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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 트리오 봉사회' 오정근·장기원·김학수씨

교사로 정년퇴임 후 자원봉사로 새삶
직접 키운 농산물 팔아 장학금 전달
재활원·청남대 등 곳곳서 활발한 활동

  • 웹출고시간2014.01.16 18:44:28
  • 최종수정2014.01.16 18:44:28
30년 지음(知音)이다. 날 때부터 함께 태어나지 않았지만, 삶의 황혼기에 만나 새로운 삶을 함께 보내고 있다. 정년퇴임을 앞두고 하나같이 자원봉사의 삶에 의기투합한지 30년이 흘렀다. 그리하여 그들의 행적 앞에 '실버 트리오'라는 이름이 따라 붙었다. 마치 뒤마의 삼총사처럼 뗄래야 뗄 수 없는 봉사의 삶을 함께 살고 있다. 실버트리오는 바로 오정근(80)봉사자, 장기원(77)봉사자, 김학수(74)봉사자다.

그들이 처음 봉사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99년 말, 청주농고 교사로 정년퇴임을 하면서였다. 나이는 서로 같지 않지만, 비슷하게 정년퇴직을 한 우연(偶然)이 또 다시 새로운 인연(因緣)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장기원씨

"우리의 인연은 남다르다. 오랜 기간 동안 청주농고에서 함께 교사로 근무했다. 그때의 인연이 정년 후에도 봉사의 현장으로 이끌었다. 덕분에 새로운 인생을 값지게 살고 있다."

오정근봉사자와 장기원봉사자는 동시에 정년퇴임을 했고, 김학수 봉사자만 그보다 1년 늦은 이듬해에 정년퇴임했다. 오정근 봉사자는 "정년을 하고 한동안 산악회에 다녔다. 1년 정도 다니고 나니, 특별한 의미가 없었다. 해서 늘 함께 모이던 장기원과 김학수에게 무언가 뜻 깊은 일을 하자고 제안하자, 기꺼이 응해줬다. 서로 의기투합했다. 그러던 차에 노인복지회관에서 자원봉사모집이 있었다. 그것이 우리 실버 트리오 봉사회의 시발점이었다."라고 말한다. 봉사 트리오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봉사부터 시작했다. 먼저 원예반을 만들어 정원 을 꾸몄다. 국화를 키워 전시도 하고, 판매해서 어려운 이웃을 돕자고 했다. 우리 3명이 산에 들어가 오염되지 않은 부엽토를 채취했다."

장기원 봉사자가 말을 꺼내자, 김학수 봉사자는 "돌이켜 보면, 재미도 있었지만 힘도 들었다. 3명이 산에 올라가 부엽토를 쓸어 자루에 담아 메고, 끌고 내려와 복지회관으로 옮겼다."라고 회상한다. 오정근 봉사자도 한 마디 거든다. "부엽토를 채취하다 안경을 잃어버렸다. 그런데 그 안경을 일 년 후에 다시 그 장소에서 부엽토를 퍼내다 찾았다."라며 잃어버렸던 안경을 보여준다. 이미 10여년이 지났지만, 상처가 난 안경은 그들의 추억이 되어버렸다.

여름 국화밭에서 기념촬영.

국화만이 아니었다. 공한지에 옥수수, 강낭콩, 고구마, 빨간 무를 심어 가을이면 수확했다. 그렇게 벌어들인 돈과 국화 전시를 통해 판매된 수익금을 합쳐 불우한 이웃과 독거노인에게는 반찬봉사를, 어려운 학생들에게는 장학금을 지급했다.

"우리는 늘 함께 봉사를 했다. 고인쇄박물관도 마찬가지다. 2004년부터 해설사 자원봉사모집을 보고 함께 지원했다."

노인복지회관에서 하던 국화봉사와 정원가꾸기도 그들의 전문이었듯이 관람객들에게 직지를 해설하는 일은 교사였던 그들의 적성에 딱 들어맞았다. "직지를 설명하면서 보람을 느낀 적이 있나·"

"일본에서 차관급 인사 24명이 방문했을 때, 직지에 대한 설명을 듣던 중, '직지에 관한 인식이 새로워졌다.'라며 공감을 표시해줬을 때 큰 보람을 느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의 아이들에게 독일의 구텐베르크보다 70여년 빠른 우리나라의 직지를 설명할 때면 아이들은 가슴을 펴고 어깨를 으쓱거린다. 난 그 아이들의 반응을 보면서 이곳에서 자원봉사 하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봉사 트리오는 '동에서 번쩍, 서에서 번쩍' 자원봉사현장이면 어김없이 나타난다. 노인복지회관을 시작으로 고인쇄박물관, 충북재활원, 청남대, 청주사랑노인봉사대, 청주박물관, 성모병원, 프란치스코 작업장, 충북육아원, 숲 해설봉사, 안전모니터봉사 등 봉사활동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지체장애아들과 우체국 편지 부치기, 백화점 물건사기, 버스타기, 시장보기, 극장, 볼링장 등 함께 손잡고 다니며 사회적응훈련을 한다. 조금씩 사회에 적응해가는 아이들을 보며 오히려 내가 행복했다."

모두 손주를 본 그들이다. 내 손자, 손녀처럼 장애아를 생각하는 마음은 애틋하다. 장기원 봉사자가 "김학수, 이 친구가 목에 로만 칼라를 하고 수단을 입으면 영락없는 신부지, 신부."라며 껄껄 웃자, 김학수 봉사자가 "그러니 말년에 이렇게 봉사하며 살지."라며 함께 웃었다. 가장 맏형 격인 오정근 봉사자가 눈이 조금씩 내리는 고인쇄박물관을 가리키며 기념사진을 찍자고 제안한다. 카메라 렌즈에 잡힌 '실버 트리오'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함박눈처럼 내리고 있었다.

/ 윤기윤 기자 jawoon6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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