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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목포 선상 해맞이 축제 취재기

눈발 날리고 구름에 가려 일출 광경 못봐
한지로 만든 풍등에 새해 소원담아 띄워

  • 웹출고시간2012.01.01 19:21:29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환호성이 터졌다. 새해를 맞이하는 청주예술의 전당에서 들리는 소리다. 마침내 2012년 새해가 시작된 것이다.

'뎅~ 뎅~ 뎅!'

어둠을 뚫고 하늘로 세상으로 번지는 타종소리가 아득하고, 깊다. 새해를 맞이하는 제야의 종소리가 온 누리로 퍼지고 있는 것이다. 타종소리를 출발신호삼아 버스는 자정 12시, 목포를 향해 스타트했다.

"근데 아빠, 제야의 종소리는 왜 33번 울려?"

귀를 곧추세워 듣던 아이가 꼼꼼히 세어 보았는지 물었다. 스마트 폰을 열자, 곧바로 의미를 알려준다. 세상 참 좋아졌다. '제야의 종을 33번 타종하는 것은 불교의 우주관에서 비롯되었다. 세상은 하늘의 별자리 28수(宿)를 상징하여 28계, 33천으로 이루어진 도의천을 상징한다. 하여, 새벽이 열리는 인(寅)시에는 4대문을 여는 파루(罷漏)로 33번 타종한다. 저녁 유(酉)시에는 28번 타종한다. 33천에 사는 백성들처럼 새해와 밝아오는 아침에는 모든 사람들이 무병장수하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아이는 설명을 채 듣기도 전에 스르륵 잠에 빠져 버렸다.

◇낯선 시간의 세상으로

버스는 2012년의 어느 낯선 공간으로 시간여행을 하는 것처럼 어둠속으로 미끄러져간다. 부모와 함께 온 아이들은 한동안 재잘대더니 이내 조용해진다. 잠이 든 것이다.

새벽 4시가 가까울 무렵, 서리 낀 창문을 닦아내자 '목포 1km'라는 이정표가 눈에 들어온다. 새벽의 스산함은 단단히 둘러 입은 오리털 파커의 밑 둥지로부터 파고들었다. 아이들은 추운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눈앞에 거대한 씨스타 크루즈號가 검음 바다위에 위용을 드러냈다.

"저 배 우리 집 아파트만큼 크네?"

초호화 여객선 스타크루즈호

아이는 배의 크기에 압도된 듯 새벽잠이 달아난 눈을 휘둥그레 떴다. 배에 오르기 전, 승선장에서는 해맞이 길놀이가 한창이었다. 2012년 임진년의 해를 알리는 갯돌 풍물패가 상모를 빙빙 돌리고 있었다. 추위로 웅크렸던 어깨가 열띤 풍물놀이로 조금씩 풀리는 듯 들썩거려졌다. 새벽 5시, 승선이 시작됐다. 거대한 크루즈의 문은 옆구리에 달렸다. 붉은 카펫이 용처럼 구불구불 층계에 깔려 있었다. 3층까지 오르자, 선실에서 안내원들이 손님을 맞이했다. 5시가 넘은 시각이었지만 아직 한밤중처럼 어두웠다. 배가 조금씩 움직였다. 잔잔한 바다는 큰 동물이 잠들어 있는 듯 조용했다. 커다란 배 안에는 해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붐빈다. 이 많은 사람들이 오로지 떠오르는 '해' 하나를 바라고 밤새워 전국 각지에서 달려온 사람들이다.

"아빠, 밤이 이렇게 긴 줄 몰랐어."

선상 군악대쇼.

생전 처음 밤잠을 설치고 해맞이에 따라온 아이가 말한다. 그렇다. 늘 보는 해지만 긴 밤이 지나야 떠오르는 해는 우리네 일상사에서 긴 기다림 끝에 맞이하는 행복이나 희망의 모습과도 흡사하다. 잔잔한 클래식이 흐르더니, 어느새 무대는 역동적인 난타 모듬북 공연으로 이어졌다. 공연의 주제는 '일출'이었다. 붉은 해가 떠오르는 듯, 소리는 관객들을 휘돌다 바다로 사위어갔다. 아이들은 무엇보다도 '마술쇼'에 정신을 빼앗겼다. 눈앞에서 펼쳐지는 환상적인 마술에 경탄과 함께 미소가 절로 감돌았다. 시립합창단의 새해 축하 공연과 사회 저명인사들의 덕담이 이어지는 가운데 조금씩 어둠이 가시기 시작했다. 하지만 간간히 내리는 눈발 탓에 사람들은 해맞이를 체념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7시가 되자, 사람들은 그래도 일말의 희망을 품고 선상으로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모두의 가슴에 이미 해 하나가 감추어져 있는 듯 자못 상기된 얼굴이었다.

◇눈을 먹은 초록물고기

하늘은 여전히 흐렸다. 살이 베일 듯 차가운 칼바람은 간간히 싸락눈을 실어 온다. 매섭게 얼굴을 후려치는 바닷바람 탓에 파르르 귀가 떨린다. 날은 밝았지만 해의 자취는 보이지 않는다. 해를 기다리던 중년의 남편이 아내에게 말한다.

"그래도 해는 솟은 거잖아?"

선상 '풍등 띄우기' 행사

그 말에 위안이 되는지, 아내는 배시시 웃는다. 웃는 볼이 해처럼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때였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붉은 한지로 만든 풍등(風燈)을 띄운다.'와'하는 사람들의 함성 속에 풍등이 연이어 하늘로 날아간다. 동백꽃처럼 화사한 풍등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새해의 태양이었다. 많은 이들의 소원을 담은 풍등은 눈발 날리는 바다로 날아가며 하늘과 바다의 경계를 부단히 지워갔다.

눈은 풍경을 지우면서 다시 채운다. 세상의 온갖 소음을 죄다 뭉쳐가며 수직으로 하강하는 눈은 솜 같고, 봄날 흩날리는 꽃가루 같다.

'바다 속 물고기는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기다립니다. 바닷물에서도 녹지 않는 하얀 눈을 먹으려고 물고기는 투명한 몸체를 흔들며 다가옵니다. 차가운 눈을 먹는 순간, 물고기의 몸에는 초록비늘이 하나씩 생겨납니다.'

파도의 하얀 포말과 하늘에서 내리는 눈이 검푸른 바다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바다로 사라져간 눈들이 녹지 않고 물고기들이 먹을 수 있다면 얼마나 시원할까. 그래서 눈부신 초록비늘이 하나씩 생겨났을까. 먼 옛날, 아득한 시절 누군가가 내게 들려줬던 설화의 기억이 초록바다를 보니 떠올랐다.

◇아, 2012년이 떠오르다

구름에 숨어 제 모습을 감춘 해는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검붉은 구름이 바람에 요동치듯 꽈리를 트니 마치 흑룡의 현신(現身)을 보는 듯 했다. 어렴풋이나마 빛 무리가 구름 층층이 비추니 어둡던 하늘이 서서히 밝아왔다. 해의 흔적만이라도 담고 싶었는지, 선객들은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선상에 있던 사람들은 붉은 해를 마주하고픈 기대가 무산되자 차분한 기원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선상 위에 모인 사람들이 풍등을 띄우며 새해소원을 빌고 있다.

선상에서 맞이하는 해돋이는 남달랐다. 탁 트인 바다와 점점이 바다에 박혀있는 섬들 사이로 하루가 시작되는 광경은 필설로 형용할 수 없는 장관이었다. 2012년 빛의 잔영은 섬들에 또 다시 생명을 주고, 온 몸으로 끌어안는 모습은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자애로운 선물이었다. 새해의 첫날 떠오르는 해는 다르다. 매일 만나는 일상의 해와는 분명 다르다. 그래서 이렇게 멀리서부터 달려오지 않았던가. 첫사랑이 그렇듯 무엇이든 처음은 다 그렇게 신선하고, 경이로운 것이다.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산 넘어 산 넘어서 어둠을 살라 먹고. 산 넘어서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 먹고. 이글이글 앳된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박두진의 시 '해'가 내안에서 절로 솟았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시가 얹힌 노랫말이 내 귀에 청청(淸淸) 울려댔다.

모두들 2012 임진년(壬辰年) 한 해의 긴 실타래를 멋지게 감아올리기를 기원해 본다.

/윤기윤 기자 jawoon6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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