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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1.06.21 15:39:08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조혁연 대기자

전회에 칠서(혹은 강변칠우) 사건을 언급한 적이 있다. 칠서사건은 조선 광해군대 여주 한강변에 살던 7명의 패거리가 역모를 도모했다가 적발된 것을 말한다.

박응서·김평손·심우영·서양갑·박치의·박치인·이경준 등 7명은 대부분 명문가 서자 출신이었다. 박응서의 아버지는 영의정, 서양갑은 목사, 심우영은 관찰사, 이준경은 병마절도사였다.

이들은 여주의 강변에 '무륜(無倫)'이라는 정자를 지어놓고 벼슬아치가 되지 못하는 불만을 시와 술로 달랬다. 강변칠우에 포함돼 있지 않으면서 훗날 함께 화를 당한 인물이 있다. 유인발(柳寅發)이다.

실록 광해군일기에는 그의 이름이 9번 등장하나 신상 정보가 될만한 표현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그가 충주 출신인 것만 확인될뿐 정확한 생몰연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일부 사료에 의하면 유인발은 무과에 합격했으나 어떤 이유로 유랑생활을 하던 '떠돌이 무사'였다. 이런 그가 왜 칠서와 뜻을 함께 하게 됐는지는 분명치 않다. 다만 여려 정황상 칠서 우두머리 격이었던 서양갑(徐羊甲··~1613)에게 포섭됐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실록을 보면 서양갑은 역모를 제일 먼저 제의했고, 또 시국에 대해 나름의 철학을 갖고 있었던 인물이었다. 박응서의 진술 내용이다.

"7년 전에 서양갑이 맨 먼저 역모를 주장하였습니다. (그가) 어느 날 흉모를 이야기하기를 '우리들이 뛰어난 재질을 갖고 있는데도 오늘날의 법 제도 때문에 출세길이 막혀 뜻을 펴지 못하고 있다. 사나이가 죽지 않는다면 모르지만 죽는다면 큰 이름을 드러내야 할 것이다' 하였습니다."-<광해군일기>

앞서 유인발을 '떠돌이 무사'라고 표현했다. '떠돌이'라는 표현은 그가 시국에 불만이 매우 많았던 인물임을 의미하고 있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유인발은 행동대원 모습으로 자주 등장한다.

'지난 해 가을과 겨울 사이에 허홍인·유인발·김비·김평손과 함께 세 차례나 경상도에 가서 왕래하는 은상(銀商)을 때려 죽여 수천 금을 얻은 다음 토호(土豪)와 결탁하려 하였으나…'-<광해군일기>

박응서의 '칠서가 모반을 한 후 영창대군을 새 임금으로 앉히려 했다'는 진술은 이이첨의 사주에 의한 것임이 분명히 밝혀져 있다. 그러나 칠서와 유인발이 진짜 역모를 계획하고 행동으로 옮기려 했는가에 대해서는 명확하지 않은 면도 있다.

유인발은 압슬형 이후에는 역모를 시인한 것으로 돼 있으나 처음에는 혐의를 완강히 거부했다. 압슬형은 죄인을 기둥에 묶어 사금파리를 깔아 놓은 자리에 무릎을 꿇게 하고 그 위에 무거운 돌을 얹어서 자백을 강요하는 형을 말한다.

'유인발(柳仁發)을 잡아와 공초를 받았는데, 이르기를, "신이 정협(鄭浹) 등과 지난 해에 한두 차례 만났고 이어 서양갑과 함께 권도를 만나 말을 사기만 했을 뿐 정말 아는 것이 없습니다 "하였다.'-<광해군일기>

유인발의 주장은 인정되지 않았다. 그는 저잣거리에서 능지처참됐고, 그의 처첩과 아들은 섬으로 유배를 가야했다. 연좌제에 따라 유인발 고향 충주는 충원군(忠原郡)으로 강등됐다. 광해군 5년(1613) 때의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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