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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위어가던 4-H 불꽃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공업화 산업화 정보화의 틈새 속에서 시들해져 가던 4-H 운동이 한미 FTA 체결로 재 점화돼야 한다는 명분을 얻는 것이다. 농촌재건운동의 주춧돌 역할을 하던 이 운동은 세계무역 자유화 추세의 파고를 넘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하다.

본보가 주관한 4-H 대상 시상식이 엊그제 충북농업기술원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서 한우 250두를 사육하며 생균제 자가제조 등 한우 품질향상에 기여한 손종득 씨가 영농개발기술분야에서 대상을 수상하는 등 여러 명의 영농 후계자가 상을 받았다. 이상훈 회장은 대회사를 통해 “개방의 파고로 어려움에 처해 있는 농촌은 4-H 회원들의 노력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의 말대로 농촌은 지금 피폐해져 있고 활력을 잃었으며 젊은이들은 일거리를 찾아 도시로 향하고 있다. 농촌 후계자 없는 농촌은 앞날이 캄캄할 뿐이다. 농촌에 새 희망을 주기 위해서라도 젊은이를 주축으로 한 4-H 운동은 그 힘찬 불꽃을 다시 지펴야 한다는 당위성에 봉착하고 있는 것이다. 19세기 말, 미국에서 시작한 4-H운동은 일종의 실천적 사회교육운동이다. 창의적인 사고, 과학적인 행동을 통해 청소년을 미래의 주역으로 키우고 농어촌 발전을 도모하자는 것이 목적이다. 당시 미국에서도 급격한 공업화로 농촌 경제가 위축됐었다.

네잎 클로버 문양에 지(知·Head) 덕(德·Heart) 노(勞·Hand) 체(體·Health)를 표상으로 하는 4-H 클럽은 광복 후인 1947년 한국 경기도에 처음으로 전파됐다. 그러니까 올해로 4-H 운동이 60주년을 맞는다. 1952년에는 정부가 국책사업으로 채택, 전국으로 확산됐다. 1954년에는 민간후원단체인 한국4-H구락부 중앙위원회가 결성됐으며 4-H중앙경진대회가 열리기 시작했다. 그 후 4-H 운동은 새마을 운동과 맞물리면서 농어촌 환경개선사업, 생산기반시설정비사업, 자립기반 확충 등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 이후 4-H 운동은 급격한 공업화와 도시화, 그리고 농어촌 인구의 감소로 위축된 게 사실이다. 오늘날 농촌의 해법을 다시 4-H운동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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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