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드림론' · 민 '중진론' · 선 '인물론'
◇ 미호강 프로젝트, 尹 정부 충북 정책과제 반영 본보는 지난 2018년 '미호천 시대'를 천명한 뒤 올해까지 5년간의 중장기 연속·기획보도를 통해 '미호강 프로젝트'를 윤석열 정부의 충북 지역정책과제에 포함시키는 성과를 이뤘다. 구체적으로는 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지역균형발전특별위원회가 발표한 '충북 15대 정책과제'인 '강·호수 휴양·관광 자원화'에 '미호강 프로젝트(미호강 수질복원, 수량확보, 여가공간 조성(2021~2023년)'이 반영됐다. 특히 올해 본보 창간호에 보도된 '무심천·미호천 대생활권 'FUN청주' 날갯짓(2월 21일자)' 이후 미호천이 미호강으로 명칭이 변경됐고, 민선 8기 충북도도 미호강 프로젝트에 힘을 보태고 있다. 게다가 미호강 유역 신성장 산업과 관련 정책과제로 '방사광 가속기 활용 지원시설 구축', 'KAIST 오송 바이오메디컬 캠퍼스타운 조성', '오송 바이오밸리 글로벌 경쟁력 강화', '이차전지 R&D 선도 플랫폼 구축 및 후공정 시스템 반도체 산업 육성'이 포함되며 미호강은 충북 경제를 견인하는 공간적 개념으로 자리잡았다. 김영환 충북지사의 100대 공약에는 '미호강 맑은물 사업 추진(수질복원,
[충북일보] 7일 오전 10시부터 오후까지 충북 청주시 소재 충북대학교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주관한 국가재정전략회의가 열렸다. 그러자 지역 곳곳에서 '무슨 일이 있느냐'는 문의전화가 빗발쳤다. 대통령실의 한 관계자는 이날 국가재정전략회의가 열린 배경에 대해 "기존에 국가재정전략회의는 국무총리와 장·차관 등 국무위원 중심으로 열렸다"며 "이번에는 다양한 민간 전문가들을 참여시켜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고 정책의 현실 적합성을 높이고자 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해도 왜 굳이 충북대에서 이번 회의가 열렸어야 했는지 궁금증은 해소되기 어려워 보인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또 하나의 특징은 회의 장소가 충북대라는 점"이라며 "기존에는 주로 세종청사나 서울청사에서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열었는데, 충북대를 이번에 택한 이유는 지방 발전, 지역 인재 육성을 포함한 지방시대와 연계해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열고자 하는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이 또한 대통령의 의지라는 부분을 제외하고는 일반 시민들의 궁금증을 해소시키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윤 대통령은 MZ세대인 충북대 학생들과 오찬 간담회를 열어 청년일자리, 지역인재 육성 등의 고민과
◇ 미호강 프로젝트, 尹 정부 충북 정책과제 반영 본보는 지난 2018년 '미호천 시대'를 천명한 뒤 올해까지 5년간의 중장기 연속·기획보도를 통해 '미호강 프로젝트'를 윤석열 정부의 충북 지역정책과제에 포함시키는 성과를 이뤘다. 구체적으로는 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지역균형발전특별위원회가 발표한 '충북 15대 정책과제'인 '강·호수 휴양·관광 자원화'에 '미호강 프로젝트(미호강 수질복원, 수량확보, 여가공간 조성(2021~2023년)'이 반영됐다. 특히 올해 본보 창간호에 보도된 '무심천·미호천 대생활권 'FUN청주' 날갯짓(2월 21일자)' 이후 미호천이 미호강으로 명칭이 변경됐고, 민선 8기 충북도도 미호강 프로젝트에 힘을 보태고 있다. 게다가 미호강 유역 신성장 산업과 관련 정책과제로 '방사광 가속기 활용 지원시설 구축', 'KAIST 오송 바이오메디컬 캠퍼스타운 조성', '오송 바이오밸리 글로벌 경쟁력 강화', '이차전지 R&D 선도 플랫폼 구축 및 후공정 시스템 반도체 산업 육성'이 포함되며 미호강은 충북 경제를 견인하는 공간적 개념으로 자리잡았다. 김영환 충북지사의 100대 공약에는 '미호강 맑은물 사업 추진(수질복원,
[충북일보] "평범한 직장인도 기부 할 수 있어요." 변상천(63) ㈜오션엔지니어링 부사장은 회사 경영인이나 부자, 의사 등 부유한 사람들만 기부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 11월 23일 2천만 원 성금 기탁과 함께 5년 이내 1억 원 이상 기부를 약속하면서 고액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의 충북 72호 회원이 됐다. 옛 청원군 북이면 출신인 변 부사장은 2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부모님을 도와 소작농 생활을 하며 학업을 병행했다. 그의 집에는 공부할 수 있는 책상조차 없어 쌀 포대를 책상 삼아 공부해야 했을 정도로 어려운 유년 시절을 보냈다. 삼시 세끼 해결하지 못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그의 아버지는 살아생전 마을의 지역노인회 회장으로 활동하며 어려운 이웃을 위해 봉사했다. 변 부사장은 "어려운 가정환경이었지만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 봉사하시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며 자라왔다"며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오늘날의 내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 졸업 후 옥천군청 공무원을 시작으로 충북도청 건축문화과장을 역임하기까지 변 부사장은 경제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나아지지 않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