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도명산을 가리키는 표지판을 옆으로 비켜 계곡을 따라 올라가기로 했다. 전에 도명산을 오르면서 건너다본 경치는 일품이었다. 그곳은 송이버섯이 난다는 소리도 들은 터라 호기심까지 발동했다.
예로부터 송이버섯은 능이버섯 다음으로 치던 버섯이지만 어쩐지 능이버섯 보다 송이버섯을 더 좋아한다. 송이버섯 수출한다는 기사는 실려도 능이버섯 수출했다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다. 올해에는 송이버섯 시세가 좋아서 1kg에 백만 원까지 했다. 값만 비쌌지 수확량은 전보다 절반도 되지 않으니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했을 게다.
송이밭은 부자지간에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송이버섯은 해마다 나던 자리에 나기 때문에 처음에 잘 따고 세포가 망가지지 않게 다독거려 놓으면 물 맞춰서 난다고 한다. 그러니 황금알 낳는 송이밭을 남에게 알려줄 리가 있겠는가.
송이버섯은 땅속에 있을 때 따야 상품(上品)이지 땅 밖으로 머리를 완전히 내밀고 있는 것은 상품(商品)가치가 덜하다. 송이버섯을 전문으로 따는 사람들은 새벽 일찍 전등을 들고 다니면서 크는 버섯이 상하지 않게 조심조심 딴다고 한다.
언젠가 TV에 비친 송이밭은 솔 갈비 표면이 조금 볼록할 뿐이지 겉으로 드러난 송이버섯은 보이지 않았다. 초보자들 눈에 땅속에 있는 송이버섯이 보일 리 만무하다. 그러니 이쯤에 송이버섯이 나겠다는 생각이 들면 온통 땅바닥을 다 파헤친다. 당시는 송이버섯을 딸지 모르겠지만, 그다음부터는 송이버섯을 딸 수 없다. 그래서 남에게 가르쳐 주지도 않을뿐더러 등산객들의 입산도 통제한다고 들었다.
등산로를 조금 벗어나 참나무와 소나무가 우거진 숲 속으로 들어갔다. 송이버섯은 보이지 않고 철 지난 싸리버섯이 보였다. 그나마 비들비들 말라 있어 따와도 먹을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으나 비닐봉지에 따 담았다.
두 시간여 헤맸을까· 싸리나무 포기 밑에 한쪽 귀퉁이가 떨어져 나간 것이 꼭 송이버섯 같았다. 설레는 마음으로 조심스레 솟구쳐 올려 보니 흐드러지긴 했어도 송이버섯이 확실했다. 송이버섯 따는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몇 년 전 공림사 뒤에서 우연히 송이버섯 세 송이를 딴 일이 있었다. 그때는 흐드러지기 전이어서 탐스러웠는데 이번의 것은 상품(商品) 가치가 전혀 없는, 그것도 머리통의 반쪽은 산짐승들이 뜯어 먹은 버섯이었다. 그래도 향긋한 냄새가 코끝에 확 전해 온다. 송이버섯은 줄로 난다는 말을 듣고 주위를 아무리 살펴보아도 더는 눈에 띄지 않았다.
능선을 따라 다시 중간쯤 내려왔을 때 위에서 딴 버섯과 비슷한 버섯을 두 송이나 만났다. 갓이 어찌나 큰지 혹 솔 버섯이나 갓 버섯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냄새는 역시 향긋한데 송이버섯치고는 갓이 너무 크고 뿌리가 가늘게 느껴졌다. 조금 더 내려와서 그와 같은 종류의 버섯을 세 송이 더 땄다.
며칠 전에 버섯을 잘 못 먹고 일가족이 병원에 입원했다는 기사를 읽은 생각이 떠올라 혹 독버섯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일었다.
학소대를 지나서 큰길로 나오는 길목에 오토바이를 탄 노인이 와서 멈춰 선다. 노인에게 다가가 비닐봉지를 열어 보이며 "할아버지 이 버섯 먹는 버섯인지 좀 봐주세요" 하며 내보이는 순간 "이 버섯은 압수합니다."하며 비닐봉지 안의 버섯을 모두 꺼내어 자기 주머니에 넣는 것이 아닌가. 기가 막혀 왜 남의 것을 마구 빼앗느냐고 하자 이 지역의 송이밭 입찰을 본 사람이라고 했다.
어이가 없었다. 날벼락도 유분수지 그 힘들여 딴 버섯을, 그것도 먹는 버섯인지 확인 좀 해 달라는데 빼앗는 법이 어디 있느냐고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 광경을 저만큼에서 보고 있던 사람들이 우르르 나를 에워싸며 남의 송이밭에 들어갔다 걸리면 2천만 원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며 위협하고 나섰다.
보아하니 모두 그곳 사람으로 같이 입찰 본 사람들 같았다. 그러는 사이 내려오던 등산객들이 웅성거리는 틈새에 끼어 송이버섯 구경하기에 바쁘고 무슨 일인가 하여 서성거린다. 남의 밭에 들어간 잘못이 명백한 다음에야 더 할 말이 없었다. 그 곳에 더 있다가는 배낭 속에 들어 있는 세 송이마저 빼앗길지도 모르고 더 심한 말을 들을 것 같아 서둘러 빠져 나왔다.
놓친 고기는 크고 떠나간 여인은 아름답다고 했던가. 하지만 빼앗긴 세 송이의 버섯보다 배낭 속에 감추어 둔 반쪽짜리 송이버섯 세 송이가 갑자기 부끄럽게 느껴져 얼굴이 확확 달아올랐다.
박순철 약력

동양문학 신인상 당선(1990년)
월간『수필문학』천료(1994년)
한국문인협회, 충북수필문학회 회원
수필문학충북작가회장,
충북수필문학회부회장 역임
한국수필문학가협회 이사
충북수필문학상 수상 (2004년)외 다수
수필집『달팽이의 외출』『예일대 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