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순이 말하기를, '인명(人命)은 지극히 중한 것이고, 죽으면 다시 살아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죄를 알지 못하고 극형에 두는 것은 의(義)에 있어 어떻겠습니까. 마땅히 유사(攸司)에 회부하여 그 죄를 밝히십시오' 하니…'- 인용문에 안순(安純·1371∼1440)이라는 이름이 보인다. 안순은 중세 봉건시대인 조선사회에서 보기 드물게 인권에 대한 의식을 강하게 지닌 인물있다. 특히 그는 사형 집행의 신중함을 역설했다. 사고가 유연했던 그는 흐르는 물의 운동 에너지를 이용하는 수차(水車)에도 관심을 보였다. 수차의 역사는 청동기시대인 기원전 1세기 무렵의 서아시아로 거슬로 올라간다. 당시 서아시아 사람들은 하사(下射), 즉 아래로 떨어지는 물을 수차에 이용해 밀을 빻았다. 중국에서는 후한 초기에 수대(水石+焦), 삼국·육조 때는 수애(水석+豈), 당·송 때는 통차(筒車)가 발달했다. 수대는 물방아, 수애는 맷돌류, 통차는 관개용 수차를 각각 의미하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태종 때 수차에 대한 이야기가 처음으로 등장한다. '백성에게 수차(水車)를 만들도록 권한 것은 한 마을에 몇 개씩이며, 관에서 만들어 나누어 준 것은 한 마을에 몇 개씩인가.권경(勸耕)한…
인류 뇌물의 역사는 기원전 15세기 무렵의 이집트 사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이집트도 뇌물이 골칫거리였다. 이집트 왕조는 뇌물을 '공정한 재판을 왜곡하는 선물'이라고 규정, 이를 단속했던 것으로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조선시대 때 수령이나 무관에 임명된 벼슬아치는 인사가 날 경우 해상 부서인 이조나 병조에 가서 사례를 하는 것이 관례였다. 이를 당참례(堂參禮)라고 불렀다. 그러나 이는 당시 규정으로 불법은 아니었다. 조선전기에 이미 그 내용이 보인다. '새로 임명된 호군(護軍)은 사은숙배하고 의정부에 당참례를 행한 뒤 본방에 참알·회좌(回坐)를 행하기 전에는 (…) 각처에만 명함을 들이고, 타처에는 출입할 수 없다.'- 문제는 당참례가 아닌, 이때 은밀히 오가는 굼품인 당참채(堂參債)에 있었다. 지방관에 임명된 수령이나 무관이 인사부서인 이조나 병조를 방문했을 때 그곳 하급관리들이 노골적으로 금품을 요구했다. 이때 자문(尺文)이라는 영수증까지 발부됐다. 어떤 거래가 있을 경우 이를 증명하기 위해 교부됐던 자문은 길이가 한 자 가량되는 짧은 글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결국 지방관들이 부임지 고을에서 당참채의 재원을 마련하면서 그 피해를 고스란히 백성들에
신미대사를 이야기 할 때 함께 거론되는 인물이 동생 김수온(金守溫·1410∼1481)이다. 신미대사의 본명이 김수성이니까 영산(영동 지칭) 김씨의 '守' 자 돌림이다. 김수온은 세종 때 문과에 급제한 후 집현전학사, 승문원교리 그리고 명나라 사신으로 다녀오기도 했다. 이후 한성부윤(오늘날 서울특별시장)에 이어 영산부원군(永山府院君)에 봉해졌다. 부원군은 임금의 장인, 즉 국구(國舅) 또는 정1품 공신에게 준 칭호로 받는 사람의 본관인 읍호(邑號)를 그 앞에 붙인다. 김수온은 탁월한 문장가였다. 그의 졸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등장한다. '세종이 그 재주를 듣고 특별히 명하여 집현전에 사진(仕進)하게 하고, 치평요람을 수찬하는 일에 참여하게 하였다. 임금이 때때로 글제를 내어 집현전의 여러 유신을 시켜 시문을 짓게 하면, 김수온이 여러 번 으뜸을 차지하였다.'- 형 신미대사와 마찬가지로 김수온도 세종에 이어 세조의 총애를 받았다. 세조은 김수온의 집이 가난하다는 말을 듣고 쌀 10석과 말(馬)를 내려주었다. 세조는 김수온이 우리고장 영동의 어머니에게 문안차 가려하자 한강에서 술을 내어 전송하기도 했다. '그때 김수온이 어머니를 성문하러 영동현(永同縣)에 가는
청주의 강서동에 위치한 부모산(父母山)은 해발231.7m의 작은 산이다. 본래 이산은 아양산, 악양산 등으로 불리웠다. 임진왜란 당시 왜장 흑전이 침공하여 이고장 출신 박춘무가 그의 아우 춘번, 아들 동명과 함께 칠백여 의병을 모아 성내에서 대적할 때 군량과 식수가 떨어져 아사직전 이 곳 상봉에서 물이 솟아 생기를 얻고 왜적을 무찔렀다고 한다. 그때부터 이산을 부모산이라 하고 물이 솟은 샘을 모유정(母乳井)이라고 불렀다. 현재 모유정은 통신탑이 서있는 정상아래 위치해 있다. 오래전부터 샘은 말라있지만 아름드리 버드나무와 함께 옛시절을 이야기 한다. 부모산의 주변에는 금강의 지류인 미호천 유역에 발달한 구릉과 평야지대가 넓게 펼쳐져 있다. 시야를 가리는 높은 산이 없어 청주지역을 넓게 조망할 수 있다. 따라서 삼국시대 이지역은 매우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청주의 동서를 지키는 외곽 방어시설로 축성된 부모산성은 미호천변의 넓은 평야지역을 내려다보는 위치에서 청주지역을 통치하는 한편 적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하여 축조한 백제시대의 성이다. 산봉우리 위에서 사방을 바라보면 동쪽으로는 와우산 토성 및 당산 토성은 물론 상당산성까지 한눈에 들어오고…
전회에 신미(信眉·?-?)대사의 법호가 이례적으로 길고 극존칭이라고 밝힌 바 있다. 신미대사가 문종으로부터 받은 법호는 '대조계 선교종 도총섭 밀전정법 승양 조도 체용 일여 비지 쌍운 도생 이물 원융무애 혜각 종사(大曹溪禪敎宗都總攝密傳正法承揚祖道體用一如悲智雙運度生利物圓融無·惠覺宗師)로, 무려 37자에 달한다. 그러나 이 법호는 사실은 문종이 아닌 세종이 준비했던 법호였다. 세종은 궁궐내 내원당 건립 등 신미대사의 불사에 감사를 표시하는 의미로 '선교종 도총섭 밀전정법 비지싸운 우국이세 원융무애 혜각존자(禪敎宗都摠攝 密傳正法 悲智雙運 祐國利世 圓融無· 慧覺尊者)'라는 긴 법호를 준비했었다. 그러나 이 법호를 내리기 전에 승하하면서 뜻을 이루지 못했고, 아들 문종이 대신 전하게 된다. 골수 유교분자들인 대신들이 "그 법호는 안 된다"며 벌떼처럼 들고 일어났다. 그들이 보인 반응 정도는 '국조 이래로 이런 승직이 없었다'(문종실록)라는 것이었다. 하위지는 "안팎이 눈을 비비며 간절히 유신(維新)의 정치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런데 처음 정사에서 간사한 중에게 존호를 내리시었으니, 바르지 못한 것이 이보다 더 큰 것이 없다"라는 내용의 상소를 했다. 본문에 등장하는…
조선시대 세종~예종 연간에 우리고장 속리산 복천암 주지를 지낸 인물로 신미대사((信眉·?~?)가 있다. 그의 본관은 영산(永山), 즉 지금의 영동으로 그의 집안은 본래 유학을 숭상했다. 그러나 신미는 부친 김훈(金訓)이 주지육림에 빠지자 출가했다. 문종실록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등장한다. '집현전 직제학 박팽년 등이 상서하기를, "(신미는) 그 아비 김훈이 죄를 입게 되자, 폐고(廢錮) 된 것을 부끄럽게 여겨 몰래 도망하여 머리를 깎았습니다…'" - 본문 중 '폐고'는 관리가 될 수 있는 자격을 박탈하는 것을 의미한다. 신미대사와 관련해 이른바 '한글창제 주도설'이 자주 거론되고 있다. 이 설은 대략 세종이 한글창제를 기획하고 작업을 주도한 인물은 신미대사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그 근거로 신미가 세종·세조 두 임금과 유난히 친밀했던 점, 한글창제후 유교가 아닌 불교경전이 집중적으로 간행된 점, 법호가 유난히 길고 극존칭으로 돼 있는 점 등을 꼽고 있다. 이밖에 월인석보와 훈민정음이 불교적 상징을 지닌 108장과 33장으로 각각 구성돼 있는 점 등도 거론하고 있다. 신미대사가 한글창제를 주도했다는 내용은 현존하는 사료에는 보이지 않는다
조선시대에는 재료와 모양에 따라 술잔(盃)의 이름을 다양하게 불렀다. 규화배(葵花盃), 옥배(玉杯), 수정배(水晶재), 앵무배(鸚鵡盃), 나배(螺杯) 등이 있다. '규화배'는 접시꽃 모양, 앵무배는 바다의 앵무조개, 나배는 소라껍데기로 만든 것을 말한다. 사전은 앵무조개에 대해 '헤엄칠 때는 아가리를 위로, 갓을 아래로 하고 껍데기를 앞으로 하여 후퇴 방향으로 한다'고 적고 있다. 조선시대 대다수 임금들은 잔을 중요시 여겼다. 특히 애주가형 임금일수록 잔을 소중하게 생각했다. 연산군도 애주가형 군주에 속한다. 그에 얽힌 이야기가 실록에 자주 등장한다. '전교하기를, "나배(螺杯) 3백∼4백 개를 생산되는 곳에서 채취하여 들이게 하라"하였다.'- '전교하기를, "규화배 1천, 앵무배 1백을 구워 만들라" 하였다.'- 연산군이 왜 한번에 수백내지 1천개의 술잔이 필요했는지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여러가 정황상 '궁중 파티'와 관련이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같은 추정은 "팔정배(八呈杯) 및 일체 주기(酒器)를 숙용(淑容)의 집 헌수연에 진배하라"는 표현에서 어느정도 입증되고 있다. 숙용은 임금의 후궁에게 내리던 종3품 내명부의 품계를 말한다. 조선시대 후궁들은
청원군 문의면 소재 문의영화마을을 시작으로 국전리 주지미 마을과 삼정리 산정말, 노현리 마근이 마을, 마동리 마동창작마을까지 연결되는 걷기코스가 대청호 둘레길 2구간이라면 역대 대통령들의 자취를 쫓아 휴식과 산책의 시간을 즐길 수 있는 청남대가 2-1코스. 문의 영화마을에서 호변을 따라 노현리 인공 습지공원을 지나 작은용굴과 상장리 피미마을, 청남대 가로수길을 거쳐 출입국 관리소 입구 망향비까지가 대청호 둘레길2-2코스. 청남대 출입국 관리소나 산덕리를 들목으로 구리봉과 곰실봉을 오른뒤 청남대 경호를 위해 주둔했던 공수부대원들이 오갔던 산덕리길이 2-3코스이다. 대통령 별장이 있던 곳으로 삼엄한 경비는 물론 통행, 근접, 가시거리등 많은 규제들로 인하여 수많은 불편을 겪어야 했던 반면 수려한 자연경관과 생태계 또한 보존될 수 있었기에 채집되는 풍경 또한 각별한 오지 숲길이다. 대통령 전용별장이었던 청남대가 20여년의 베일을 벗고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때 함께 모습을 드러낸 곳이 청원군 문의면 신대리 소재 청남대 뒷산인 곰실봉(321m)이다. 청남대와 함께 철책선에 갇혀 일반인들은 갈 수 없었던 곰실봉은 그리 높지 않으나 산책길 같은 오롯함 속에 이쪽저쪽으로…
조선시대는 청렴결백한 관리인 청백리(淸白吏)를 제도적으로 육성·관리했다. 청백리 제도가 언제 시작됐는지는 분명치 않다. 성종실록에 청백리라는 표현이 처음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조선 전기에 도입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청백리의 선발은 전후기가 달랐다. 조선 전기에는 의정부·이조에서, 후기에는 비변사·이조가 왕명에 따라 2품 이상의 관료자 중 생존하거나 사망한 인물을 1차 대상으로 했다. 조선 전기를 대표하는 청백리 중에 이약동(李約東·1416∼1493)이라는 인물이 있다. 그는 세종 때 진사시와 문과에 잇따라 급제한 후 제주목사까지 승진했다. 그의 청백리에 얽힌 이야기는 이때 만들어 진다. 이긍익이 지은 연려실기술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공이 제주 목사로 있으면서 사냥할 때에 채찍 하나를 가졌었는데, 임기가 차서 돌아올 때 그 채찍을 벽 위에 걸어 두었었다. 후에 섬 사람들이 보배처럼 간수하여 매양 목사가 도임하면 채찍을 내어 놓았다. 세월이 오래 되자 좀이 먹어 부서지니 화공(畵工)을 시켜 그 채찍의 형상을 그려 걸어 놓았다.'- 공적(公的)으로 주어진 물건은 그것이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개인 것으로 만들지 않았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인용문에는…
# 금요일△청주우정산악회(011-464-1434)* 3일 : 곡성 동악산* 17일 : 태백산 눈꽃산행△청주무궁화산악회(010-3423-2783)* 3일 : 청양 칠갑산* 10일 : 강원 태백산* 17일 : 광주 무등산* 24일 : 부산 장자산△청주우리산악회(010-2466-3822)* 3일 : 시산제* 10일 : 금산 보리암* 17일 : 서산 황금산* 24일 : 무주 덕유산△청주 의정산악회(016-864-3259)△청주에이스 금요산악회(011-487-5556)# 토요일 △해맑은산꾼들(010-6473-4488)* 4일 : 포천 극망봉* 11일 : 정읍 방장산* 18일 : 평창 백덕산* 25일 : 진안 선각산△청주백두오름산악회(010-6486-1055)* 4일 : 제천 용두산* 11일 : 안동 천등산* 18일 : 남해 금산* 25일 : 부산 봉래산△청주산사랑 산악회(010-3423-8505)* 4일 : 사명산 문바위봉* 11일 : 원주 매화산~비로봉* 18일 : 문경 오정산* 25일 : 관매도 돈대△사람과산(010-9573-3651)* 4일 : 안성 서운산* 11일 : 사랑도 칠현산* 18일 : 영덕 블루로드* 25일 : 호남정맥10구△청주토요산악회(010-73
도굴(盜掘)의 사전적인 의미는 '법적 수속이나 관리자의 승낙을 받지 않고 고분 따위를 파거나 광물을 캐내는 행위'를 말한다. 그러나 꼭 땅속이 아니더라도 사찰이나 고택에서 옛 유물이나 유품을 훔치는 행위도 넓은 의미의 도굴로 보고 있다. 몇년전 국내 최고 수준의 도굴꾼으로 불리는 서모씨가 "내가 직지를 훔쳤다"고 말해, 지역의 주목을 끈 바 있다. 또 얼마전에는 1백년전 청주 음식문화를 다룬 '반찬등속'이라는 고문헌의 존재가 확인되기도 했다. 1백년전 청주 강서의 한 양반가에서 쓴 것으로 추정되는 반찬등속은 아쉽게도 우리 지역이 아닌 국립민속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따라서 여러 정황상 강서지역에서 도난당한 것이 여러 경로를 거친 끝에 민속박물관으로 흘러 들어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조선시대에도 도굴꾼들이 활개를 쳤다. 실록에도 도굴과 관련된 내용들이 다수 등장한다. 특히 충북 불교의 공간적인 종가(宗家)가 되는 속리산도 자주 등장한다. 지금은 법주사가 도내 최고의 대찰이지만 조선시대에는 복천사(福泉寺·지금의 복천암)도 그에 못지 않았다. 복천사는 신미대사가 주지로 있을 때 세조 임금이 방문했던 사찰로 유명하다. 이때 세조는 불전 이상의 파격적인 경제적 지원
하루가 시작되는 산성마을의 아침은 가라앉은 듯 차분하다. 자연스레 발걸음도 살금살금 조심스럽다. 하얀 도화지에 줄을 긋듯 시작된 둘레길은 산성 소류지를 지나 상당산성 성벽을 오른다. 가지런히 정돈된 성벽을 따라 걷는 길은 공남문과 남암문을 지나 미호문 가기 전 왼쪽으로 난 등로를 따라 내려선다.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다져진 산길은 길도 선명하고 숲도 좋다. 군데군데 쉼터와 계단등 편의시설도 잘 되어있다. 한바탕 풀어놓은 내리막길은 우암산 순환도로가 지나는 굴다리를 만나며 한숨 돌린다. 굴다리에서 바로 내려서면 우암어린회관과 국립청주박물관으로 하산할 수 있지만 굴다리를 따라 계속 직진하면 우암산 오름길이 시작된다. 계속된 오름길이 다소 힘들지만 20여분이면 우암산에 오를 수 있다. 해발고도 353m의 우암산은 예로부터 소가 누운 형상이라 하여 와우산(臥牛山), 또는 대모산(大母山), 장암산(壯岩山)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려오는 청주의 진산이다. 많은 약수터와 운동시설 등이 있고 정상에서 조망되는 청주시의 전경이 아름답다. 우암산의 녹색 숲은 탁한 도시 공기를 맑게 해주고 시민들에게 쾌적하고 건강한 삶을 제공할 뿐 아니라 자연생태계의 중요한 역할을 공유하고 있어…
고려말기의 이성계와 신진사대부들은 우왕과 창왕을 공민왕의 핏줄이 아닌, 신돈과 시녀 반야(般若)의 사생아라고 빡빡(?) 우겼다. 어떤 때는 '왕'이라는 호칭도 생략하고 그냥 '우', '창'으로 부르기도 했다. 그래야 자신들의 쿠데타 명분이 반비례적으로 강화되기 때문이었다. 조선 초기에 쓴 고려사에 이어 실록에도 같은 표현이 보인다. "왕씨는, 공민왕이 후사가 없이 세상을 떠남으로부터 신우(辛禑)가 사이를 틈타서 왕위를 도적질했다가, 죄가 있어 사양하고 물러갔으나, 아들 창(昌)이 왕위를 물려받았으므로 국운이 다시 끊어졌습니다."- 조선 초기 조정은 반란을 우려해 왕씨들에 대한 대대적인 멸족 작업에 착수했다. 언뜻 생각하면 '과연 한 성씨를 멸망시키려 했을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록을 보면 사실이었던 것으로 나타난다. 매우 단문이지만 왕씨에 대한 수장 행위가 있었음을 그 행동자 이름까지 기록해 놓았다. '윤방경 등이 왕씨(王氏)를 강화 나루에 던졌다. 손흥종 등이 왕씨를 거제 바다에 던졌다.'- 이밖에 '중앙과 지방에 명령하여 왕씨의 남은 자손을 대대적으로 수색하여 이들을 모두 목 베었다'(태조실록)라는 표현으로 봐 육지에서도 멸족 행위가 진행됐음을 알
조선은 '대국을 섬긴다', 즉 사대(事大)를 외교의 한 방도로 삼았기 때문에 매년 중국에 정기적으로 사신을 파견해야 했다. 하정사(賀正使), 동지사(冬至使), 성절사(聖節使) 등이 바로 그것으로, 이른바 삼절사라고 불렀다. 하정사는 새해 정월, 동지사는 세밑 동지 무렵, 성절사의 황제나 황후의 생일에 맞춰 보내던 사신을 말한다. 이중 하정사는 매년 10월말이나 12월초에 떠나서 그 해가 가기 전에 북경에 도착, 40∼60일 동안 머무는 것이 보통이었다. 이때 중국 황제에게는 모시·명주·백면지(白綿紙)를, 황후에게는 나전소함(螺鈿梳函) 등을 바쳤다. 백면지는 고급 종이의 일종, 나전소함은 자개로 만든 화장 도구함을 일컫고 있다. 힘없는 나라 조선의 사신은 황태후와 황태자에게도 선물을 바쳐야 했다. 그 종류는 황제와 비슷하나 그 수량은 대략 절반 정도였다. 그해 하정사는 2월중에 떠나서 3월말이나 4월초에 돌아오는 것이 통례였다. 세종 즉위년(1418)의 하정사로 김여지(金汝知·1370∼1425)라는 인물이 선발됐다. 세종이 김여지에게 중국 황제의 신년맞음을 축하하는 내용의 글을 휴대하게 했다. 이렇게 정초에 중국에 올리는 외교글을 '정조하표전'(正朝賀表箋)이라
중국의 용은 은나라, 그러니까 신석기시대부터 등장한다. 우리나라는 이보다 늦은 청동기 시대부터 용 문화가 관찰되고 있다. 울산광역시 울주군에는 국보 제 147호인 천전리 각석이 존재하고 있다. 선으로 새긴 그림들 중에는 4개의 다리와 2개의 지느러미를 가진 몸통이 긴 동물이 그려져 있다. 전문가들은 이를 우리나라 최초의 용그림으로 보고 있다. 용 문양이나 장식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곳은 아무대로 사찰이다. 여기에는 역사적인 사연이 존재하고 있다. 불교 건축물에 용 문양과 장식이 적극적으로 등장한 것은 임진왜란 이후부터다. 사명, 영규대사 등에서 보듯 조선의 승려들은 북인과 합세해 임진왜란 때 전공을 많이 올렸다. 임란이 끝난 후 불교에 대한 탄압이 크게 완화됐다. 그러자 불교계는 이때부터 백성들을 절로 불러들이기 위해 민간에 퍼져있던 용 사상을 적극적으로 끌어안기 시작했다. 불교 건축물의 각종 용 조각과 용 그림은 바로 백성들에게 다가가기 위한 계산된 상징기호였다. 따라서 고려 건축물인 부석사 무량수전과 유교건물인 향교와 서원에는 용장식이 관찰되지 않는다. 국보 55호인 팔상전은 임란후인 인조(17세기) 때 재건된 목탑이다. 이 팔상전을 잘 살펴보면 용그림
날씨가 춥다. 길이 얼어 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25인승 버스가 넘어가기엔 휘어도는 굽이길이 급하다. "갈 수 있네" "갈 수 없네" 분분함에 쉽사리 결정 못하고 안전제일주의로 선택한 것은 차를 버리고 질마재까지 걸어서 올라가는 것이었다. 산그늘에 잠긴 후미진 고갯길은 더 을씨년스럽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도망치듯 대원들 눈에서 멀어진다. 뒤쫓아서 몇걸음 떼었을까 모퉁이를 돌아나오는 2.5톤 트럭과 마주치는 순간 잠시 멍하니 말을 잊는다. "차 타고 올라가두 되는 건데..." 지그재그로 휘어도는 고갯길을 따라 20여분 후 질마재에 올랐다. 증평과 괴산을 잇는 고갯길이다. 질마재에서 능선을 이용하여 산을 오르면 오른쪽으로는 새작골산, 좌구산으로 연결되고 왼쪽으로는 구석산과 율리휴양촌으로 연결된다. 능선이 아닌 임도를 이용하면 오른쪽으로는 원봉천과 밤티마을과 연결되고 왼쪽으로는 좌구산 자연휴양림과 연결된다. 어느쪽이든 율리를 가운데 두고 한바퀴 빙도는 형상으로 탈출로 또한 다양하다. 산허리를 휘감아도는 임도를 이용하여 걷는다. 걷는내내 바라다보이는 아랫세상은 약속이나 한듯 숨었다 나타났다를 반복한다. 657m의 눈높이를 자랑하는 좌구산 치맛자락에 둥지를 튼…
충주시 이류면의 행정명칭이 2012년 1월 1일부터 '대소원면'(大召院面)으로 공식 변경됐다. 이류면은 그 동안 한자가 '利柳'(이류)로 다름에도 불구, 어감상 '이류'(二類)를 자주 연상시켜 왔다. 따라서 충주시는 지난 2010년 10월의 실태조사, 2011년 3월의 명칭변경추진위 구성 등 그 동안 면이름을 바꾸기 위한 절차를 꾸준히 진행해 왔다. 그 결과, 시민공모를 통해 들어온 '국원', '대소원', '다인', '서충주', '중원' 중 인지도다 높은 '대소원면'으로 정하고 주민의견 조사와 시의회 조례 개정을 통해 이를 최종 확정했다. 이로서 이류면이라는 행정명칭은 97년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이류면이라는 명칭이 처음 생겨난 것은 경술국치(1910) 이후의 일로, 그리 오래된 편은 아니다. 일제는 지난 1914년 이안면에서 '이', 유등면에서 '유' 자를 따서 '이류면'으로 작명했다. 당시 이안면에는 대소원리, 금곡리, 마치리, 성종리, 본리, 노옥리, 흑평리, 불방리, 하검리 등 19개 리가 속해 있었다. 반면 유등면에는 팔봉리, 수주리, 하담리, 월은리, 기동, 매산리, 장승리, 수현리, 산정리, 용두원, 만적리 등 18개 리가 포함돼 있었다
금년은 용의 해, 그것도 흑룡의 해로 일컬어지고 있다. 용은 열두띠 중 유일한 상상의 동물이다. 이와 관련, 학계에는 뱀, 공룡, 인도신화, 기상관련설 등 대략 4가지 설이 등장해 있다. 앞선 3가지는 표현 그대로 이해하면 된다. 기상관련설은 용오름 현상과 관련이 있다. 극단적인 저기압이 해수면에 형성되면 깔대기 모양의 구름이 만들어진다. 작년 가을에도 동해에서 이같은 현상이 관찰됐다. 옛사람들이 이를 목격했으면 충분히 용의 승천을 연상할 수 있는 자연현상이다. 일부에서는 용을 '구사(九似) 동물'이라고 표현한다. 용은 이른바 이미지 조합의 동물로, 여러 짐승의 특장을 두루 갖추고 있다. 뿔은 사슴, 머리는 뱀, 눈은 토끼를 닮았다. 이밖에 목덜미는 뱀, 비늘은 잉어, 발톱은 매, 손바닥은 호랑이, 귀는 소와 비슷하다. 바로 '구사'는 용이 아홉가지 동물을 닮았다는 뜻이다. 용은 성장하면서 이름도 달리 부르고 있다. 정치계절이 되면 자주 들을 수 있는 표현으로, 이무기·잠룡·항룡 등이 있다. 이무기는 아직 용이 되지 못한 상태로, 물속에서 5백년을 지내야 용이 된다고 한다. 잠룡은 용이 됐으나 아직 물 밖으로 나오지 않은 용을 말한다. 대권 잠재 주자들에게…
박영석 대장과 직지원정대 박종성·민준영 대원, 세계최고의 여성산악인 지현옥 대원 등이 잠들어 있는 네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8천91m)에 충북지역 비산악인들로 구성된 '히말라야오지마을체험단'(단장 박연수 직지원정대장)이 오를 예정이다.히말라야오지마을체험단은 9일부터 21일까지 13일간 '담푸스→촘롱→데우랄리→ABC→킴체→나야풀' 등을 다녀올 예정이다.비록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4천135m)까지 예정돼 있지만 초·중·고 학생부터 직장인까지 지역사회 각계각층에서 22명으로 구성된 체험단은 이곳에서 고인이 된 대한민국 산악인의 명복을 비는 추모식을 가질 예정이다.올해로 4년째를 맞고 있는 히말라야오지마을체험단은 '풍요의 여신'이라는 안나푸르나의 의미처럼 문화·교육·의료 등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이곳 주민들을 위해 올해 역시 다양한 봉사활동을 펼칠 계획이다.간두룩지방의 난두굴 마을에서는 학생들과 명랑운동회를 열어 서로의 문화를 교류하고 준비해간 학용품, 의류, 치약세트 등을 선물할 예정이다.안나푸르나베이스캠프에서는 촛불의식을 통해 참가자들이 지금껏 지나온 삶을 스스로 돌아보고 성찰하며 미래에 대한 설계도 하는 의미있는 시간도 계획돼 있다.하산길에는 킴체마을에서…
문서위조는 지금도 고전적인 범죄에 속한다. 조선시대에도 다르지 않았다. 토지문서는 물론 과거 시험장에서 문서를 위조하는 사건이 비일비재 했다. '형조에 전지하기를, "부장소(部將所)의 서원(書員) 백주(白珠)·김양선(金楊善) 등은 정병(正兵)의 재물을 받고 혹은 놓아 보내고 혹은 대신 입번(立番)하게 하였으며, 사노 유석숭(劉石崇) 등은 제포선군의 해령직 고신(告身)을 위조하였으니, 아울러 국문하게 하라" 하였다.'- 인용문에 등장한 문서위조는 병역과 학력에 관한 유형들로 볼 수 있다. 전자는 뇌물을 받고 병역 대상자를 풀어주거나 혹은 다른 사람으로 대신하게 하는 것이고 후자는 고신, 즉 인사 임명장을 위조한 사건을 말한다. 조선 조정은 문서 위조범을 엄하게 다스렸다. 특히 임금의 뜻이 담긴 왕지를 위조했다고 적발될 경우 목을 베는 참형에 처했다. 그리고 공포감을 의도적으로 조성하기 위해 그 시신을 저잣거리에 장시간 방치했다. '사노(私奴) 최문(崔文)·오천수(吳天壽) 등이 왕지(王旨)를 위조하였으므로 모두 참형에 처하여 기시(棄市)하였다.'- 뿐만 아니라 문서 위조범의 가족에게도 연좌죄를 적용, 시골 관청의 노비로 삼기도 했다. 예종실록의 '인문(印文)을…
보은군 회남면 서탄리 물가에서 바라다본 분저리는 그야말로 아름다운 한폭의 풍경화였다. 서탄리와 분저리 사이에 놓인 금강 물줄기로 인한 단절감 때문이었을까... 쉽사리 가닿지 못하고 멀고 먼길 돌아가야 하는 길의 끝 막다름에서 마주할 오지마을의 잔잔한 일상이 이젠 돌아갈 수 없는 유년시절의 추억처럼 소박한 풍경이었다. 보은군 회남면 분저리를 가기 위해선 군산·상주간 고속도로 나들목에서 25번 국도를 따라 수리티재를 넘어 다시 571번 지방도를 이용하여야 한다. 회남면 소재지인 거교리 못미쳐 다시 갈림길이 나오는데 그 길이 502번 지방도다. 그 곳에서 '분저실녹색체험마을' 이정표가 보인다. 갈림길에서 대청호을 끼고 한 10여분 달리다 보면 햇살 가득 들여놓은 작은 마을이 나타난다. 그곳이 바로 회남면 분저리다. 보은군 회남면 분저리는 면의 남쪽에 위치해 있는 1.28㎡ 면적의 작은 마을이다. 동으로는 판장리와 은운리, 서와 북으로는 용호리, 남은 서탄리와 접하고 있다. 본래 회인군 남면 지역으로 고려말 최영장군이 군량을 모아 가루로 만들어서 군사들에게 나누어 주던 곳이라고 해 분저실 또는 분저곡으로 불리워 왔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인해 분저리로 회
# 금요일△청주우정산악회(011-464-1434)△청주무궁화산악회(010-3423-2783)* 6일 : 수원 광교산* 13일 : 서울 인왕산* 27일 : 600회 기념관광△청주우리산악회(010-2466-3822)△청주 의정산악회(016-864-3259)△청주에이스 금요산악회(011-487-5556)# 토요일 △해맑은산꾼들(010-6473-4488)* 7일 : 무주 덕유산* 14일 : 진안 운장산* 21일 : 예산 덕숭산* 28일 : 추자도, 한라산△청주백두오름산악회(010-6486-1055)* 7일 : 평창 백덕산* 14일 : 예산 일락산* 28일 : 태백산 눈꽃축제△청주산사랑 산악회(010-3423-8505)* 7일 : 곰배령* 14일 : 홍천 가리산* 21일 : 지리산 만복대* 28일 : 기장 달음산 / 문탠로드△사람과산(010-9573-3651)* 7일 : 광주 무등산* 14일 : 무주 덕유산* 28~31일 : 제주도 한라산△청주토요산악회(010-7375-6680)* 7일 : 진안 운장산* 14일 : 대전 계족산* 21일 : 상주 갑장산* 28일 : 정읍 내장산△충북일보클린마운틴 전국 명품 걷기길 순례(043-277-2114)* 2월25일 : 무등산 옛
경차관은 조선시대 중앙 정부의 필요에 따라 특수 임무를 띠고 지방에 파견된 관직을 말한다. 1396년(태조 8) 8월 신유정(辛有定)이라는 인물을 전라·경상·충청 지방에 파견한 것이 그 효시가 된다. 왜구 소탕이 주목적이었다. 재정·산업과 관련된 것을 살피는 것도 경차관의 중요한 업무의 하나였다. 이들은 이른바 곳간관리 실태와 재해발생 상황 그리고 유랑자 발생 여부 등도 자세히 관찰했다. 이밖에 수령과 향리(鄕吏)의 근무태도, 법 적용이 공정했는지 등을 살펴보는 것도 경차관의 주요 업무였다. 조선전기의 명 경차관으로 박원형(朴元亨·1411∼1469)이라는 인물이 있다. 그가 충청도를 한번 돌고 오면 관내 수령들의 비행이 고구마 줄기를 뽑아 들 듯이 걸려나왔다. 특히 기생과 관련된 기행이 가장 많았다. 충청도 경차관 박원형이 돌아와 아뢰기를, "충주 목사 임효충과 판관 임계중 이 비석(碑石)을 끌어 나른다고 핑계하고 숙마(熟麻)를 백성들에게 중하게 거두었고, (…) 충주에 갔다가 국상(國喪)의 기년(期年) 안에 여기(女妓)와 간통하여 잤습니다.'- 인용문에 등장하는 숙마는 잿물에 삶아 희고 부드럽게 만든 삼 껍질을 말한다.권간이라는 인물도 거의 같은 유형의 비
조선시대 칠거지악(七去之惡)은 이이(離異)의 사유가 됐다. 이이는 '헤어져서(離) 다르게 된다(異)'는 뜻으로, 이혼의 조선시대식 표현이다. 여자의 경우 저고리 섶을 잘라 남편에게 주는 것으로 이혼의 징표를 대신하기도 했다. △시부모에게 순종하지 않는 것(不順舅姑) △아들을 못 낳는 것(無子) △행실이 음탕한 것(淫行) △질투하는 것(嫉妬) △나쁜 병이 있는 것(惡疾) △말이 많은 것(口舌) △도둑질하는 것(盜竊) 등이 칠거지악에 해당한다. 그러나 △부모의 삼년상을 함께 치렀거나 △장가들 때는 가난했지만 뒤에 부귀하게 되었거나 △아내가 돌아가서 의지할 곳이 없는 경우 등은 삼불거(三不去)라고 해서 남편은 부인을 버리면 안 됐다. 이 경우 이른바 유처취처(有妻娶妻)에 해당돼 처벌을 받았다. 이는 정실 부인이 있으면서 또 다른 정실 부인을 얻는 것을 의미한다. 조선전기 유처취처를 했다가 처벌을 받은 인물로 고태필(高台弼)이 있다. 해외인(海外人)인 그는 현감으로 있으면서 오늘날의 고시인 문과에 급제하고 또 좌익공신 2등에 책록되는 등 관료생활 초기에는 출세가도를 달렸다. 조선시대에는 제주도 사람은 '해외인'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유처취처 때문에 곤욕
조선전기 청주를 찾은 임금은 태조, 세종, 세조 등이다. 이들은 계룡산, 초수리(초정약수), 속리산 복천암 등을 가는 도중에 각각 우리고장 청주를 방문했다. 이와 관련, 세 임금의 어가행렬 모습을 살펴보면 재미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집단으로 움직이는 어가행렬에도 개인의 성격이나 당시 문화가 뚜렷하게 반영돼 있다. 세종은 백성들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어가행렬 자체를 간소화하려 했다. 지방관리가 행정구역 경계까지 마중나오는 것도 그리 반기지 않았다. '충청도 도사(都事) 한질이 와서 문안을 드리니, 임금이 말하기를, "이번 초수 행차에는 참으로 간편한 것을 따르려 하였는데, 충청도 도사가 지경을 넘어 왔으므로 번거로운 폐단이 없지 않을 것이다. 이 뒤로는 삼가서 이같이 하지 말라" 하였다.'- 태조 이성계의 어가행렬에서는 고려 문화가 상당부분 그대로 계승되고 있음을 읽을 수 있다. 건국 초기임을 감안하면 당연한 현상일 수 있다. 인용문 중 나례(儺禮)라는 단어가 그 힌트어가 된다. '청주에 이르니 목사 진여의와 판관 민도생 등이 나례(儺禮)를 갖추어 북교(北郊)에서 맞이하고, 부로(父老)들은 노래를 불러 올리면서 어가 앞에 절하였다.'- 나례는 음력
[충북일보] 오는 30일 본보와 충북리더스클럽이 주최하는 '14회 충북경제단체 친선골프대회'가 오전 11시 30분부터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 그랜드 컨트리클럽(그랜드 CC)에서 열린다. 대회는 경제인들의 친목 도모와 상호 간의 다양한 정보교류를 통해 기업 경쟁력을 강화하고 기업 환경변화에 대한 적응력을 높여 지역경제 발전에 기여하고자 마련됐다. 이날 대회는 도내 경제단체 회원과 재경 경제인 등 160여 명이 40개 팀을 이뤄 신페리오 방식으로 치룬다. 라운딩 이후 시상식과 김영환 충북도지사 초청 만찬, 행운권 추첨은 오후 6시 30분부터 진행된다. 시상식은 △메달리스트 △우승(남·여) △준우승(남·여) △니어리스트(남·여) △롱게스트(남·여) 수상자에게 트로피와 부상이 각각 주어진다. 가장 멋지게 옷을 입은 참가자인 △베스트드레스상(남·여) 수상자에게는 부상이 수여된다. / 성지연기자
[충북일보] 7일 오전 10시부터 오후까지 충북 청주시 소재 충북대학교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주관한 국가재정전략회의가 열렸다. 그러자 지역 곳곳에서 '무슨 일이 있느냐'는 문의전화가 빗발쳤다. 대통령실의 한 관계자는 이날 국가재정전략회의가 열린 배경에 대해 "기존에 국가재정전략회의는 국무총리와 장·차관 등 국무위원 중심으로 열렸다"며 "이번에는 다양한 민간 전문가들을 참여시켜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고 정책의 현실 적합성을 높이고자 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해도 왜 굳이 충북대에서 이번 회의가 열렸어야 했는지 궁금증은 해소되기 어려워 보인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또 하나의 특징은 회의 장소가 충북대라는 점"이라며 "기존에는 주로 세종청사나 서울청사에서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열었는데, 충북대를 이번에 택한 이유는 지방 발전, 지역 인재 육성을 포함한 지방시대와 연계해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열고자 하는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이 또한 대통령의 의지라는 부분을 제외하고는 일반 시민들의 궁금증을 해소시키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윤 대통령은 MZ세대인 충북대 학생들과 오찬 간담회를 열어 청년일자리, 지역인재 육성 등의 고민과
[충북일보] 충북 도내 최대 규모의 공연장인 가칭 '충북아트센터' 건립 사업에 본격적인 시동이 걸렸다. 오는 2026년 착공을 목표로 기본계획 수립, 타당성 조사, 중앙투자 심사 등의 절차를 밟게 된다. 26일 충북도에 따르면 지난 4월부터 충북아트센터 건립을 위한 타당성 조사 및 기본계획 수립 연구용역이 진행 중이다. 다음 달 중순 마무리되며 용역을 통해 세운 기본계획에는 공연장 등 규모, 운영 방안, 경제성 검토 등이 담긴다. 도는 이 계획을 타당성 조사에 들어간 한국지방행정연구원에 제출할 예정이다. 앞서 도는 지난 7월 행정안전부에 타당성 조사를 의뢰했다. 총사업비 500억 원 이상이 투입되는 신규 사업은 의무적으로 타당성 조사를 받아야 한다. 충북아트센터 건립에는 총 2천300억 원이 소요된다. 연구원은 내년 4월까지 경제성과 재무성, 정책적 사업 추진 가능성 등을 분석한다. 도는 조사 결과가 나오면 같은 해 상반기 행안부에 지방재정 중앙투자심사를 신청할 방침이다. 심사를 무난히 통과하면 충북아트센터 건립을 위한 준비를 마친 뒤 오는 2026년 첫 삽을 뜬다는 계획이다. 오는 2028년 완공을 목표로 잡았다. 도는 이런 절차가 차질 없이
[충북일보] "산업 현장은 치열한 전쟁터라 조용해 보이지만 끊임없이 경쟁력을 개발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재진(67) ㈜ATS(에이티에스) 대표는 기업의 생존을 위해선 혁신을 통한 경쟁력 개발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ATS는 국내 자동차 플라스틱부품 업계 1위 기업으로 2004년 설립해 20년간 끊임 없이 달려왔다. 주력 제품은 초정밀 사출 기술을 이용한 자동차용 클립(Clip)과 패스너(Fastener)등 자동차 플라스틱 부품이다. 이재진 대표는 "클립, 패스너 등 플라스틱 부품과 연료 부품 분야로 두 가지 트랙을 사업 아이템으로 갖고 있다"며 "보통 300가지 정도의 부품이 매월 생산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에이티에스는 지난 2022년 국내 완성차 업체 2곳이 필요로 하는 부품 점유율의 50%를 넘어섰다. H사의 1대에 사용되는 내장·외장용 클립 100개중 50개 이상은 에이티에스 제품이 사용되고 있다는 의미다. 이재진 대표는 "신차 개발은 2년을 앞두고 이뤄진다. 올해 기준으로 2026년 모델링이 나오면 그에 필요한 부품을 부품 회사들이 2~3년전부터 개발하기 시작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 차의 디자인 등에 맞춘 개발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