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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천 봉화산 전투 합동위령제

14일, 13주기 봉화산전투 무명용사 합동위령제

  • 웹출고시간2023.06.14 13:03:24
  • 최종수정2023.06.14 13:03:24

14일 진천읍 잣고개에서 6.25 전쟁당시 국군이 북한군의 남하를 저지하기 위해 벌인 진천 봉화산 전투의 무명용사의 영령을 위로하는 합동위령제가 6.25격전지 탑에서 열리고 있다. 참석자들이 위령제를 마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진천군
[충북일보] 1950년 7월 한국전쟁 당시 진천군 일대에서 벌어진 전투로 북한군의 남하를 저지시킨 진천 봉화산 전투를 전사자를 위로하는 합동위령제가 열렸다.

14일 진천읍 잣고개 6.25격전지 탑에서 열린 이날 '13주기 진천 봉화산 전투 합동위령제'는 1950년 7월 6일부터 7월 13일까지 진천과 청주 일대에서 국군 수도사단이 북한군 2사단과 벌인 전투의 전사자를 위로하기 위해 열렸다.

이날 전투는 '진천 지구 전투'나 '진천·청주 전투'라고도 불리고 있다. 현재 진천 행정리의 잣고개에 진천 전투를 기리는 전적비가 세워져 있다.

6.25당시 수도사단의 사단장으로 임명된 이준식 준장은 사단에 배속된 1연대와 8연대, 18연대를 진천으로 이동하게 했다. 그러나 국군이 작전지역으로 이동하기도 전에 북한군 2사단과 15사단 등이 장호원·이천·여주 등을 거쳐 빠른 속도로 남하했다.

진천은 중서부 지역 교통의 요충지로서 이곳이 뚫리면 북한군이 청주에서 대전에 이르는 경로로 빠르게 남하해 천안과 조치원 일대에 방어선을 편성하고 있던 미군 24사단의 퇴로가 차단될 위험도 있었다.

당시 김홍일 1군단장은 수도사단이 진천 북쪽으로 이동해 6사단 19연대와 함께 북한군의 남하를 저지시킬 것을 지시했다.

병력 대부분이 진천에 도착하지 않은 상태로 이준식 준장은 진천에 도착해 있던 1연대 병력을 진천 북쪽으로 이동시켜 후속 부대가 도착할 때까지 북한군의 남하를 막게 했다.

진천읍 남쪽의 문안산과 봉화산 일대에 주방어선을 편성해 천안과 청주 방면으로 향하는 도로를 봉쇄하겠다는 것으로 작전계획을 변경해 했다.

진천 북쪽으로 이동한 1연대는 1950년 7월 7일 이월면 중산리 일대에서 6사단 19연대 병력과 함께 진천으로 남하하던 북한군에 기습 공격을 가해 북한군의 남하를 지연시켰다. 같은 해 7월 8일까지 백곡천을 경계로 북한군의 남하를 막다가 방어선이 뚫리자 진천 남쪽으로 물러나 사단의 주방어선에 합류했다.

부대 편성을 마치고 진천에 도착한 18연대 등은 문안산과 봉화산 사이에 있는 잣고개를 중심으로 방어진지를 구축했다. 육군본부는 진천이 뚫리면 대전마저 위험해진다고 보고, 수도사단에 병력을 추가 배속시켰다.

진천읍에 집결해 있던 북한군 2사단은 7월 9일 문안산과 봉화산의 국군 방어진지를 향해 전면적인 공격을 가해 국군은 두 차례나 방어진지를 빼앗겼다가 되찾는 등 북한군과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

같은해 7월 10일 16연대가 지키던 구곡리 일대의 방어선이 뚤렸고 7월 11일에는 북한군 전차가 국군의 방어선을 뚫고 남하해 봉화산 일대에 배치돼 있던 1연대의 배후를 위협했다.

김석원 사단장은 부대를 청주 북쪽을 흐르는 미호천 남쪽으로 철수시키고, 미호천을 건너는 다리를 폭파했다. 북한군이 국군을 추격해왔으나, 미군 전폭기의 폭격으로 큰 피해를 입고 물러났다.

봉화산 전투는 7월 13일까지 북한군의 남하를 지연시켜 진천과 청주를 거쳐 대전으로 신속히 남하하려는 북한군의 계획을 저지하고 국군과 유엔군이 금강과 소백산맥을 잇는 지역에서 방어선을 재편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해 준 전투로 평가받고 있다.

군 관계자는 "봉화산 전투가 북한군의 남하를 저지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며 "후손들에게 봉화산 전투에서 희생된 무명용사와 국군의 넋을 기리고 전투의 참상을 알리는 데 도움을 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진천 / 김병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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