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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1.06.07 17:47:24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조혁연 대기자

조선 광해군대 여주 한강변에서 강변칠우(江邊七友)를 자처하는 패거리가 서자에게도 관계 진출을 허용해 주도록 건의했으나 수용되지 않았다.

강변칠우는 7명의 명문 서자들이 스스로를 지칭하는 것으로, 박응서·김평손·심우영·서양갑·박치의·박치인·이경준 등을 말한다. 박응서는 영의정, 서양갑은 목사, 심우영은 관찰사, 이준경은 병마절도사의 서자였다.

이들은 여주의 강변에 '무륜(無倫)'이라는 정자를 지어놓고 시와 술로써 소일하며, 관계에 진출하지 못하는 불만을 토로했다. '칠우'라는 명칭은 중국의 죽림칠현(竹林七賢)을 모방했다.

'칠우'의 본멤버는 아니었지만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許筠·1569~1618), 이재영(李再榮·1553~1623) 등도 가끔 찾아와 이들과 어울렸다.

1612년에는 조령에서 은상인(銀商人)을 죽이고 은 수백냥을 약탈하는 강도살인 사건이 발행했다. 이때의 조령이 괴산 사면인지, 문경 사면인지는 분명치 않다. 범인들은 강변칠우였고 이들은 이듬해 모두 검거됐다. 제도 불만이 악행으로 이어진 사건이었다.

직전의 조정은 북인이 정권을 잡고 있었으나 후계 문제로 분열했다. 대북파는 광해군, 소북파는 영창대군을 옹호했다.

당시 대북파의 영수였던 이이첨(李爾瞻)·정인홍(鄭仁弘) 등이 이 사건을 철저히 악용했다. 조령 영로(嶺路)에서 일어난 상인 강도사건을 역모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사건으로 조작했다.

'사건이 발각되었을 때 박응서만 혼자 집에 있다가 체포되어 맨 먼저 자복하였다. 그리하여 형조로 이송한 다음 정형(正刑)에 처할 예정으로 있었는데, 응서가 옥중에서 상소하여 고하기를 "우리들은 천한 도적들이 아니다. 은화(銀貨)를 모아 무사들과 결탁한 다음 반역하려 하였다"고 하였다.'-<광해군일기>

칠우 중 6명 모두는 처형됐으나 박응서만은 목숨을 보존할 수 있었다. 이이첨의 사주를 받은 포도대장 한희길이 사전에 각본을 준비했고, 박응서는 쓰여진대로 진술한 대가였다.

'그때 한희길 정항이 포도대장이었는데, 박응서를 유혹하기를, "네가 만약 이러이러하게 진술하면 죽음을 면할 뿐 아니라, 큰 공을 세울 수 있다"하니, 박응서가 드디어 다시 진술하기를,"우리들은 절도가 아닙니다. 장차 큰일을 일으키려고 식량과 기계를 준비하려 한 것입니다. 일찍이 일곱 친구와 함께 국구 김제남과 내통하여 영창대군을 임금으로 세우려 하였습니다.'-<광해조일기>

박응서의 거짓 진술 때문에 영창대군은 강화에 유배된 후 증살됐고 소북파도 씨가 마를 정도로 숙청됐다. 그 유명한 계축옥사다. 일부는 허균이 홍길동전을 쓸 때 강변칠우에서 작품의 힌트를 얻었다고 말하고 있기나 분명치는 않다.

박응서의 친부는 충주 출신으로 영의정을 지낸 오른 박순(朴淳1523∼1589)이다. 그가 조령까지 진출한 것은 일대 지리를 잘 아는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그는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이 실각하면서 주살됐다.

'응서는 죽음에서 살기를 구하여 서양갑 등을 무고함으로써 마침내 계축옥사를 일으켜 국구 김제남을 죽이고 영창 대군 또한 유폐되어 죽임을 당하게 하였다. 그러므로 나라 사람들이 모두 분개해 하였는데 이에 이르러 함께 주살된 것이다.'-<인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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