도 지었다. 사미인곡은 임금을 사랑하는 연인에 비유한 것을, 속미인곡은 사미인곡의 후속편으로 3.4조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밖에 성산별곡이라는 가사작품도 존재한다. 이때의 '성산'은 고향인 담양 지곡리 일대를 말한다. 정철은 전남 담양에서 태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고장 진천에 묘, 사당, 신도비 등이 위치하고 있다. 정철은 그의 나이 58살에 강화도에서 병든 몸으로 생의 마지막을 맞게 된다. 그리고 그는 그의 부모가 영면해 있는 지금의 경기도 고양시 원당면 신원리에 묻히게 된다. 그러다가 40여년 후인 1665년 우암 송시열에 의해 아무런 연고가 없는 지금의 진천군 문백면 환희산 밑으로 묘가 옮겨지고 또 사당도 건립되게 된다. 이 작업은 우암 송시열이 주도했다. 역사가들은 이 부분을 매우 세밀히 들여다보고 있다. 사료에는 '묘에 물이 나기 때문에 후손들이 송시열과 상의해 묘를 이장하게 됐다'고 나오고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두 가지의 정치적인 이유가 작동했다. 정여립 모반사건
앙코르 왕국의 후예들은 그 엄청난 석조 건축문화의 유산을 밀림에 묻어두고 여전히 궁핍한 일상생활과 부대끼며 살아간다. 수리아바르만 2세가 지은 앙코르와트나 자야바르만 7세가 타이·베트남에 걸쳐 이룩한 크메르 대 제국은 과거의 영화일 뿐이다. 인도차이나 반도를 흠뻑 적셔주는 동쪽의 메콩 강과 서쪽의 거대한 톤레삽 호수가 있으나 여전히 물 부족에 허덕이고, 강과 호수 사이에 비옥한 퇴적층이 광활하게 펼쳐지고 있으나 개발의 삽질은 툰탁하기만 하다. 석유가 약간 산출되고 있으나 정유시설이 없어 전량 수입하고 있다. 정치 체제는 입헌군주국에다 사회주의 방식을 채택하고 있으나 경제는 자유 시장경제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그들의 화폐 단위는 리엘(riel)이나 자국민끼리만 통용될 뿐 외국인과는 모두 달러로 거래하고 있다. 가게마다 품목마다 가격표가 모두 달러로 표기되어 있다. 자본주의와 실익 앞에 이데올로기는 옛 이야기가 됐다. 시엠립 외곽에는 '쌀르'라고 하는 신 시장이 들어섰고 밤이면 바나나, 망고, 코코넛 등을 파는 야시장이 불을 밝힌다. 대형 유통구조인 무슨 마트도 잇따라 생겨나고 있다. 그러고 보면 특정 이념 앞에 200만 명이나 학살한 킬링필드는 무엇이며 그
진천은 땅이 기름지고 서울서 가깝기 때문에 토착 성씨보다는 외래 성씨가 많이 유입, 번성했다. '생거진천'이라는 표현은 그래서 나왔다. 송강정사를 세운 연일정씨, 금성군사우를 건립한 청주이씨, 신잡과 신립을 배출한 평산신씨 등이 여기에 속하고 있다.진천 이원를 세거지로 갖고 있던 평산신씨는 형 신잡의 선조임금 호종과 동생 신립의 탄금대 전투 전사를 계기로 '원대한 가문'을 형성하게 됐다고 앞서 언급한 바 있다. 신잡의 아들 신경희(申景禧·?∼1615)도 원대한 가문을 이어갔다. 그는 아버지 신잡의 영향력 때문에 음보로 중앙에 진출했다. 음보(蔭譜)는 공신 또는 현직 당상관의 자제로 과거에 의하지 않고 등용된 벼슬아치를 말한다.신경희는 고산현감, 면천군수, 중화부사 등을 역임하고 행주산성 대첩보(大捷報)를 제일 먼저 국왕에게 보고하는 등 승승장구하게 된다. 다음은 선조실록에 등장하는, 신경희의 행주산성 승리 보고 내용이다.상이 이르기를, "성위에서 무엇으로 방어했는가" 하니, 경희가 아뢰기를, "창이나 칼로 찌르기도 하고 돌을 던지기도 하였으며 혹은 화살을 난사하기도 했는데, 성중에서 와전(訛傳)되기를 '적이 이미 성 위에 올라 왔다'고 하자 성중의 군졸이 장
[충북일보] 오는 30일 본보와 충북리더스클럽이 주최하는 '14회 충북경제단체 친선골프대회'가 오전 11시 30분부터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 그랜드 컨트리클럽(그랜드 CC)에서 열린다. 대회는 경제인들의 친목 도모와 상호 간의 다양한 정보교류를 통해 기업 경쟁력을 강화하고 기업 환경변화에 대한 적응력을 높여 지역경제 발전에 기여하고자 마련됐다. 이날 대회는 도내 경제단체 회원과 재경 경제인 등 160여 명이 40개 팀을 이뤄 신페리오 방식으로 치룬다. 라운딩 이후 시상식과 김영환 충북도지사 초청 만찬, 행운권 추첨은 오후 6시 30분부터 진행된다. 시상식은 △메달리스트 △우승(남·여) △준우승(남·여) △니어리스트(남·여) △롱게스트(남·여) 수상자에게 트로피와 부상이 각각 주어진다. 가장 멋지게 옷을 입은 참가자인 △베스트드레스상(남·여) 수상자에게는 부상이 수여된다. / 성지연기자
[충북일보] 7일 오전 10시부터 오후까지 충북 청주시 소재 충북대학교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주관한 국가재정전략회의가 열렸다. 그러자 지역 곳곳에서 '무슨 일이 있느냐'는 문의전화가 빗발쳤다. 대통령실의 한 관계자는 이날 국가재정전략회의가 열린 배경에 대해 "기존에 국가재정전략회의는 국무총리와 장·차관 등 국무위원 중심으로 열렸다"며 "이번에는 다양한 민간 전문가들을 참여시켜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고 정책의 현실 적합성을 높이고자 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해도 왜 굳이 충북대에서 이번 회의가 열렸어야 했는지 궁금증은 해소되기 어려워 보인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또 하나의 특징은 회의 장소가 충북대라는 점"이라며 "기존에는 주로 세종청사나 서울청사에서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열었는데, 충북대를 이번에 택한 이유는 지방 발전, 지역 인재 육성을 포함한 지방시대와 연계해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열고자 하는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이 또한 대통령의 의지라는 부분을 제외하고는 일반 시민들의 궁금증을 해소시키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윤 대통령은 MZ세대인 충북대 학생들과 오찬 간담회를 열어 청년일자리, 지역인재 육성 등의 고민과
[충북일보] 충북 도내 최대 규모의 공연장인 가칭 '충북아트센터' 건립 사업에 본격적인 시동이 걸렸다. 오는 2026년 착공을 목표로 기본계획 수립, 타당성 조사, 중앙투자 심사 등의 절차를 밟게 된다. 26일 충북도에 따르면 지난 4월부터 충북아트센터 건립을 위한 타당성 조사 및 기본계획 수립 연구용역이 진행 중이다. 다음 달 중순 마무리되며 용역을 통해 세운 기본계획에는 공연장 등 규모, 운영 방안, 경제성 검토 등이 담긴다. 도는 이 계획을 타당성 조사에 들어간 한국지방행정연구원에 제출할 예정이다. 앞서 도는 지난 7월 행정안전부에 타당성 조사를 의뢰했다. 총사업비 500억 원 이상이 투입되는 신규 사업은 의무적으로 타당성 조사를 받아야 한다. 충북아트센터 건립에는 총 2천300억 원이 소요된다. 연구원은 내년 4월까지 경제성과 재무성, 정책적 사업 추진 가능성 등을 분석한다. 도는 조사 결과가 나오면 같은 해 상반기 행안부에 지방재정 중앙투자심사를 신청할 방침이다. 심사를 무난히 통과하면 충북아트센터 건립을 위한 준비를 마친 뒤 오는 2026년 첫 삽을 뜬다는 계획이다. 오는 2028년 완공을 목표로 잡았다. 도는 이런 절차가 차질 없이
[충북일보] "산업 현장은 치열한 전쟁터라 조용해 보이지만 끊임없이 경쟁력을 개발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재진(67) ㈜ATS(에이티에스) 대표는 기업의 생존을 위해선 혁신을 통한 경쟁력 개발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ATS는 국내 자동차 플라스틱부품 업계 1위 기업으로 2004년 설립해 20년간 끊임 없이 달려왔다. 주력 제품은 초정밀 사출 기술을 이용한 자동차용 클립(Clip)과 패스너(Fastener)등 자동차 플라스틱 부품이다. 이재진 대표는 "클립, 패스너 등 플라스틱 부품과 연료 부품 분야로 두 가지 트랙을 사업 아이템으로 갖고 있다"며 "보통 300가지 정도의 부품이 매월 생산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에이티에스는 지난 2022년 국내 완성차 업체 2곳이 필요로 하는 부품 점유율의 50%를 넘어섰다. H사의 1대에 사용되는 내장·외장용 클립 100개중 50개 이상은 에이티에스 제품이 사용되고 있다는 의미다. 이재진 대표는 "신차 개발은 2년을 앞두고 이뤄진다. 올해 기준으로 2026년 모델링이 나오면 그에 필요한 부품을 부품 회사들이 2~3년전부터 개발하기 시작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 차의 디자인 등에 맞춘 개발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